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8.30 19:22
수정 : 2019.08.30 19:27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영국 드라마 <플리백>
<플리백>(원제 ‘Fleabag’)이 돌아왔다. 2013년 에든버러 프린지에서 초연된 동명 1인극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2017년 <비비시>(BBC)에서 6부작 미니시리즈로 제작되어 큰 호평을 받았다. 원작자이자 드라마 주연, 각본, 제작을 맡았던 피비 월러브리지는 이후 각본과 제작을 담당한 <킬링 이브>를 연이어 성공시키면서 글로벌 드라마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창작자 중 하나로 떠올랐다. 시즌1에서 주인공의 대모 역으로 출연한 올리비아 콜먼이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는 경사도 있었다. <플리백> 후속편에 대한 팬들의 기대는 점점 높아졌다.
지난 3월 <플리백>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시즌이 마침내 공개됐다. 피비 월러브리지, 올리비아 콜먼 등 기존 출연진에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 앤드루 스콧까지 합류해 캐스팅도 한층 화려해졌다. 평단의 찬사는 이번에도 이어지고 있다. <플리백>은 다음달 열리는 제71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코미디 부문 작품상, 여우주연상을 비롯해 총 11개 부문 후보로 지명된 상태다. 피비 월러브리지는 9개 부문 후보에 지명된 <킬링 이브>까지 포함해, 개인·작품으로 22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진기록을 수립했다.
<플리백>을 향한 호평은 기존의 티브이 드라마가 보여주지 못한 현대 여성의 솔직한 초상을 그려냈다는 데서 비롯된다. 그동안 많은 작품이 평범하고 현실적인 여성상을 표방한 캐릭터를 내세웠으면서도 드라마 여주인공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긍정적인 미덕을 고수하려 노력했다면, <플리백>은 그 금기를 거침없이 넘어선다.
‘허접한 인간’이라는 의미를 지닌 드라마 제목처럼, <플리백>의 주인공은 솔직하다 못해 한없이 찌질하기까지 하다. 자신을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며 한심하고 타락한 변태’라고 묘사하는데 그중 약간의 과장은 있을지언정 결코 틀린 표현은 없다. 시즌2에서도 주인공의 비호감 행동은 계속된다. 아빠와 대모의 결혼식 주례를 맡을 신부를 유혹하는가 하면, 그에게 거절당한 뒤 바로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가진다.
하지만 끊임없이 ‘공감성 수치’(드라마 주인공이 창피를 당할 때 자신도 그 상황의 주인공이 된 듯 수치스러운 감정을 느끼는 증상)를 자극하는 주인공의 행동에 고개를 돌리다 보면, 어느 순간 반드시 우리 자신의 일면을 마주하게 된다는 데 이 작품의 진정한 성취가 있다. 한 비평가는 ‘우리 여성들이 더 호감 가고, 더 여성스럽고, 덜 궁핍하고, 덜 감정적인 인물로 보이려고, 본래 모습을 꾸미는 데 들이는 수고가 없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강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이 작품의 페미니즘적 성취를 정리한다. 여성의 솔직함에는 그만큼 많은 자유의 가능성이 있다.
<플리백> 주인공의 비호감 역시 실은 그 누구에게도 잘 보이기 위해 위장하지 않는 여성의 솔직함에 대한 불편함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이를 이해하고 나면 시즌2의 결말에서 조금은 성장한 주인공의 모습에 더 큰 응원을 보내게 된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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