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남자들이 모르는 은밀한 것들’
여성간의 도발적인 성관계, 난교파티 등 대담한 성 묘사가 먼저 눈에 띄는 프랑스 영화 <남자들이 모르는 은밀한 것들>은 ‘유혹의 법칙’에 관한 이야기다. 화면에 겉으로 드러나는 건 타오를 듯 뜨거운 관능의 향연이지만 이 향연을 연출하는 건 얼음보다 차가운 게임의 규칙이며 승자는 모든 것을 가지고 패자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영화는 ‘은밀한’ 내면의 욕망에 귀기울이라고 속삭이면서도 이 욕망에 끌리는 대신 이 욕망을 장악하라고 이야기한다. 인간의 ‘본능’을 이성으로 조직한다는 것은 모순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자기가 파놓은 덫에 걸린 팜므파탈(요부)에 관한 이야기이도 하다.
스트립바에서 쇼걸로 일하는 나탈리와 바텐더 상드린은 같은 날 해고된다. 나탈리의 성적인 당당함을 부러워하던 상드린은 나탈리의 집에 머물면서 나탈리를 통해 숨겨진 자신의 성적 욕망을 발견하게 되고 한걸음 더 나아가 두 사람은 원하는 직장, 원하는 삶을 쟁취하기 위해 자신의 관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한다. 같은 회사의 다른 부서에 취직한 두 사람은 유혹의 대상을 정해 각각의 ‘작업’을 착실히 이행해 나간다.
그러나 과연 성매매가 아닌 바에야 누군가를 유혹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 과연 칼로 무를 자르듯이 정확히 나눠질 수 있을까. 순진한 상사를 유혹했던 상드린은 마른 가지에 물이 오르듯 가슴 떨리는 사랑의 고백을 하는 남자의 진심에 마음이 흔들린다. 싸늘한 성조련사임을 자임했던 나탈리는 더욱 강력한 ‘유혹의 강자’인 사장 아들의 버림을 받고 비참한 스토커로 돌변한다.
<남자들이 모르는 은밀한 것들>은 돈과 권력, 그리고 섹슈얼리티로 얽히는 사회적 관계망에 대한 질문을 제법 도발적으로 꺼낸다. 그러나 그 삼각형의 정점에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독립변수를 앉혀 놓음으로써 복잡하고 미묘한 그 욕망의 계보를 그려내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거칠게 말해 돈 많고 잘 생긴 독재자 남성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여성이라는 결론은 아무리 여성의 욕망에 귀기울이는 남성 감독(장 끌로드 브리소)라고 해도 남성적 시선 안에 놓여있는 여성의 욕망이라는 혐의를 벗기 어려워 보인다. 17일 필름포럼 개봉.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프리비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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