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원
출생 1955년 02월 24일
소속 푸른영상
감독「상계동 올림픽」,
「미디어 숲 속의 사람들」,
「야보고의 5월」,「명성 그 6일의 기록」,
「또 하나의 세상」, 「한 사람」,「철권가족」,「송환」, 「다섯개의 시선 - 종로, 겨울」 이 푸짐한 얼굴의 감독. 얼굴 뿐만이 아니라 세계를 품어 보는 시선까지 푸짐하니 더 바랄게 없다. 다큐공동체 <푸른영상>의 대표로 있는 그는 사회가 미처 바라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그러나 굉장히 중요한 부분들을 다룰 줄 아는 안목과 깊이를 갖추고 있다. 2003년 발표한「송환」의 놀라운 작품성에 세계가 감동하여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대한민국에 몇 안되는 귀한 감독, 김동원 감독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 독립영화계의 맏형 독립영화, 기록영화, 다큐멘터리 등에 관심있는 후학들에게 김동원은 '독립영화계의 맏형'으로 불린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기록성'과 '고발성'을 지니고 있다. 별다른 기교없이 담담한 줄거리와 영상, 딱 보기에도 안정되지 못한 열악한 촬영환경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는 우리에게 다가와 가슴 한 부분에 정확하게 꽂힌다. 그 이유는 뭘까? 그의 '메세지'가 너무나도 강렬하기 때문이 아닐까? 필자 역시 영화감독을 꿈꾸는 사람이다. 예술영화에는 관심이 있었으나 기록영화에 대한 이해는 많이 부족한 터였다. 그런데도 김동원 감독님을 직접 뵙고 나서부터는 기록영화계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그의 인간성이 묻어나는 작품들은 참 매력적이다.
▲ 김동원 감독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독립영화하는 사람들은 영화를 한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영화를 하는게 아니라 운동을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 상계동 올림픽
1988년 발표한 김동원 감독의 데뷔작「상계동 올림픽」은, 김 감독의 데뷔작이기도 하지만 기록영화로서의 최초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국내의 민감한 사항을 건드려 이목을 끌었다. 올림픽이 거행되는 상계동 그 이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당시 국민들이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김동원 감독은 달랐다. 올림픽때문에 한국을 찾은 외국 손님들이 이용하는 고속도로 옆에 보이는 더러운 판자집들을 강제로 철거한 국가의 만행을 기록한 것이다.
아무도 알지 못하도록 조용하고, 그렇기에 더더욱 잔인했다. 쫓겨난 철거민들은 올림픽 개최라는 국가의 큰 행사에서 소외되었다. 전국민에게 감동으로 남은 1988년이 그들에겐 뼛속까지 억울하고 한스러운 해였던 것이다.
그들을 김동원 감독의 카메라는 담담하게 담는다. 그들의 격한 투쟁도, 고독히 주저앉는 모습도, 너무 빠르지도 않게 너무 느리지도 않게 담담하게 담아낸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감독의 메세지가 느껴진다. 기록영화의 관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김동원 감독은 자기에게 내재되어있는 본능과 치열한 고민으로 이루어내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상계동 주민들과 매년 송년회를 하고 있다는 김동원 감독의 따스한 인간성은 영화 이상의 그 무엇을 전해준다.
■ 송환
한국 영화 처음으로 선댄스영화제에서 수상한 이 기가 막힌 작품「송환」은, 비전향장기수들의 삶을 담은 기록영화이다.
'송환'이라는 제목부터 느낌이 남다르다. '보내다'는 뜻의 '송(送)'과 '돌아오다'는 뜻의 '환(還)'이 한 단어에 들어가 있다. 보내는 국가와 돌아가는 국가, 즉 2개의 국가가 있다는 것이 암묵적으로 드러나있는 단어인 것이다. 굳이 '비전향 장기수'의 존재를 일부러 제목에 드러내지 않았어도 이미 그 상징성이 크다. 김동원 감독의 훌륭한 감각이다.
