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재밌는 영화
2주 이상을 입원해 있다가 막상 퇴원을 하고보니 영화가 고팠다. 천만을 돌파했다고도 하고 왕의 남자의 성공에 대한 갖가지 찬사가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퇴원할 날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마침내 그날이 오고야 만 것이다.
영화는 두말할 나위 없이 재미있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익히 들어온 탄탄한 구성, 연기자의 열연, 풍성한 볼거리 등이 유감없이 망라된 그야말로 재미있는 영화였다.
더구나 이 영화는 시대적 배경이 조선 초기 갑자사화란 시대적 배경에 작가의 픽션을 그럴듯하게 풀어놓음으로서 사극이라고 보기엔 현대적인 이슈(동성애)를 줄거리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로 가미시킴으로서 사극을 보면서도 전혀 시대극이라고만 느낄 수 없는 볼거리를 제공하였다.
영화 도입부에서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 !”란 대사를 여러 차례 반복하며 엇갈리기만 하던 두 사람의 운명은, 마지막 외줄 위에서 또 다시 “나 여기 있고..”를 반복함으로서 두 사람의 운명이 필연적으로 광대의 외길로 마주칠 수 밖에 없었다는 암시를 준 것도 인상적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를 보고 집에 도착해서야 이 대사가 표절시비에 휘말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창의력 예찬
영화를 보면서 작가의 창의력에 대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생과 공길이 양반에게 농락당하던 비천한 처지를 박차고 나와 한양 저자거리에서 왕과 장록수를 풍자하여 장안의 명물로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왕을 웃음거리로 비하하는 것은 왕권에 대한 도전이며 왕에 대한 능멸과 동일시되던 당시 사회에서 그들의 의금부 압송은 필연적이다.
거기서 장생은 환관과의 한판 승부를 벌이는데 그것이 바로 이 풍자극으로 왕을 웃게 만들겠다는 것 이었다. 왕이 이 극을 보고 웃는다면 자신들은 죄가 없다고 주장한 것 이다.
곡절 끝에 연산은 파안대소 하였고 놀이 패는 그때부터 조선 당쟁 소용돌이의 중심축으로 휘말리게 된다.
공연이 거듭될수록 공연으로 인한 살육이 이어지고 급기야는 ‘폐비윤씨 사건을 극으로 풍자함으로서 [갑자사화]란 피로 쓴 역사의 한 축’을 장식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연산과 공길 그리고 록수의 삼각관계와 질투..
그리고 연산과 공길 그리고 장생의 삼각관계와 질투가 여러 복선을 이끌어 내면서 긴장감을 높여 간다.
공길과 연산은 그림자극을 하면서 서로의 진심을 토로하고 인간적으로 이해하게 되지만 록수와 장생의 질투와 조정의 당쟁은 이들의 사랑을 비극적 결말로 이끌게 된다.
팩트(fact)와 픽션(fiction) 그리고 아쉬움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fact)에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함으로서 극의 긴장감을 높이고 관객으로 하여금 쉽게 결말을 예측할 수 없게 하였지만 나는 영화에 몰입할 수가 없었다.
조선시대는 엄격한 신분제 사회이고 호칭이나 격식에 대해 매우 엄격한 사회였다. 왕이란 엄밀히 말해서 군주의 신분표현이지 호칭이 아니다. 중국의 황제는 조선의 왕을 왕이라 부를 수 있었지만 조선의 백성은 임금을 왕이라고 감히 부르지 못했다. 조선시대에 백성은 왕을 임금님이나 상감마마 혹은 나라님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영화에선 시종 “왕이..왕께서..”하는 호칭이 반복되는데 계속 귀에 거슬리기만 하였다. 특히 내관이 국왕을 “왕께서..”라고 호칭한 부분에서는 짜증스럽기까지 하였다. 조선시대에 중신이나 내관은 임금을 “주상 전하..”혹은 “전하”라고 불렀음은 사극을 자주 보지 않는 사람도 익히 아는 일이다.
또 한 가지는 근정전에서의 연회에서 연산의 앞에 버티듯 거만하게 앉아있는 록수의 모습이었다. 비록 연산이 반정을 통해 폐위된 폭군으로 역사에 남았다 할지라도 국왕이 앉아있는 용상 앞에서 왕을 업수히여기는 모습을 보였다면 즉각 록수의 폐위를 주청하는 상소가 빗발치는 사회가 바로 조선사회인 것이다.
더구나 록수가 중신들 앞이나 궁녀들 앞에서 공공연히 연산에게 하대를 하는 장면은 연산의 모후인 폐비 윤씨가 성종의 얼굴에 생채기를 냄으로서 폐위된 것 보다 훨씬 중대한 왕권 모독이다. 더구나 연산 당시의 조선은 왕권과 신권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결국 중종반정이란 신권의 반란이 이루어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미묘한 시기에 궁녀가 왕에게 공공연히 하대하고 중신들이 이를 모른 채했다는 것은 당시 사회를 너무 안일하게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비록 극중에서 작가의 창작영역을 가미하더라도 복식이나 대사처리(특히 장록수가 연산에게 반말을 하는 것은 잠자리 송사에 국한했다면 영화가 보다 실감이 났을 것이다.)에 대해 좀더 철저한 고증이 필요했다고 보여 진다. 즉 당시의 의관(衣冠)이나 임금에 대한 호칭 문제 등은 창작의 영역이 아닌 사실의 영역에서 고증이 이루어졌어야 옳다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왕의 남자는 매우 재미있는 영화이지만 매우 좋은 영화라고 하기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중신들을 풍자하기 위해 전국의 놀이 패를 모아 경연을 벌이는 장면에서 좀더 다양한 볼거리를 기대했지만 별 다른 공연 없이 지나간 것이 어딘지 어색해 보였다. 그 장면에서 팔도 놀이패의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했다면 영화의 완성도는 보다 높아졌으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나의 투덜거림에도 불구하고 왕의 남자는 소재와 제작 그리고 연출과 연기 모든 분야에서 한국 영화가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고 있음을 보여준 쾌거라 보여져 뿌듯함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한국 영화..나 여기 있고 너도 여기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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