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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음란서생’ 얼마나 도발적이뇨?

등록 2006-02-22 21:45


<음란서생>은 화제가 될 요소가 많은 영화다. 조선시대 최고의 문장가가 음란소설을 쓴다는 설정에서부터, <반칙왕> <정사> <스캔들>의 시나리오 작가 김대우의 감독 데뷔작이라는 점, 한석규의 첫 사극이라는 점, <장화, 홍련> <형사>의 감각적인 화면 구성을 이끌었던 조근현 프로덕션 디자이너가 가세했다는 점 등등…. 도발적이고, 짜임새 있는 드라마가 있고, 이걸 연기와 때깔 좋은 화면이 뒷받침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영화는 그 기대를 반쯤 충족시켜 준다. 연기와 화면은 기대치에 부합하지만 드라마는 불안정하고 무엇보다 도발적이지 않다.

윤서(한석규)는 사헌부 관리이자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꼽히는 이다. 그의 집안은 당쟁에서 밀려난 쪽이지만 그는 가세의 회복같은 데에 큰 관심이 없다. 사색가에 가깝고 한량 기질도 있어 보인다. 왕의 총애를 받는 후궁 정빈(김민정)의 족자 위조 사건 수사를 맡아 처리하면서 음란소설을 유통시키는 사람들을 알게 된다. 그 뒤로 두가지 변화가 뒤따른다. 음란소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됨과 동시에, 정빈과의 사이에 내연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이런 설정은 흥미롭다. 음란소설은 상상과 판타지의 영역이지만 정빈은 현실의 살아있는 여자이다. 음란소설은 ‘저질’스럽지만 실제 여자에 대해 연정이 싹틀 때는 뭔가 숭고하고 초월적이고 싶은 생각이 뒤따르기 쉽다. 양립하기 힘들다. 음란소설에서 손을 떼던가, 연정을 ‘저질’스럽게 채우던가 둘 중 하나다.

윤서는 후자의 길을 택한다. 왜? 어차피 ‘왕의 여자’여서 정상적 사랑이 불가능하기 때문? 확인되지 않는 사랑의 형이상학적 가치를 믿기엔 윤서의 세계관이 유물론적이어서? 그렇게 유추는 가능하지만 영화는 구체적인 단서를 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 시대 음란물의 유통구조를, 작가적 상상으로 설계해 보여준다. 익명의 저자가 원본을 쓰면 그걸 여러권으로 필사해 세인들이 돌려읽는다. 유통구조를 묘사하면서 영화는 실제 그 시대에 그랬을 것같다는 개연성을 중시하기보다, 요즘 인터넷 정보 유통구조와 대비시키는 등의 방식으로 유머를 자아내도록 하는 데에 주력한다. 이런 식이다. 필사본을 돌려읽으면서 독자들이 짧은 소감을 책 뒷장에 줄줄이 이어 붙인다. 유통업자들이 이걸 ‘댓글’이라고 이름붙인다. 또 자기가 쓴 음란소설의 반응에 일희일비하는 윤서의 모습 안에 글쟁이 출신 감독 스스로에 대한 은유를 담기도 한다.

이런 자잘한 유머와 에피소드들은, 음란한 욕망과 근엄한 사회 사이의 긴장을 담아내려고 하지 않는다. 영화는 그런 갈등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영화가 정작 관심을 갖는 곳이 어디인지는 정빈의 캐릭터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부터이다. 정빈은 윤서와 정반대로 사랑하는 감정의 확인을 중시하는 것에 더해 원하는 것은 모두 가져야만 하는, 사랑 신봉자이자 소유욕의 화신같은 인물로 그려진다. <음란서생>은 아마도 이런 여자와 윤서같은 남자의 만남이 빚어내는 비극을 다루려고 한 듯한데, 이런 이야기는 정교한 캐릭터 묘사와 세부장치를 요구한다. 그러나 영화는 곁길 유머와 에피소드에 집중하다가 뒤늦게 정빈과 윤서의 갈등을 부각시킨다. 그러다보니 정갈한 마무리가 힘든 건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음란하면서 도발적이지 않다면(포르노와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위험할 수도 있다. <음란서생>은 도발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위험하지는 않다. 음란하기보다 웃기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아쉬운 건 도발성의 부족이 아니라, 진득하게 얘기하고자 하는 그 무엇이 찾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충무로의 주류 스태프와 배우들이 참여해 만든 영화라는 점에서 그 아쉬움이 더 커진다.

임범 기자 isman@hani.co.kr, 사진 비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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