남측과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고문당하며 자신의 사상을 '전향'하라는 강요를 받은 분들. 그리고 자신의 의식을 지켜내신 분들의 이야기는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해주었다. 비록 고문에 지쳐 전향서에 서명한 분들도 계셨지만, 그들이 당했을 고통의 시간을 내 다 알지 못하기에 그저 묵묵히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 해변에서 해맑게 웃고 계신 비전향장기수 할아버지들.
그들의 모습에서 다름을 느낄 수 없다.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통받는 것은 인정될 수 없다.
이렇게 비전향장기수 할아버지들이 전해주는 감동도 감동이지만, 자그마치 12년동안을 비전향장기수들과 살을 맞대며 그들의 일상을 담아내는 데 여념이 없었던 김동원 감독의 모습 또한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지게 만든다.
이 영화에서 묘미가 있다면 바로 김동원 감독이 직접 한 '나레이션'과 '자막'이다. 담담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가끔 유머러스한 풍자성 짙은 발언을 하는 감독의 재치에 맛이 더해진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객관성'이 생명인 기록영화에서 감독의 '주관성'이 들어간 것이 꼬투리가 잡힌 것이다. 그러나 이것에 대한 변명을「화씨 911」의 마이클 무어 감독의 이야기를 빌려 한다면 이렇다.
"감독이 카메라를 어떤 위치에 두느냐도 감독의 주관성이 들어간 것이다."
즉, 기록영화라고 해서 감동의 주관성이 완전히 배제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김동원 감독이 기록영화의 성격을 갖고 있는「송환」에서 자신의 주관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은, 기록영화라는 것의 규율을 깨트린 것이 아니라 진보한 행위라고 본다.
「송환」은 '미완의 걸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마치 4·19 혁명을 '미완의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을 떠올리게끔 하는데, 이 완벽해 보이는 영화가 미완의 걸작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이유가 있다. 아직 남(南) 내에서의 송환이 끝나지 않기도 했으며, 송환된 할아버지들이 북(北)에서 생활하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김동원 감독의 카메라에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조금 더 두고봐야 하겠다.
□ 강요된 가난이 아닌 자발적인 가난
김동원 감독의 여러 작품들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느껴진다.
"강요된 가난이 아니라 자발적인 가난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김동원 감독은 그래서인지 강요된 가난에 희생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려준다.「상계동 올림픽」에서 나타난 철거민들의 모습 역시 국가에서 강요한 가난에 희생된 모습이었다.
어떤 인터뷰에서는 "나는 대충 가난하게 살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지만, 그는 이미 "가난은 미덕이 아니다. 단지 내 삶의 방식일 뿐이다."라는 생활철학을 소개한 바 있다. 그가 속해있는 푸른영상이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 영상사가 아닌데도 그가 끝까지 애착을 버리지 않는 모습만 봐도 그가 돈을 위해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아니라는 것 쯤이야 쉽게 알 수 있다.
□ 진정한 표현의 자유
예술인들의 입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표현의 자유'라는 말. 선댄스 영화제에서「송환」으로 '표현의 자유 상'을 받은 김동원 감독은 도대체 어떤 이유로 그 상을 받았을까?
나는 감히, 표현의 자유에 '용감함'과 '정직함'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겠다. 그리고 그 미덕이 김동원 감독에게 있었기 때문에 김 감독에게 '표현의 자유 상'이라는 영광이 안겨졌다고 생각한다.
흥행을 노린 것이 뻔히 보이는 소위 상업적 영화 감독들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앞서 말한 '용기'와 '정직'이 부족하다. 어떤 감독들에겐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부재'되어 있기까지 한데, 그것은 바로 '자기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흥행의 코드'를 표현했기 때문이다.
즉, 여성의 나체에 흥분하는 남성의 표정이나 동작을 코믹하게 보여주는 장면을 '감독의 자유로운 표현'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것은 감독 자신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선정적임(여성의 나체)과 코믹함(남성배우의 엽기적인 표정이나 동작)을 합하여 보다 많은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설정한 것에 불과하다.
(물론 내가 이렇게 따지고 들지 않아도, 상업성을 띠는 영화 감독들이 "내 영화는 나의 메세지를 담고 있다. 나의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 달라"고 말하기 민망한 노릇이긴 하다.)
그러나 김동원 감독의 표현은 진정함속에서 빛이 났다.
