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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10 19:30 수정 : 2005.02.10 19:30



한인 후손들의 성공담 엮여

1905년 제물포를 출발한 조선인 1천여명은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에 도착했다. 이들은 선박용 밧줄의 원료로 용설란의 일종인 ‘에네껜’(henequen) 농장에서 비참한 타향살이를 시작했다. 무더위와 비인간적인 대우 속에서도 이들은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노력했다. 2세들을 위해 서당을 짓고, 조국 독립을 위한 성금을 모았으며, 군사학교를 만들기도 했다. 100년이 지난 현재 이들의 3·4세 후손들은 현지인들과 결혼해 스페인어를 쓰고 있으며, 멕시코와 쿠바에서 하원의원, 주 대법원장, 병원장, 화가, 연주가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문화방송의 멕시코 이민 100주년 기념 특집 3부작 다큐멘터리 <에네껜>(20, 27일 방송)에서 이들의 성공담과 과거 한인노동자들의 실태가 소개된다.

3·4세들 하원의원 등으로 성장
에네껜 ‘주급 명세서’ 최초 공개

노라 유는 멕시코 한인 후손 중 첫 하원의원이다. 노라 유의 증조부는 에네껜 이민 1세 유진태씨로, <서유견문>을 쓴 유길준의 종숙이기도 하다. 후아레스시 시장이 꿈인 그는 “동양계라서 유권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시간이 더 많이 들었고, 여자라서 남자들의 두 배 이상 일해서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한인 4세인 리스벳 로이 송은 동양계 이민 여성이란는 약점을 극복한 멕시코 낀따나 로주의 대법원장이다. 아버지는 플로렌시오 송, 어머니는 중미 벨리스 출신의 떼레사 엔깔라이다. 그의 조부모는 에네껜 농장에서 일하다 재래시장에서 채소 장사를 하며 성공을 일궜다. 뻬드로 가브리엘 총 킹은 멕시코 티후아나의 어린이 자선병원 원장이다. ‘총 킹’은 ‘정 김’이 변형된 것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호세 김, 할머니는 마리아 윤으로 서울 출신이다. 외할아버지는 뻬드로 정이고 외할머니는 마리아 엘리나 장이다. 이들은 모두 멕시코에서 양파 농사를 짓다 정착했다. 멕시코 유카탄의 마야 유적지 관리소장인 한인 3세 라몬 리 레혼과 부산 출신 김발명의 후손으로 베라크루스 최고의 법의학 전문가인 앙헬 에레라 김도 만나본다.

쿠바의 알리시아 데 라 깜빠 박은 유명 화가다. 쿠바 아바나에서 스페인계 아버지와 한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요즘 에네껜에 몰두하고 있다. 100년 전 멕시코와 쿠바로 건너 온 조상들에 대한 경의를 표한 작품으로, 촘촘이 늘어선 밭 가운데 한복을 입은 그의 조부모가 서 있고 하늘에는 태극 모양이 희미하게 그려져 있다. 세실리오 박 김은 연주가다. 한인 3세로 올해 일흔일곱인 그는 아리랑과 애국가, 노사연의 <만남> 정도는 부르고 연주할 줄 알지만, 한국어는 모른다. 그의 마지막 소망은 조상의 나라인 한국 땅을 밟아보는 것이다. 산띠아고 데 쿠바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인 넬슨 울리세스 임 장은 독립운동가로 한국 정부의 훈장을 받은 임천택의 후손이다. 임천택의 아들로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에 참여한 뒤 식품청장을 지낸 헤로니모 임 김은 넬슨의 아버지다. 넬슨은 현재 한국재외동포재단의 지원으로 서울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그의 바람은 외교 관계가 없어 조국의 실체를 잘 모르는 쿠바의 한인들에게 한국을 알리겠다는 것이다.

한편, 이 다큐멘터리에서 에네껜 노동자의 실태와 노동 상황을 알 수 있는 ‘주급 명세서’가 최초로 공개된다. 이 명세서는 1908년 7월27일부터 8월1일까지 한인 노동자들에게 지급된 임금 내역 등이 기록돼 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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