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12.01 11:59 수정 : 2018.12.09 21:27

2003년 7월 <교육방송>(EBS) 사장에 취임한 고석만은 2년이 채 안 되는 재임 시절 ‘수능 방송’ 도입, ‘이비에스 스페이스’ 상설 공연과 <스페이스 공감> 방송,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창설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2004년 4월1일 이비에스 사옥에 마련한 ‘수능방송’ 비상 상황실에서 안병영(오른쪽부터) 교육부총리,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고석만 사장 등이 인터넷 동시접속 여부를 주시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2003년 7월25일 EBS 사장 취임식
“지금부터 시청률표 금지하시오”
‘혁명정신’ 강조한 과격한 취임사
800여 직원들 ‘멘붕’ 빠진 듯 의아

취임 한달 뒤 ‘수능방송’ 첫 발의
안병영 교육부총리 ‘천군만마’로
청와대 지지·국회 ‘예산 200억원’
‘2·17 사교육대책’ 수능방송 발표
2004년 4월1일 ‘동시접속’ 대성공

사내 강당 보수해 공연장으로 ‘강행’
온-오프 활용 ‘스페이스 공감’ 명소로

8월 ‘EBS국제다큐페스티벌’도 개막
“다큐 작가들을 존경하는 자세로”

2003년 7월 <교육방송>(EBS) 사장에 취임한 고석만은 2년이 채 안 되는 재임 시절 ‘수능 방송’ 도입, ‘이비에스 스페이스’ 상설 공연과 <스페이스 공감> 방송,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창설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2004년 4월1일 이비에스 사옥에 마련한 ‘수능방송’ 비상 상황실에서 안병영(오른쪽부터) 교육부총리,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고석만 사장 등이 인터넷 동시접속 여부를 주시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길을 찾아서] 고석만의 첨병 (46회) ‘세상을 바꿀 교육방송’

<한겨레> 연재 회고록 ‘길을 찾아서’ 21번째 주인공은 고석만 프로듀서다. 1973년 <문화방송>(MBC)에 입사한 이래 그는 30여년간 숱한 화제작을 제조했다. ‘정치드라마의 대부’ ‘스타 피디 1세대’ 같은 명성과 더불어 ‘문제 피디’라는 시비도 따라다녔다. 특히 ‘공화국 시리즈’와 ‘재벌 시리즈’는 한국 사회의 가장 민감한 환부를 정면으로 드러낸 까닭에 대부분 ‘조기 종영’을 해야 했다. 끝내지 못한 드라마의 숨은 이야기들을 ‘고석만의 첨병’에서 마침내 직접 글로 털어놓는다.

2003년 7월 이비에스 사장 취임사에서 ‘혁명정신’을 강조해 800여 직원들을 ‘멘붕’에 게 했다. 실제로 그는 대대적인 프로그램 개편과 구조개혁을 단행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시청률표 배포를 금지하시오.” 2003년 7월25일. <교육방송>(EBS) 사장으로서 취임 제일성이다. 회사 전체에 시청률표 배포를 중단하고 시청률 조사 자료의 진입 자체를 차단하도록 엄명했다. “시청률 조사는 객관성도 과학성도 없는 잘못된 자료다. 기본조사의 단초가 모호하므로 기준으로 삼을 수 없는 대표성 없는 자료다.” 피플미터의 근거에 대해 설명하고, 표본의 부정확성이 방송의 질은 물론이고 문화현상, 사회현상을 왜곡하고 변질시켜 끝내 되돌릴 수 없는 협곡으로 빠질 수 있음을 강조했다. 프로듀서들은 물론이고 취임식에 참석한 800명 직원들 모두 ‘멘붕’에 빠지는 듯했다.

