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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16 19:19 수정 : 2019.08.16 19:23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한국 드라마 ‘눈길’

일제강점기 때인 1944년 집안 형편 탓에 학교에 가지 못하는 종분(김향기)은 똑똑하고 공부도 잘하는 부잣집 또래 소녀 영애(김새론)를 동경한다. 다복했던 영애의 집은 부친의 독립운동이 알려지며 하루아침에 풍비박산 나고 만다. 영애는 돈도 벌고 상급 학교도 다닐 수 있다는 일본의 선전에 속아 근로정신대에 지원하고, 영애를 따라가고 싶었던 종분은 갑자기 집에 쳐들어온 일본군에 끌려간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다시 만난 영애와 종분은 비참한 환경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2015년 <한국방송>(KBS)이 3·1절과 광복 70주년을 맞아 방영한 특집극 <눈길>은 한국 드라마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1991년 8월14일 고 김학순 선생이 위안부 생존자 중 최초로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이후, <문화방송>(MBC) <여명의 눈동자>가 드라마로서는 처음으로 위안부를 소재로 다뤘으나 그 뒤를 잇는 드라마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눈길>은 그 긴 공백의 역사를 훌쩍 뛰어넘는 성숙한 주제의식과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2017년에는 영화로 개봉됐고, 국외 유수의 시상식에서 여러 수상 기록을 세우는 등 국제적으로도 많은 찬사를 받았다.

<눈길>을 향한 호평 가운데 눈에 띄는 부분은 위안부 생존자들을 단지 비극의 피해자로만 묘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갔던 여성들의 당시 나이를 고증해 10대 중반의 주인공들을 내세웠음에도 총칼보다 강한 이들의 유대와 삶의 의지에 초점을 맞춰 굳건한 생존의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영애가 위안소에서 절망했을 때 종분의 독려가 희망이 되고, 종분이 어둠 속에서 글을 배우고 싶어 할 때 책을 읽어주는 영애의 목소리가 빛이 돼준다. 두 친구가 서로의 온기를 합해 헤쳐나가던 ‘눈길’은 혹독한 폭력의 길이면서도 동시에 고향의 목화솜을 연상시키는 따뜻한 위로의 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눈길>은 여성을 향한 가장 잔혹한 폭력의 역사에 맞서는 강인한 여성 서사다. 이 작품은 1944년의 종분과 영애, 그리고 2015년의 종분(김영옥)과 종분이 사는 다세대 주택 지하에 사는 소외된 여고생 은수(조수향), 두 축의 여성 연대기를 보여준다. 종분과 영애의 수평적 연대가 일본 제국주의의 여성 폭력에 맞서 살아남은 힘이라면, 할머니 종분과 은수의 수직적 연대는 그 역사와 현재의 교감이다. 종분에게 “할머니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고요. 그 새끼들이 나쁜 거지”라고 응수하는 은수의 말에는 선대 여성들의 고통을 향한 후대 여성들의 지지가 녹아 있다. 폭력을 전시하지 않고 그 악랄함을 충분히 전달한 것도 이나정 감독과 유보라 작가 등 여성 제작진의 시선이 반영된 결과다.

2015년 방영 당시 <눈길>의 마지막 방송분에는 ‘3월1일 현재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하신 238분의 할머니 중 185분이 돌아가시고, 이제는 53분만이 생존해 계십니다’라는 자막이 붙었다. 2019년 현재 위안부 피해 생존자 수는 20명으로 줄었으나 그 뒤 자막의 문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제대로 사과도 받지 못하고 떠나신 피해자분들과 지금도 전쟁과 폭력으로 고통 받는 분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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