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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문소리

등록 2006-03-15 22:23

예쁜 척, 지적인 척…“나도 착각 속에 살아요”
<오아시스> <바람난 가족> 등에 출연하면서 배우 문소리(32)에게는 ‘센 캐릭터’라는 표현이 자주 따라 붙었다. 도발적인 표정과 자세를 드러낸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의 포스터는 다시 이 표현을 떠오르게 한다. 포스터나 노출장면 등 겉꺼풀만 보자면 조은숙이라는 캐릭터 역시 세다. 그러나 한꺼풀 벗기고 들여다 보면 예쁜 척, 우아한 척, 지적인 척, ‘척’으로 둘러싸인 그 인물에서 보통 사람들의 ‘뒷담화’에 오르내리는 주변의 누군가, 그리고 문득 뜨끔거리는 내 뒷통수를 느끼게 된다.

“나도 센 거 하기 싫었어요. 도발, 모험 이런 거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고. 그런데 정답처럼 딱 떨어지는 영화나 인물은 재미없잖아요. 캐릭터를 만들어가면서 어떤 게 나올까하는 긴장감이 좋고. 생각해보니 이것도 악취미네(웃음)”

내숭과 위선으로 둘러싸인 은숙의 캐릭터는 솔직하고 직설적인 편인 문소리의 성격과 판이하다. 문소리 자신도 은숙이라는 여자를 주변에서 알고 있었다면 “재수없어했을 인물”이다. “처음에는 이 여자의 빤한 내숭과 ‘척’하는 성격을 만들어가는게 즐거웠어요. 웃기잖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 수록 내가 그녀의 진짜 욕망에 무심했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진심이 별거겠어요. 잘 살고 싶고, 쪽팔리기 싫고, 사랑받고 싶고. 사람 마음이 다 비슷한 거 잖아요. 그런 점에서 좋아할 수는 없어도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죠.”

진심이야 어쨌거나 연기와 제스추어로 하루하루를 사는 은숙은 어떻게 보면 진짜 ‘배우’다. 그러니까 문소리는 이 영화에서 배우를 연기하는 배우인 셈이다. “잘난 척하는 은숙이 정신나간 거 처럼 보이지만 생각해보면 배우라는 직업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누군가 만들어준 세계에 퐁당 빠져서 그게 진짜 자기의 세계인 것처럼 착각하기 쉽잖아요.” 배우 문소리 역시 가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헷갈린다고 한다. “일 때문에 좋은 옷 입고, 비싼 화장하지만 배우가 아니라면 이러고 살겠어요? 그런데 이런 게 익숙해지면 마치 내가 진짜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도취에 빠져 살 수도 있는 거죠.”

지금 대학로에서 공연하고 있는 연극 <슬픈 연극>은 문소리에게 “정신 번쩍 들게 하는” 예방 주사 한방과도 같다. “프로 무대는 처음인데 연극을 하면서 밥맛이 좋아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사람과 부딪힌다는 게 이런 거구나 매일 새로워요.” 다음달부터는 텔레비전 드라마 <태왕사신기> 촬영에 들어간다. 영화에서 연극으로, 텔레비전으로 바쁜 걸음을 시작한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영화하다가 텔레비전 한다고 하면 인지도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사실 저는 지금이 좋아요. 문소리 이름은 많이 아는데 얼굴은 잘 몰라서 사는데 별 지장이 없는 정도(웃음). 그냥 연기고 연출이고 다양한 분야가 장르를 넘나들면서 작업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래야 서로 도움이 되면서 발전하는 길이 아닐까 하는 거죠.”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의뭉스런 지식인들…부조화가 빚어내는 웃음

어떤 영화?

대학교수, 환경운동가, 프로듀서. 만화가.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그럴싸한 직함을 하나씩 달고 있다. 그런데 카메라에 비춰지는 이들의 일상은 폼나지 않는다. 남자들은 은근히 때로는 노골적으로 아름다운 여교수 은숙에게 매달려 입맛을 쩍쩍 다시고, 은숙은 남자들의 눈길을 적당히 받아들이고 적당히 튕겨내며 더 섹시하게, 더 우아하게, 더 지적으로 보이려고 안간 힘을 쓴다.

진지한 명분으로 테를 두른 이들의 허접한 일상 안에 박필(지진희)이라는 신임 교수가 들어온다. 젊고 잘 생긴 남자의 출현에 남자들은 긴장하며 은숙은 아연실색한다. 박필은 은숙이 ‘심하게’ 놀았던 10대 때 어울렸던 인물. 이제 사람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속내를 가지고 서로를 견제하기 시작한다.

<여교수…>는 은밀하기 보다는 노골적이며 때로 의뭉하게 ‘지식인 커뮤니티’의 알량한 속내를 보여준다. 등장인물들의 대화에는 외국어와 고담준론의 인용과 시가 등장하지만 이 모든 ‘우아한 것’들은 사람들의 뻔한 욕망, 치졸한 심보와 대비돼 ‘짜고치는 고스톱’처럼 우스꽝스러운 일상을 부각시킨다. 대화가 진지해지고 인물들의 열정이 뜨거워질수록 분위기는 썰렁해지고 이런 부조화가 빚어내는 웃음이 영화를 이끌어간다. 그 썰렁한 웃음에 ‘홍상수식’이라는 꼬리표를 떼기는 힘들것같지만 상업영화 틀 안에서 독특한 스타일을 끝까지 밀고 나간 신인 이하 감독의 뚝심에 박수를 보낼 만한 데뷔작이다.

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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