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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박찬욱·최민식씨가 말하는 ‘스크린쿼터와 FTA’

등록 2006-03-07 19:54수정 2006-03-07 22:52

영화계, 농민까지 이용? 싸우면서 ‘연대’ 배웠다

정부가 7일 국무회의에서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 상영 일수, 이하 쿼터)를 축소하는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오는 7월1일부터 스크린쿼터는 절반으로 줄어들게 됐다. 그동안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를 외쳐 온 영화인들은 그 힘을 가지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하 협정)을 결렬시킨 뒤 스크린쿼터 원상 복귀 운동을 벌인다는 장기적 계획을 가지고 이 협정의 반대 운동에 나서고 있다. <올드 보이>의 박찬욱 감독과 주연배우 최민식씨는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운동에 앞장서 온 것과 같은 자세로 앞으로 자유무역협정 반대 운동에 임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무엇이 한국 영화의 정상에 서 있는 박 감독과 최씨를 이런 큰 운동으로 내모는 걸까. 지난 4일 둘을 만나 스크린쿼터를 지키려 하는 이유와 자유무역협정을 어떻게 보는지를 캐물었다.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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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터는 축소가 기정사실이 됐고, 영화인들은 협정 반대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히고 있다. 영화인들과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맞물린 스크린쿼터 지키기 운동 때보다는 아무래도 결집력이 약해지지 않을까 싶은데.

박찬욱=영화인들에게 쿼터 문제는 이해하기 쉬웠지만 협정은 그만큼 쉽고 명료하지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영화인들이 호락호락 물러설 것 같지는 않다. 또 장기전에 대비해 차분하게 준비해 나가고 있다. 전도연, 김혜수를 만났더니 최민식보다 훨씬 더 흥분해 있더라(웃음).

최민식=이제는 지구전이다. 배우들이 다 운동가가 될 수는 없지만 집행부를 중심으로 몇몇 배우, 감독이라도 연대의 끈을 놓지 말고 서로 지지·격려하면서 같이 가야 한다.

어쨌거나 영화인들에게 출발은 스크린쿼터이고 지금도 마찬가지일텐데, 그동안 스크린쿼터를 비판하는 여론이 만만하지 않았다. 그 중 자주 등장하는 논리의 하나가, 쿼터가 대다수 스태프들의 저임금 구조를 고착화시키는 등 영화계 안의 빈익빈 부익부를 부추긴다는 것이었다.


전도연·김혜수, 최민식보다 더 흥분

박찬욱=배우들의 외제 자동차 얘기가 제일 큰 것 같은데 이건 유치하다. 만약에 스타 배우들의 출연료 1억원을 깎는다고 하면 그 돈이 저임금에 시달리는 영화게 노동자들에게 갈까. 그건 별개의 문제다. 저임금은 따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 노력은 이전부터 해 오고 있지 않은가.아직 구체적인 성과를 못 내고 있을 뿐이다. 저임금 노동자들이 왜 쿼터 사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겠는가.

최민식=빈익빈 부익부 문제, 배우들의 허영, 존재한다. 그러나 백번 생각해도 그게 쿼터를 없애자는 논거가 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 연기생활 하면서 내가 받는 출연료가 이렇게 비난의 대상이 됐는지 당황스러웠다. 지금은 굳은 살이 배겨 (배우들 비난하는) 댓글 읽는 게 즐거워지는 지경이 됐지만.

배우들이 외제 차 탄다는 게 일반인들에겐 그들이 개인적이고 사회 공동체적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말처럼 들렸던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이 자기 밥그릇이 흔들리니까 마치 대단한 사회운동을 하는 듯 나선다, 그래서 보기 싫다, 이런 심리 아니었을까.

박찬욱=배우들의 독특한 처지가 있다. 그들은 자신이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대중들에게 보이기를 겁낸다. 나나 문소리는 민노당 당원인데, 오해나 악의 섞인 말들이 나온다. 오락영화를 찍어도 정치적 의도로 해석되기도 하고. 정치적 행동이 인기에 도움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정작 그 자신은 곤혹스럽기 쉽다.

최민식=사회 갈등이 불거질 때, 농민들이 방패에 맞아죽을 때 너희들이 코빼기라도 비쳤냐, 밥 그릇 찌그러지게 생겼으니까 나온 거 아니냐, 그렇게 문제를 삼는 이들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어떤 운동이나 시위도 이해 당사자가 나서는 것이고 그게 당연한 것 아닌가.

박 감독 말처럼 배우들의 정치적 발언이나 행동은 오해받기 쉬운데, 최민식씨는 이번에 훈장 반납한 뒤에 어땠나. 또 전에는 쿼터 지키기 운동에 크게 적극적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올해 들어 최일선에 나서고 있다. 개인적인 계기가 있는가.