그 순간 기초에 해당하는 또 다른 얘기를 이어갔다. 3·1 독립운동의 참상을 설명하며, 한 여학생의 고결한 죽음을 얘기하고, 이를 전파한 언론의 역할을 강조했다. ‘한 소녀가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불렀다. 일본 경찰이 태극기를 든 팔을 잘랐다. 소녀는 쓰러지면서도 만세를 불렀다. 일경은 그 소녀를 칼로 찔러 죽였다.’ 두 줄의 기사에 감화된, 중국의 석학이자 노동운동가 천두슈는 밤새 통분의 눈물을 흘리고 새벽에 격문을 썼다. ‘조선독립운동지감상’, 이 명문은 널리 퍼져 중국의 ‘5·4혁명’을 촉발하게 되었고, ‘인도혁명’을 일으켰으며, 아시아의 정치 지형을 바꿨다. 40년 전 파리의 ‘68혁명’에 대해서도 외쳤다. 그때 전세계를 휘감던 혁명정신의 한반도 유입을 차단시킨 박정희 독재와 월남 파병도 비난했다.

사장 취임사로는 좀 과격했으리라. 사장에 지망한 것부터 좀 과격했다. 앞서 사장 면접시험 보는 자리에서, 한 심사위원(양휘부 방송위원)이 ‘콘텐츠는 무엇으로 할 것인가’ 질문했다. 그때 무례하게도 거침없이 답했다. “구조가 중요합니다. 구조와 기본철학이 단단하면 콘텐츠는 하룻밤에 백개라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옳은 생각이었다. 심사위원장(이효성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의 ‘오늘의 교육, 문제점이 무언가?’에도 답했다. “십년, 백년대계도 중요하지만 오늘날 사교육의 범람이 문제입니다.” 한 심사위원(김병수 피디·이비에스 사원대표)은 ‘현재 이비에스의 당면과제’를 물었다. “이비에스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소득과 분배로 민주주의의 토양을 가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방송위원회는 방송위원 9명으로 조직되었다. 노성대 위원장, 이효성 부위원장, 성유보·류숙렬·조용환·양휘부·박준영·윤종보·민병준. 방송위원회의 진지한 토론이 있었다고 뒷날 전해들었다. 최종 후보자가 2명이었는데, 토론에서 1명으로 압축하고 찬반 투표, 재투표 끝에 고석만을 사장으로 선임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15년 뒤, 2018년 이비에스 창사 44돌 기념식장에서 만난 이효성 현 방송위원장은 그때를 회고하며 “객관적이었죠. 참 객관적 선임이었어요”라며 감회에 젖었다. 정치적 입김에 맞선 용단을 했었다는 얘기다. 그의 회고는 이어졌다. “참, 일 많이 하셨죠. 수능 방송, 스페이스 공감, 다큐 영화제, 그중에 ‘수능’은 우리가 처음 기획했잖아요.”

‘수능 방송’이 처음 거론된 것은 조선호텔 미팅룸이었다. 사장 취임한 지 한달쯤 뒤, 이효성 부위원장과 설동근 부산시 교육감, 교육부의 김영식 기획관리실장과 이수일 학교정책실장, 정진곤 한양대 교수 그리고 이비에스의 김준한 기획실장과 이승훈 피디도 참석했다. 이비에스 대표로서 부산교육청의 인터넷 교육 프로그램 요청에서 힌트를 얻어 관계 인사들을 초청한 자리였다.

부산시 교육청에서는 피시 10여대를 들여놓고 인터넷을 통한 입시생들의 ‘방과후교육’을 권장하고 있었다. 학원에 못 다니는 입시생들이 좋아했는데, 콘텐츠가 태부족이라는 것이다. 이비에스의 콘텐츠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마침 이비에스도 핵심과제로 인터넷과 콘텐츠와 수능의 연결을 당면과제로 세워놓았다. 첫날 모임에서 분야별로 차고 넘치는 의견 개진이 있었다. 다음주 부산을 방문한 우리 기획팀은 계속 오가며 기본기획안을 완성했다. 콘텐츠의 생산, 콘텐츠의 유통, 콘텐츠의 수능 연계 그리고 콘텐츠의 신뢰도 확산을 기본기획안에 녹여 넣도록 했다. 취임 초부터 강조했던 강의 프로그램의 고품질화, 유능 강사의 초청 특강, ‘이비에스 플러스’의 수능채널 특화 계획, 특히 소외지역·소외계층의 교육평등을 강조했다.

