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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필진] 스크린쿼터 없는 ‘왕의남자’ 가능한가?

등록 2006-02-13 14:32

영화 <왕의남자>의 기세가 대단하다. 조만간 관객 1천만 명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아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넘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 영화 흥행기록을 다시 쓸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마침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이 나오면서 <왕의남자>는 한국 영화의 저력과 경쟁력의 대명사처럼 얘기되곤 한다. 이제 우리도 이렇게 훌륭하고 또 경쟁력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으니 스크린쿼터를 축소해도 되지 않느냐, 헐리웃과 당당하게 자유경쟁하면서 더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장들과 함께.

그러나 나는 정반대로 <왕의남자>의 흥행성공이야말로 스크린쿼터가 왜 지속되어야 하는지를 웅변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흥행의 완성은 관객과의 지속적인 접촉에 의해 가능하다.

스크린쿼터 축소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제 우리 관객이 정말 괜찮은 영화가 나오면 아낌없이 밀어주고 흥행을 성공시켜줄 만큼 안목이 높기 때문에 스크린쿼터라는 안전망 없이도 좋은 영화만 만들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이런 것이다. 지금 개봉한 영화가 과연 좋은 영화인지, 경쟁력이 있는 작품인지, 내 돈이 아깝지 않은지, 흥행에 성공할 것인지 그걸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냐는 거다. 제작비 많이 들어가고 유명 감독이 만들었고 톱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면 정말 볼만한 영화인가? 아니다. 그랬을 거라면 영화 <태풍>이 흥행 태풍을 일으켰어야 했다.


<왕의남자>만 하더라도 개봉 전에 이처럼 흥행에 성공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작품성이 좋네, 시나리오가 괜찮네 하는 얘기들이 있었지만 변변한 톱스타급 배우도 없고 젊은 감독이 만든 영화인데 또 블록버스터도 아닌 것이 이렇게 대박 내리라고는 세상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잘 만든 영화다, 괜찮은 영화다 라는 얘기들이 평론가나 시사회장에서 나온다고 해서 그런 영화들이 곧바로 흥행대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무슨 영화제에서 상 받았다고 해서 김기덕 감독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지 않듯이. 흔히 하는 말로 흥행여부는 정말 “하늘도 모른다.” 좋은 영화인지, 경쟁력 있는 영화인지 결국은 관객이 직접 보고 공감을 해야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스크린쿼터 축소론자들의 ‘경쟁력 있는 영화는 결국 살아 남는다’는 주장이 아주 엄청난 전제조건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관객에 의한 최종 심판이다. 어떤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동원할지 안 할지는 끝까지 가 봐야 안다.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면 헐리웃 직배사들이 한국 영화시장을 싹쓸이하기 위해 흥행조짐이 있는 영화들을 초기에 무력화시킬 게 분명하다. 흥행 초기에 압력을 행사해서 예컨대 300만 돌파한 시점에서 간판 내리라고 한다면 그 영화가 천만을 훌쩍 넘을 대작이었을지, 고만고만하게 겨우 4,5백만 넘을 영화였을지 ‘확인’할 길이 원천 봉쇄되어 버린다. <왕의남자>는 아주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킹콩>이나 <해리포터> 혹은 <다빈치코드> 등을 들고서 “톱스타도 없고 돈도 별로 안 들인 영화가 500만 가겠냐?”고 으름장 놓으면 누가 <왕의남자>는 천만 돌파할 영화라는 예견을 하고서 끝까지 버텨 내겠나.

결국 스크린쿼터는 한국영화가 흥행가도에 있을 때 갈 데까지 갈 수 있도록 해 주는 보호망 역할을 해 주는 셈이다. 이 보호망은 흔히 생각하듯 흥행성적이 저조한 영화들의 최저생계를 보장해 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대박 나는 한국영화들이 확실하게 대박 나도록 (그것도 여러 편) 뒷받침해준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스크린쿼터 축소하더라도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말이다. 스크린쿼터 축소되면 천만흥행은 불가능하다.

둘째,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작품들이 흥행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웰컴투 동막골>이나 <왕의남자> 모두 아무도 대성공을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들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영화시장이 아직은 헐리웃처럼 안정된 시스템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반증하고 있다. 헐리웃 영화는 그래도 대략 흥행방정식이 있다. 누가 감독하고 누가 주연하고 어떤 장르인데 돈 얼마 부으면 어느 정도 흥행한다는 게 대충 예상이 된다. 미국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이고 영화 소재도 바닥나서 속편이나 리메이크 바람이 불고 있다. 영화 산업이 성장할 만큼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영화는 이제 막 쑥쑥 커나가는 성장기의 어린이와 같아서 그 잠재력을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다. 신인 감독들이 큰 일을 내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 와중에 때로는 백윤식처럼 중년 배우들이 재조명을 받기도 하고 또 때로는 이준기라는 초대형 신인이 태어나기도 한다. 불안정한 시장과 시스템, 무궁무진한 소재, 엄청난 시장 잠재력 등등이 저예산, 신인감독, 신인배우, 기발한 소재를 조합한 새로운 실험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는 셈이다.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면 이런 실험자체가 불가능해진다. 한국 영화 내다 걸기도 힘든 판에 누가 이런 흥행보증도 없는 모험에 덜컥 투자하려고 나서겠는가. 어찌되었든 한국 영화가 적어도 146일은 내걸릴 수 있으니까 시장의 불안정성이라는 요인이 벤처를 감행하게 하고 또 성공시키게 하는 배경이 되는 것이다. 이게 절반으로 줄어들면 벤처의 성공가능성은 그 이상으로 줄어든다. 아예 시도 자체가 자취를 감출지도 모른다. 더 이상 우리는 한국 영화의 ‘의외의 흥행’이나 진흙 속의 진주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셋째, 완전한 의미의 ‘자유경쟁’이란 허구다.

