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대부호 하워드 휴즈(1905~1976)는 엄청난 돈 뿐 아니라 잘 생긴 외모, 항공학자를 기죽게 하는 뛰어난 두뇌와 비행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거는 용기까지 모든 걸 가진 인물이었다. 반면 그는 특수제작한 비누로 30분마다 손을 닦고, 사람들의 손때를 타는 문고리는 반드시 휴지로 잡아야 하는 결벽증 환자이기도 했다. 거대 항공사 TWA와 영화사 RKO를 양 손에 쥐고 흔들던 젊은 시절에는 할리우드 인기 여배우들의 숭배를 받았지만 결벽증이 정신병이 된 말년에는 손톱을 수십센티 기르고 화장지 상자를 신발처럼 꿴 채 유리방 속에 스스로를 유폐시키다가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남자배우라면 누구라도 탐을 낼 하워드 휴즈 역에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감독은 마틴 스콜시즈가 맡아 <갱스 오브 뉴욕>에 이어 다시 한 팀으로 날렵한 이륙을 시작한다. <닉슨>이나 <알렉산더>가 그랬듯 <에비에이터>도 모성 컴플렉스에서 문제적 인간의 기원을 찾는다. 영화의 첫장면, 꼬마 휴즈를 씻기면서 전염병의 위험을 이야기하는 어머니의 마지막 한 마디 “넌 안전하지 않아”는 평생 휴즈를 따라다니는 족쇄가 된다. 영화는 곧바로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아 청년재벌이 된 휴즈의 이십대로 건너뛰어 그의 화려한 성공기를 중계한다. <에비에이터>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황금기 시절의 화려한 사교계 모습과 그 속을 거니는 휴즈가 캐더린 햅번(케이트 블랑켓), 에바 가드너(케이트 베킨세일), 진 할로(그웬 스테파니)같은 최고 스타들과 엮어가는 여성편력이다. 절대로 남과 같은 잔을 사용하지 못하는 그는 우유를 나눠마시면서 햅번과 연인 이상의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고, 가드너는 휴즈의 결벽증이 심각해질 때마다 그를 돕는다. 또한 휴즈의 비행에 대한 집착은 <에비에이터>를 스콜시즈의 영화라고 믿기 힘들만큼 화려한 스펙터클의 세계로 펼쳐놓는다. 그러나 화려한 겉모습 안에 감추어졌던 휴즈의 기괴한 내면을 따라가는 여정은 이 역시 스콜시즈의 영화라고 생각하기 힘들만큼 피상적이다. 영화는 할리우드 사교클럽 안에서 광채를 발하던 그가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갑자기 변하는 눈빛과 표정을 보여주는 등 휴즈의 명과 암을 반복해 교차시켜 보여준다. 그러나 이때마다 디캐프리오의 얼굴에는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나 <분노의 주먹>의 라모타가 보여줬던 파멸의 어두운 그늘 대신 빨리 어른(대배우)이 되고 싶어하는 소년의 조급증이 더 크게 느껴진다. <에비에이터>가 ‘웰메이드’영화라는데는 이견이 없겠지만 스콜시즈 감독의 격렬함과 깊이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아카데미 영화제를 겨냥한 타협물이라는 비아냥을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 18일 개봉.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영화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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