그런데 수능 방송 기본기획안에 대한 교육부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공청회를 열었다.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을 순회했다. 특히 산간벽지, 즉 교육 소외지역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럴 즈음 안병영 전 교육부 장관이 교육부총리로 ‘컴백 취임’하자 교육부의 관심이 달라졌다. 청와대에도 기획안을 보내고, 국회에 예산도 신청했다. 이제 궤도에 오르는 듯했다. 한데 교육부에서 작성한 ‘2004년 교육부 청사진’을 보면, 250쪽짜리 문서 가운데 ‘교육방송과 수능 연계 기획안’은 겨우 한쪽, 볼품없는 프로젝트로 들어 있었다. 크게 실망해 인터넷방송을 포기할 작정을 하고, 대신 ‘이비에스 플러스1’ 채널의 강의를 고급화하는 데 집중하기로 내부 의견을 모았다. 그때 대구 영신고의 실화 다큐 <꼴찌탈출기>가 방송되며 화제를 모았다. ‘티브이를 켜면 서울대가 보인다’는 연작이 나가자 다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때마침 야당인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국회 기조연설에서 ‘사교육 망국론’을 역설하며 정국의 관심사항으로 떠올랐다. 예산국회에 온 정성을 쏟았다. 겨울비 내리는 국회 예결위 심의실 앞 처마 밑, 밤새 낙숫물을 맞으며 예산 확보를 설득했다. 진인사 대천명, 무려 200억원! 획기적인 예산을 따냈다. 이변이었다. 청와대에서는 숨어 있던 프로젝트를 발견해 부각했다. 수능 연계 프로젝트가 ‘2004년 교육부 청사진’의 첫 장을 차지했다. 안병영 부총리와 ‘이비에스 수능 연계’를 발표하는 기자회견도 열었다. 전국적인 화제가 되었다. ‘2·17 사교육대책’이 그것이다. 기대와 우려가 엇갈렸다. 이비에스는 과열된 사교육의 소방수를 자처했다.

다음 해결 과제는 ‘인터넷 송출’과 ‘동시접속’이다. 정보통신부의 적극적인 협조가 관건이었다. 하드웨어 스트리밍, 인터넷 대란, 웜바이러스 8800대, 동시접속량 측정, 최초 10만 회선 추가 증설, 최고 100만대 동시접속, 시디엔(CDN) 장비 2배 증설, 서버 용량 확대, 침투 방지, 추가 인력 확보 등 산 넘어 산이었다. 미지수와의 싸움이다.

학기제를 면밀히 분석해 방송 ‘디데이’를 4월1일로 잡았다.

2004년 4월1일 개시한 이비에스의 수능 강의 방송은 ‘인터넷 100만 회선 동시접속’ 성공 여부를 두고 전국적으로 비상한 주시를 받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인터넷 설비 용역을 맡은 엘지씨엔에스(LG CNS)는 미국과 멕시코에 상주직원을 체류시키며 초읽기에 돌입했다. 멕시코 과달라하라 공장에서 부속품 제작이 완료된 것이 3월27일, 헬기를 동원해 미국 새너제이에서 조립한 뒤 샌프란시스코 비행장까지 이동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급기야 비행기를 붙잡아두고 30분 지연시키는 소동을 치렀다. 교육부와 건설교통부의 긴밀한 협조가 이뤄졌다. 인천공항 통관에도 비상이 걸렸다. 책임을 맡은 배종대 국장과 이대섭 부장은 설립 완성에 최소 24시간은 걸린다고 했다. 30일 극적으로 성남의 케이티(KT)와 서울 양재동 이비에스 본사에 무사히 당도했다.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4월1일 자정, 이비에스 상황실에 교육 부총리, 정통부 장관 등 100여명이 모여 숙의한 끝에, ‘스니크 인(점증확대) 작전’으로 급선회했다. 동시접속 폭주를 막자는 것이다. 예고된 자정을 넘긴 새벽 2시, 조심스레 개통했다. 아무런 장애가 없다. 성공이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100만 회선 동시접속! 이 땅에 명실공히 이러닝(e-learning) 시대를 열었다. 이야깃거리가 책 한권으로도 부족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해 7월 관계자를 청와대로 초청해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과 고석만 사장을 ‘민관 방통 융합의 본보기’라며 독려했다. 공교롭게도 진 장관의 큰아들(진상국)과 고 사장의 막내딸(고명선)이 미국 피츠버그의 카네기멜론대학 유학 중에 만나 결혼한 직후였다. 대통령은 아울러 수능 방송과 출제율을 90%대까지 연계하도록 지시했다. 파격이었다.