미국도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는 나라다. 자유무역의 전도사라는 부시도 미국 철강업계를 보호하기 위해 한국과 유럽산 철강제품에 반덤핑 관세를 때린 적도 있다. 자유경쟁이라는 말은 미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기업들에게만 해당하는 말들이다. 그리고 이 ‘자유’경쟁은 ‘공정’하지가 못하다. 영화 <타이타닉>이 전 세계를 휩쓸 때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값비싸게 제작한 영화비로는 <타이타닉>을 겨우 3초만 찍을 수 있었을 거라는 얘기가 있다. 한국에서는 제작비가 100억 원 넘어가면 대작이라는 소리 듣지만 헐리웃에서는 1급 배우들 몸값만 200억 원 정도 된다. 말하자면 킹콩과 둘리를 싸움 붙여놓고서 ‘공정’하고 ‘자유’롭게 싸워 보라는 얘기다. 이건 자유경쟁도 공정경쟁도 아니다. 그저 처참한 살육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대한다. 그리고 정부 방침에 저항하는 영화인들을 지지한다. 항간에서는 톱스타 배우들이 외제차 끌고 다니며 시위하는 모습을 많이 비난한다. 돈도 많이 버는 주제에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혈안이라면서. 그러나 정말 그럴까? 장동건이나 최민식 같은 배우들은 스크린쿼터가 축소되거나 심지어 폐지되어도 생계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오히려 신인급 경쟁자들이 성장할 가능성이 훨씬 줄어들기 때문에 시장 장악력이 더 높아질 수도 있다. 스크린쿼터 축소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사람들은 비인기 배우들과 스텝들이다. 단순화시켜서 말하자면, 장동건이나 최민식 같은 톱스타들이 한국 영화를 떠받치고 있는 이런 최하 계층의 생존을 위해 시위에 나선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초과학에 종사하는 내 처지에 비유하자면, 정부에서 BK21 사업 규모를 절반으로 줄인다니까 먹고 사는 데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 대학 교수들, 스타 과학자들이 앞장서서 정부를 규탄하고 1인 시위하는 그런 양상이다. 여러분들이 다니는 직장에 구조조정의 바람이 부는데 어딜 가도 먹고 사는 간부급들이 앞장서서 그걸 막아선다고 상상해 보라. 연봉 억대 되는 주제에 자기 밥그릇이나 챙기려고...하는 얘기가 나올 수 없다. 그들의 ‘진정성’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는 게 그리 힘든 일일까.

게다가 지금 영화인들은 한국 영화라는 좁은 틀에서 벗어나 ‘문화주권’의 차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이 점이 향후 한류(韓流)의 새로운 자리매김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미국의 통상압력은 일종의 제국주의적 문화침략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이에 대한 저항 개념으로 나온 것이 문화주권 수호이다. 문화 침략주의에 맞서 문화주권을 주장한 우리가 한류 열풍이 불고 있는 다른 아시아권 나라들에게는 새로운 문화 공존의 모범이 될 수가 있다. 아시아 각국에서 자국 드라마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들이 취해질 때 일시적 반한류를 염려하면서도 결국 한류란 침략적인 일방통행이 아닌 공존을 향한 교류이어야 함을 우리 내부에서 자기 반성했음을 기억하자. 한류의 본질이 아시아적 가치의 재발견이라고 했을 때 그 아시아적 가치라는 것이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 비슷한 관습 등을 넘어서 문화와 문화 산업을 바라보는 시각, 공존에 대한 철학까지도 포괄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대하여 문화주권을 지키려고 나선 움직임은 문화 교류와 공존에 대한 아시아적 해답을 찾아 나가는 전대미문의 중요한 과정이며 한류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는 중대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얘기들이 현재 한국 영화가 노정하고 있는 온갖 문제점들, 모순들을 없는 것으로 치부하자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다들 이해하리라고 본다. 이번 기회에 갖가지 불합리한 면들은 그것대로 고쳐 나가야 한다. 그런 것들은 따지고 보면 스크린쿼터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스크린쿼터가 축소되어 헐리웃의 입김이 더 세지고 한국 영화의 하층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는 합리적인 개혁이 더더욱 요원하지 않을까.

안타까움과 분노와 좌절감, 답답함, 그러나 한 조각 희망을 가슴에 품고 나는 내일 <왕의남자> 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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