최민식=오죽하면 내 안티카페까지 생겼다. 속 상했지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다. 성격상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인 것이고 특정한 정치적 색깔을 지닌 것도 아니고. 계기가 있다면 화가 나서 나섰다. 대통령이나 문화부 장관, 재경부 장관 모두 작년말만 해도 쿼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래놓고는 물 밑으로 축소 결정하고 기습적으로 발표했다. 애국 배우들이 외제 차 왜 타느냐며 여론을 호도하고 배우들의 인격을 모독했다. 아직 이 사회 관료들의 배우에 대한 인식이 <왕의 남자>의 광대에 대한 인식에서 달라진 게 없구나. 그게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한국영화는 ‘양’ 할리우드는 ‘늑대’

박찬욱=영화 산업이 있는 나라의 스타 출연료는 비싼 것이다. 대체 불가능한 자원이기 때문에, 전지현의 매력은 아무도 대체할 수 없으니까 돈을 많이 주는 거다. 스타는 접근하기 힘든, 신비에 쌓인 존재이다. 외제 차가 아니라 우주선 타고 다녀도 나는 할 말이 없다. 스타들의 독특한 위치를 비난의 대상으로 삼아서 궁극적으로 관객에게 뭐가 좋을지 묻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 영화도 이제 어른이 됐으니 더 보호할 수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대통령뿐 아니라 쿼터에 반대하는 이들의 가장 큰 논리가 한국 영화의 경쟁력이 생기지 않았느냐는 것과 왜 영화만 보호받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박찬욱=애, 어른 비유하니까 하는 말인데 영화는 어른 돼도 종자가 다르다. 한국 영화는 새끼 양이 어른 양이 된 거다. 늑대하고는 종자가 다르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고 물량 공세를 벌이면서 극장쪽에 압력을 가하는 일이 몇년간 지속될 경우, 그 뒤엔 참상이 벌어질 것이다.

최민식=다른 문화분야와 다른 영화만의 독특한 유통 배급 구조가 있다.음반은 최소한 가게에 진열이라도 된다. 영화는 아예 스크린에 걸 기회를 빼앗겨 버리게 된다.

최민식씨는 최근 농민 집회에 참석했는데, 쿼터와 농업을 대비시키는 주장도 있다. 농민들은 굶어죽을 판인데 쿼터 좀 줄이면 어떠냐는 식의.

최민식=나는 연대의 필요성으로 농민 집회에 갔다. 바보가 아닌 이상 (영화인들이) 농민까지 이용한다는 비난을 왜 예상하지 않았겠나. 이제는 연대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거다. 쿼터만 지키기 위한 것이기보다 협정의 부당성에 대해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절대적 필요성을 느낀 거다.

박찬욱=왜 전에는 농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싸워가면서 배우는 것도 있다. 쿼터 싸움 하다 보니까 이게 따로 갈 수 없는 것이구나, 그래 우리가 잘못 생각했구나, 같이 가야 한다, 그런 생각인 것이다.

배우들에게 쿼터 지키기 운동은 자기 문제와 관련된 것이니까 오해를 살 여지가 그래도 적지만 협정 반대 운동을 벌이면 여러가지 말들이 분분할 것 같다.

최민식=각자의 판단에 맡겨야지, 후배 배우들 붙잡고 강요하면서 그러니까 우리가 돌대가리 소리 듣는다 이럴 수는 없지 않나.(웃음)

박찬욱=스타 배우들의 참여는 줄 수도 있겠지만 다른 분야와 연대해서 힘을 얻게 되는 게 있지 않을까. 또 영화계는 모두가 항상 촬영 중에 있지 않기 때문에 인력을 교대해 가면서 운동을 할 수 있다. 김지운 감독은 게을러서 이런 데 동원하기 힘든데 요즘 일이 없으니 열심히 하지 않나.

최민식=집사람이 왜 하필이면 요즘 촬영이 없어서 욕을 듣냐고 한다.(웃음)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가.

박찬욱=국익이라는 말 그만 하고 삶의 질이랄까 그런 포괄적 개념을 도입해서 정책 결정의 기준을 삼아야 한다. 협정이 국익을 증대시킨다고 하더라도 그 소득을 누가 차지하는 건지, 실제로 다수의 삶이 풍요로워질지, 피폐해질지를 따져야 한다. 협상을 최소한 3년 정도 시간을 갖고 하겠다면 나는 아무 소리 안 하겠다. 이런 어마어마한 협상을 이렇게 빨리 하려는 의도를 모르겠다. 내가 영화사 대표로 최민식과 출연료 협상을 하는데 최민식이 먼저 나서서 결과가 어떻게 되든 사흘 내로 협상하자, 그러면 당연히 출연료 깎아도 되나 보다 하고 생각할 것 아닌가.

최민식=70년대 초 유신헌법 만들 때도 통반장이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유명만화가의 만화까지 실린 <유신헌법의 필요성> 같은 유인물을 나눠주고 했다. 지금은 그런 것도 없이 협정을 밀어붙이려고 한다. 자국민에 대한 설득이나 양해를 구하는 일 없이 무슨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식으로.

진행·정리/임범 김은형 기자 is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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