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데이지’
의류 광고에서 커플을 이뤘던 전지현과 정우성이 스크린에서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데이지>는 한국과 홍콩, 일본, 네덜란드 스태프까지 아우르는 다국적 프로젝트다. <무간도>의 성공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유위강이 직접 카메라를 잡았고 <매트릭스> 시리즈와 <스파이더맨2>의 액션을 연출했던 임적안이 무술감독을 맡았다. 영상 못지 않게 화려하고 우아한 음악을 자랑했던 <화양연화> <2046>의 작곡가 우메바야시 시게루가 음악을 만들었으며 시나리오는 <엽기적인 그녀>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의 곽재용 감독이 썼다. 킬러·형사·화가 삼각관계
다국적 프로젝트 ‘이름값’ 못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데이지>는 스태프들의 명망이 주는 기대치에 비해 다소 싱거운 영화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두축인 ‘액션’과 ‘멜로’가 ‘오버’하지 않으면서 그럭저럭 적당한 비율을 유지하지만 두 축 사이에 놓인 드라마의 연결고리들은 엉성하다. 특히 뒤로 갈수록 비극적 결말로 가기 위한 이야기의 비약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암스테르담에서 할아버지와 살며 그림을 그리는 혜영(전지현)에게 누군가 매일 같은 시간 데이지꽃을 보낸다. 혜영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 박의(정우성)이 살인청부업자라는 자신의 신분 때문에 혜영 앞에 나서지 못하고 말없이 꽃만 보내는 것이다. 어느날 광장에서 초상화를 그리던 혜영 앞에 한 남자가 데이지 화분을 들고 나타나자 혜영은 이 남자 정우(이성재)가 꽃을 보낸 이로 오해하고 그를 사랑하게 된다. 킬러와 형사, 그 사이에 놓인 한 여성의 삼각관계. <데이지>는 이야기의 얼개부터 매우 낭만적이다. 여기에 비현실적으로 보일 만큼 아름다운 암스테르담과 네덜란드 시골의 풍경이 낭만성을 더 한다. 하다못해 박의에게 청부 지시를 의미하는 암호가 검은 튤립의 배달이 되는 식의 낭만적인 설정의 연속이다. 여기서 가장 돋보이는 낭만적 색채는 100% 네덜란드 로케이션으로 촬영한 이국적인 풍경이다. 유위강 감독의 카메라는 스틸 사진을 찍듯 이따금씩 화면을 정지시키면서 부드러운 질감으로 고풍스런 도시와 자연, 그리고 여기에 그림처럼 어울리는 여주인공 전지현의 맑은 얼굴과 세련된 스타일을 담아낸다. 이쯤되면 <데이지>가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고급 팬시 상품이라는 데 이의를 달기 힘들 것같다. 벽에 걸어두면 근사할 것 같은 비주얼의 향연은 눈을 즐겁게 하지만 그림이 아닌 영화 감상이 주는 포만감을 느끼기는 힘들다. 혜영을 바라보는 박의와 정우를 바라보는 혜영의 엇갈린 사랑에 ‘운명’이라는 단어를 걸쳐 놓기엔 등장인물들의 감정적 기류가 미지근하게 느껴지는 데다 박의와 정우 사이의 긴장감은 너무 짧은 시간에 끝나버린다. 촬영감독으로 유위강의 실력은 비교적 발휘된 편이지만 연출력이라는 점에서 <데이지>는 그냥 슬쩍슬쩍 넘어간 느낌이 강해 아쉬움이 남는다. 홍콩무협영화의 60~70년대 전성기를 이끌었고 한국팬들에게 ‘깡따위’로 불리며 큰 사랑을 받았던 액션 배우 장다웨이(강대위)가 살인청부조직의 보스역을 연기했다. 9일 개봉.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아이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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