「송환」을 발표한 2003년이야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으로 그나마 남과 북의 관계가 누그러진 후였지만, 남과 북의 대립이 예민했던 과거 상황 속에서도 그는 카메라를 들고 비전향장기수들의 모습을 담았다. 자그마치 12년동안이나 말이다.
그가 과연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을 찾았던 것일까? 이렇게 질문을 써놓은 나도 스스로 웃음이 나올 정도로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이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비전향장기수'의 문제를 표현한 것이다. 실제로 많은 극우 언론들이 그 영화의 작품성을 인정하려 들지 않을 것을 예감하고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가 굳이 영화 제작을 하고 발표한 이유는, 자신의 '표현'이 진정으로 옳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
□ 진보주의자보다 더 진보적인
김동원 감독 자신 스스로는 '자유주의자'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진보주의자보다 훨씬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송환」에서 그는 좌익과 우익, 양쪽 모두에게 비판을 받았고 또 그만큼 공감대도 얻어냈다고 한다. "양쪽 모두의 허점을 다 알고 있었다"는 농담을 던지는 그이지만, 그는 그만큼 진보성과 중립성을 동시에 지닌 사상을 지닌 진정한 진보주의자가 아닐까 싶다.
내가 직접 만난 첫 감독임과 동시에, 내게 어마어마한 자극을 준 분이다. 최근「다섯개의 시선」에서 <종로, 겨울>이라는 작품으로 류승완, 장진 감독과 어깨를 나란히 한 그는 이제 어느덧 대중들에게도 이름이 알려진 거장으로 거듭났다. 상업성·대중성과 타협하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유명세를 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단순히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그의 표현의 진정성이 빛을 발한 것이다.
12년이라는 제작기간 앞에 사람들이 놀라 입을 벌릴 때 그는 말한다.
"김태일은 푸른영상이 만든 네 편의 장기수 관련 작품 중 세 편을 이미 찍었고 변영주는 「낮은 목소리」를 5년간 만들었다. 그리고 요리스 이벤스는 60년 동안 카메라를 들고 세계 곳곳의 혁명지를 돌아다녔고 오가와 신스케는 나리타공항 농민들의 투쟁을 우연히 보고 죽을 때까지 카메라를 돌렸다."
결코 자만하지 않는 겸손한 그는 한창「송환2」제작 준비에 들어갔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귀하기만 하다. 김동원 감독 특유의 기록영화가 나오기를 조용히 기다리는 동시에 열렬히 응원하고 있는 뜻을 밝히며 글을 마친다.
「또 하나의 세상」, 「한 사람」,「철권가족」,「송환」, 「다섯개의 시선 - 종로, 겨울」 이 푸짐한 얼굴의 감독. 얼굴 뿐만이 아니라 세계를 품어 보는 시선까지 푸짐하니 더 바랄게 없다. 다큐공동체 <푸른영상>의 대표로 있는 그는 사회가 미처 바라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그러나 굉장히 중요한 부분들을 다룰 줄 아는 안목과 깊이를 갖추고 있다. 2003년 발표한「송환」의 놀라운 작품성에 세계가 감동하여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대한민국에 몇 안되는 귀한 감독, 김동원 감독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 독립영화계의 맏형 독립영화, 기록영화, 다큐멘터리 등에 관심있는 후학들에게 김동원은 '독립영화계의 맏형'으로 불린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기록성'과 '고발성'을 지니고 있다. 별다른 기교없이 담담한 줄거리와 영상, 딱 보기에도 안정되지 못한 열악한 촬영환경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는 우리에게 다가와 가슴 한 부분에 정확하게 꽂힌다. 그 이유는 뭘까? 그의 '메세지'가 너무나도 강렬하기 때문이 아닐까? 필자 역시 영화감독을 꿈꾸는 사람이다. 예술영화에는 관심이 있었으나 기록영화에 대한 이해는 많이 부족한 터였다. 그런데도 김동원 감독님을 직접 뵙고 나서부터는 기록영화계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그의 인간성이 묻어나는 작품들은 참 매력적이다.




| 한겨레 필진네트워크 나의 글이 세상을 품는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