2004년 7월 노무현(왼쪽) 대통령은 ‘디지털 방송 관계자’ 청와대 초청 오찬회에서 고석만(오른쪽) 사장과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에게 ‘수능 방송과 수능시험 연계 확대’를 지시하며 격려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수능 방송이 개통된 그날 저녁 7시, ‘이비에스 스페이스’도 개막했다.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를 위한 작은 무대가 열렸다. 지상파 방송의 출연 제안을 한번도 받아본 적 없는 무명의 지하예술가들이었다. 관객층도 새롭다. 인터넷 접수를 해 하루 179좌석만 무료로 입장하는 특별집단 형태의 공연이었다. 별다른 장치가 없는 무대, 객석과의 거리는 아티스트의 침이 튈 정도로 가까워 숨소리까지 들렸다. 우리의 마당놀이 관극 형태에, 뉴욕 재즈클럽 ‘블루노트’의 음악성으로 꽉 채운 기획이었다. 잘 알다시피 ‘블루노트’는 브로드웨이를 벗어나고, 오프 브로드웨이도 지나, 오프, 오프 뒷골목 공장길에 황량하게 서 있는 2층 집이다. 건물벽에 2층 높이의 푸른 깃발이 늘어져 있을 뿐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묘한 한기가 느껴온다. 온통 검은 벽의 장식, 어깨가 닿을 만큼 빼곡히 앉은 간이의자의 관객들, 세계 최고의 재즈 공연이 시작되면, 200여 관객은 한 호흡이 된다. 하지만 ‘블루노트’의 음향은 세계 최고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 아티스트들이 패전의 아픔을 담아 미국에 뿌리 내린 음향이다. 한국 땅에도 그보다 좋은 공연장을 만들고, 그보다 좋은 아티스트들을 키워내고 싶었다. ‘이비에스 스페이스’는 예상밖의 호응을 받아, 2주 이상 대기할 정도로 예약이 밀렸다. 매일 밤 공연하고, 토·일에 <스페이스 공감>으로 녹화방송되는 새로운 온-오프체제가 빛을 발휘했다. 안팎에서 김준성 피디가 뛰어다녔다. 아티스트는 무대와 티브이가 있어 좋고, 마니아층은 상시 공연을 볼 수 있어 즐겁다. <스페이스 공감>은 이름 없는 음악인들의 눈물겨운 무대였고, 이 땅에 장르를 초월하는 ‘오프 문화’를 꾸려냈다.

이비에스 도곡동 사옥의 강당을 개조한 ‘스페이스’의 첫 무대는 2004년 4월1일 소프라노 신영옥과 슈퍼밴드가 장식해 4월3일 <스페이스 공감>으로 처음 실황이 방영됐다. 이비에스 제공
실은 사장 취임식이 열린 강당에 맨 처음 들어서며 ‘문화적 스페이스’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취임식 강당은 직사각형의 공공기관 잔재 그대로였다. 붉고 검은 긴 커튼의 차광막은 을씨년스럽고, 접이식 철의자의 쇳소리가 날카로웠다. 다목적이란 용도가 무색했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고 싶었다. 중심 인물을 모아놓고 공간 개조를 역설했다. 리모델링에 모두가 찬성했다. 그런데 공연장 ‘스페이스’의 아이디어를 내놓자 한결같이 반대하고 나섰다. 마당극 형태를 제시하자, 세로 모양의 극장 구조에 익숙한 프로시니엄 아치 형태를 고집했다. 음향 문제로 시비가 걸렸다. 카메라 워크도 문제로 제기되었다. 관객들이 마주보는 것도 어색해했다. 심지어 대학교수들을 동원해 이론적으로 부당성을 제기했다. 고정관념과 편견에 가득 찬 태업이다. 그들에겐 희생과 숙명의 미학이 없다. 훗날, 그때 그가 옳았음을 증명하는 실험을 해보자고도 했다. 하지만 나 역시 꼼짝 않는다. 이 세상 고칠 수 없는 법은 없다. 이제 사장 직권뿐이다.

