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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스필버그의 ‘뮌헨’…꼬리에 꼬리를 무는 폭력의 계보학

등록 2006-02-08 16:58


스티븐 스필버그의 신작 <뮌헨>의 포스터는 모호하다. 어두운 방안에서 총을 들고 앉아 있는 남자는 누군가를 죽이려는 건지, 자살을 하려는 건지, 과연 총을 쓸 생각은 있는 건지 알 수 없다. 인간 행동의 가장 과격하고 극단적인 표현인 테러리즘을 그리는 영화의 포스터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가라앉아 있다. 영화 역시 167분의 긴 상영시간 동안 관객의 마음을 쥐락펴락할 어떤 제스처도 취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총성이 오가고 폭탄이 터지지만 영화는 점점 더 깊은 묵시록적 암흑으로 침잠한다. 할리우드 최고의 흥행사 스필버그의 이런 선택이 의아해보일 수도 있지만 바꿔 생각하면 스필버그가 아니면 밀어붙이지 못했을 대담한 도박이 아닐 수 없다.

스필버그가 “평화를 위한 기도”라고 표현한 이 영화는 1972년 뮌헨 올림픽 테러사건을 출발점으로 해 이스라엘의 ‘역테러’(counterterrorism) 과정을 따라가며 ‘반테러’(antiterrorism)에 당도하고자 한다. 뮌헨 올림픽 때 팔레스타인들이 이스라엘 선수 11명을 납치, 살해하는 이른바 ‘검은 9월단’ 테러 사건은 영화의 서주다. 당시의 보도 영상을 압축해 상황과 사건의 추이를 절묘하게 보여준 다음 카메라는 대책을 논의하는 이스라엘 각료회의로 시선을 옮긴다. 다음날 젊은 모사드 직원인 아브너(에릭 바나)는 정부로부터 검은 9월단의 핵심 인물 암살을 지시받는다. 아브너는 유럽에서 만난 다른 유대인 요원 넷을 이끌고 암살 리스트에 올라 있는 11명의 팔레스타인 거물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


아브너 일행이 목표물을 제거하는 과정은 스필버그의 장르적 세공력과 스필버그의 오랜 파트너인 야누스 야민스키 촬영감독의 감각적 화면, 빼어난 음향효과를 통해 액션 영화의 장르적 즐거움을 충분히 선사한다. 그런데 이 즐거움 사이에 이물질이 툭툭 끼여든다. 거사를 하루 앞둔 아브너 일행의 만찬은 비장하기보다 샐러리맨의 저녁 휴식을 더 닮았으며 목표물이 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역시 따뜻한 옆집 남자이거나 자상한 아빠로 그려진다. 목표물의 제거가 성취감으로 이어질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이들이 거사에 성공하면 팔레스타인에서는 또 다른 테러로 화답하며 이들이 제거한 목표물의 자리에는 더 잔인하고 악랄한 복수를 준비하는 인물들이 채워진다. 이처럼 애초부터 제거자의 명단이란 줄어들 수가 없다는 진실을 깨달으면서 순진한 애국자였던 아브너의 확신은 흔들린다.

<뮌헨>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폭력의 계보, 특히 정의나 처벌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의 진실을 마치 스필버그의 해설을 곁들인 것처럼 침착하고 꼼꼼하게 그려나간다. 이 계보도는 9·11 테러로 붕괴한 뉴욕의 쌍둥이 빌딩을 영화의 마지막, 화면 한가운데 세워놓고 응시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폭력의 순환구조를 완성하려는 영화적 야심은 뒷부분에서 아브너의 악몽에 뮌헨 사건을 재현하면서 다소 흐트러진다. 아브너의 꿈에 길게 두 번이나 등장하며 시간 순으로 완성되는 뮌헨 테러는 결국 앞부분의 뛰어난 압축미를 느슨하게 풀면서 스필버그가 유대인을 향해 안 해도 되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 것처럼 보여 개운치 못한 느낌을 준다. 제프리 러시, 6대 제임스 본드로 낙점을 받은 다니엘 크레이그, 프랑스 영화감독 겸 배우 마티유 카소비츠 등이 출연했다. 9일 개봉.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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