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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영화관은 공부하는 곳이 아니다?

등록 2006-02-15 14:48수정 2006-02-15 15:12

얼마 전 영화잡지 'Screen'에서 '영화관은 공부하는 곳이 아니다' 라는 제목의 기사를 '자신있게' 내보낸 적이 있다. 하지만 난 안타깝게도 그 기사를 보고 더이상 'Screen'지 구독을 하지 않는다.

그 필자의 주장은 이렇다. 영화를 보러 가는 관객들은 문화를 즐기려는 것 뿐이니, 관객에게 필요 이상의 역사적 배경지식이나 골치아픈 주제를 던지는 것은 무의미하고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난 완전한 반대의 입장이다. 아니, 영화관이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니? 영화관이야말로 공부하기 좋은 곳이고 얼마나 공부하기가 쉬운데? 그렇지 않다면 분명 그런 영화문화가 되어야 함이 옳다. 비록 영화 역사의 시작은 그렇지 않았다고 해도 앞으로 영화가 걸어가야 할 길은 '관객들의 의식을 한단계 진보시키는 길'이라는 걸 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의 한국 영화문화는 너무 가볍다. 독립영화 상영관도 극히 적고, 독립영화가 아니라고 해도 흥행요소가 없는 영화는 영화관에서 반겨주지 않는다.

하나의 예를 들어볼까?

내가 보고 싶었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 제목이 주는 상징성인 매력에 끌려 영화관을 찾아 헤맸지만 딱 한 군데에서 상영했고, 상영기간이 너무도 짧아 시기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난 결국 그 아름다운 영화를 컴퓨터로 다운받아 볼 수 밖에 없었다.

거대 투자자들은 소위 돈이 될만한 영화에만 눈독을 들이고 경쟁을 한다. 이렇듯 오늘날의 영화는 '예술'이 아닌 '상업'으로 전락되어버렸다.

난 솔직히 요즘 흥행 감독들의 사상과 표현기법이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할 수 없다. 왜 요즘 흥행 감독들은 모두 여성의 나체나 남성의 성기에 관한 에피소드에 관심이 있고, 한국 정서와 맞지도 않는 권총과 칼부림에 혈안이 되어 있는지 나로선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또 그런 영화를 보고 웃고 즐거워하는 관객들 또한 이해할 수 없다.


아직 어린 내가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영화로 세상을 바꾸는 그런 감독이 되겠다고 말할 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그러면 돈은 어떻게 벌려고 그러냐" 라는 말을 하곤 한다. 세상을 바꾸는 영화는 어렵고, 어려우면 재미없고, 재미없으면 망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나는 흥행했다고 해서 영화로서 무조건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후세대들이 현대영화사에 남을 가치있는 영화를 꼽을 때 김동원 감독의 '송환'을 뽑지 '조폭마누라'를 뽑진 않을 거라는 거다.

흥행에 성공한 영화 중에서도 몇몇 가치있는 영화들이 있으니, 바로 '공동경비구역 JSA'와 '웰컴 투 동막골'이다. 흥행에 성공했다는 것은 대중의 코드를 맞추기 위해 상업적인 무언가와 어느정도 타협했다는 것이긴 하지만 위 나열한 영화들은 그래도 감독 자신의 색깔과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고 영화로서 세상에 메세지를 던지려고 했다는 것에서 가치가 있다.

그렇다면 이 때 중요한 것은 관객의 태도다.

관객은 영화가 자신에게 던지는 메세지를 무조건적으로 감상하기 보다는 비판적으로 생각해야 함이 옳다. 그러나 많은 관객들이 영화관을 데이트코스로 생각하거나 '무슨 영화 하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가보자'는 식의 가벼운 발걸음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앞서도 밝혔듯이, 영화관은 공부하는 곳이어야만 한다.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자신이 모르는 세계가, 깊이 알지 못하는 감독의 시선으로 내 눈앞에 펼쳐지는 곳이 바로 영화관이다. 그러므로 아무런 마음의 준비없이 좌석에 앉았다가는 감독이 말하는 메세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뿐더러, 비판적 사고 없이 영화에 흡수될 위험이 크다. 그 점을 노리고 실제 조폭들이 배후에서 영화에 조폭을 미화시키도록 한 것이 밝혀져 큰 논란이 되기도 했었지 않은가.

또한 놀랍게도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에 속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한국사에서 건드리기 힘든 실미도 문제를 영화화했다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강우석감독은 큰 오류를 범했다. 684부대원들의 신원을 사형수나 범죄자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원래는 젊은 청년이나 실업자들이 '돈 벌게 해줄게'라는 정부의 거짓말에 속았다는 게 옳다. 실제로 684부대원들의 친가족들이 영화가 잘못됐다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언론은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다. 이런 오류를 범했다는 것은 강우석 감독이 영화를 만들면서 정확하게 연구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며, 사실을 전달하기 보다는 소재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나도 '실미도'를 보며 눈물을 흘린 천만관객 중 하나이지만 나중에 그런 사실을 알고나서 얼마나 속상했는 지 모른다. 지금은 '보여지기 위한 좌익'으로 가려진 강우석 감독의 실체를 알고나서 강우석 감독의 영화는 웬만하면 보지 않고 있다.

이렇듯 영화는 세상의 본래 모습을 왜곡하기도 한다. 그러나 관객들은 스크린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영화에 나온 모든 것을 믿는 성향을 보인다. 때문에 관객들이 정신 차리지 않으면 영화에 속기 딱 십상이다.

이제 초호화 캐스팅, 제작비 몇십억원, 해외로케이션 등의 번쩍거리는 선전보다는 감독이 내게 말하고자 하는 세상이 무엇인지 공부하는 자세로 영화를 선택해야 한다. 관객의 수준이 높아지면 자연스레 영화들의 격도 높아진다. 영화를 즐기지 말자는 게 아니다. 즐기면서 영화를 즐기는 것, 그것이 우리 영화를 사랑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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