우리는 성장하는 동안 교도소를 개조한 듯한 학교에서 획일적 교육을 받고 자라지 않는가. 어릴 때부터 뛰고 놀아야 한다. 산비탈에서 뛰어놀며 자란 아이들의 공간감과 시간감은 다르다. 그들의 비인지능력이 세상을 바꾼다. ‘이비에스 스페이스’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창의적 문화공간’이 되었다. 이제 떳떳하게 독립을 소리치고, 다른 세상을 향해 자유의 날개를 푸드득거려라.

2004년 8월 ‘제1회 EBS 국제 다큐멘터리 페스티벌’ 개막식에서 조직위원장인 고석만 사장이 개막 선언을 하고 있다. 이비에스 제공
4월1일 이후 이비에스의 모든 직원은 광폭 행보를 해야 했다. 프랑스의 칸 영화제에서 양휘부 방송위원을 만났다. 잘 모셨다. 그가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줘요? 난 당신 사장 될 때 반대했던 사람인데….” 바로 답했다. “그러니까 잘해드리죠.” 그 자리에 한국방송(KBS) 피디협회장 이강택 피디도 함께하며 즐겁게 웃었다. 사장 선임 비하인드 스토리가 더 웃겼다. 그때 메모장을 펼치며 ‘이비에스 국제다큐영화제’ 구상을 꺼냈다. 케이비에스 김현 비서실장은 졸면서 다 보고 다 들었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본령인 이비에스가 가장 잘해낼 수 있는 프로젝트이고, 꼭 해야 할 프로젝트 아닌가? 전세계의 다큐멘터리를 엄선해 방송하고, 다큐 작가들끼리 경연도 하고 친목도 다지게 하자는 취지였다. 이 기획에 매진하는 형건 피디와 정민아 프로그래머에게 일렀다. ‘다큐멘터리 작가를 존경하는 이비에스의 자세’로 임하라.

2004년 8월 ‘제1회 EBS 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 개막식에서 이춘연(맨왼쪽) 영화인회의 이사장, 고석만(왼쪽 둘째) 사장, 성유보(오른쪽 둘째) 방송위 상임위원 등이 외국 다큐영화 감독들과 기념 케익을 자르고 있다. 이비에스 제공
그해 8월24일 ‘제1회 이비에스 국제다큐영화제’가 막을 올렸다. 첫회의 주제는 ‘변혁의 아시아’이다. 초청 범위는 아시아 밖까지 넓혀 세계 67개 나라 120편이 출품되었다. 국제적인 다큐멘터리스트와 함께 아주 색다른 개막식이 펼쳐졌다. 모두가 놀란 것은 일주일간 매일 18시간씩 연속으로 다큐멘터리가 전국에 지상파로 방송된다는 사실이었다. 유례 없는 쾌거였다.

매일 아침 2시간씩 어린이 프로그램도 정규방송으로 나갔다. 어린이들은 ‘파격 편성’의 의도를 모른 채 습관적으로 티브이 앞에 앉을 것이다. 이비에스 어린이를 사랑한다. 이비에스에서 뽑아온 수준 높은 다큐멘터리는 매편 빛났다. ‘온-오프’로 상영되고, 세계적 다큐 작가들과의 토크 프로도 계속되었다. 우리는 ‘다큐를 통해 세상을 바꿔보자’며 기획했다. 이비에스의 ‘십년대계’였다.

집필 고석만, 기획·진행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길을 찾아서] 고석만의 첨병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