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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워킹타이틀이 만든 영화 ‘오만과 편견’

등록 2006-03-22 22:38수정 2006-03-22 22:44

[100도 강추] 로맨틱 코미디 명가 원작 화법으로 ‘원조’ 재연

똑똑한 신데렐라 진정한 사랑을 말하다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노팅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러브 액추얼리> 등을 통해 ‘로맨틱 코미디의 명가’로 자리 굳힌 영국 제작사 워킹타이틀이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을 영화화했다. <오만과 편견>이 쓰여진 빅토리아조의 과장섞인 수다를 빌려온다면 워킹타이틀의 <오만과 편견> 제작은 피할 수 없는 운명적 사건이고 왜 2005년에야 이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소설 <오만과 편견>은 진정한 사랑을 열망하는 남녀가 그들을 가로막는 여러가지 제약 속에서 오해와 갈등으로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서로에 대한 애정을 확인한다는 로맨틱 코미디의 원형을 제시한 고전이다. 워킹타이틀의 뿌리는 제인 오스틴이 구축한 로맨틱 코미디의 문학적 전통 위에 내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이 제작사는 이미 <오만과 편견>의 근엄하고 사려깊은 18세기 남성 다아시를,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콜린 퍼스가 연기한 같은 이름의 캐릭터를 통해 수트 차림의 매력적인 21세기 인간형으로 변신시킨 바 있다.

영화 <오만과 편견>은 영국의 고전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영국인들이 스크린으로 옮긴다는 자신감과, 재해석 대신 원작에 충실한다는 겸손함이 화학적 상승작용을 일으킨 멋진 결과물이다. 워킹타이틀의 최근 작품들과 달리 감독, 배우, 스태프 등(배경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요소를 영국적인 것으로 완성한 이 영화는 재치있고 사랑스러우며 뻔하지만 보는 이를 지치지 않게 하는 로맨틱 코미디의 진가를 빛내고 있다.

<오만과 편견>은 본래 <첫인상>이라는 제목으로 제인 오스틴(1775~1817)이 스물 한살에 집필했던 소설이다. 이 소설을 쓸 무렵 제인 오스틴은 신분차이로 인한 남자쪽의 반대로 결혼에 실패했다. 실연이 계기가 된 소설에는 당연히 신분과 돈이 결혼의 조건이 되는 현실에 대한 냉소와 더불어 그 벽을 부수고 사랑의 결실을 이루고자 하는 꿈이 녹아들어갔다.

결론만 말하면 <오만과 편견>은 꿈이 현실을 이기는 신데렐라 스토리지만 소설의 주인공 엘리자베스(키이라 나이틀리)는 자신을 존중하며 현실을 헤쳐나간다. 예나 지금이나 돈이 결혼시장의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는 사회에서 제인 오스틴이 제시한 낭만적‘이상주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 젊은 여성들을 잠시 세워 귀기울이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21세기의 영화는 19세기의 소설보다 단도직입적이다. 카메라는 첫장면에서 책을 읽으며 들판을 걸어오는 엘리자베스를 한참 응시한다. 말만한 아가씨가 들판을 활보하는 것도 독서에 몰두하는 것도 후한 점수를 못받던 시절, 엘리자베스는 순종 대신 총명함의 미덕을 지닌 여성이다.


그러나 총명한 아가씨라고 연애와 결혼의 전장터를 비껴갈 수는 없다. 유산 상속의 권리도 없고 결혼만이 여성의 생계책이던 시절 딸만 다섯을 둔 베넷가의 안주인의 지상과제는 부유한 집안에 딸들을 시집보내는 것이다. 이들이 사는 시골에 부유한 가문의 젊은 남자 빙리와 그의 친구인 다아시(매튜 맥파든)가 여름 휴가를 오자 온 동네가 들썩인다. 참한 첫째딸 제인은 빙리와 서로 한 눈에 반하지만 자존심 강한 둘째딸 엘리자베스는 거만한 다아시와 묘한 긴장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제인 오스틴 소설 영화화
원작보다 차분한 시선
주·조연 충실한 연기
다 아는 이야기는 새롭게

극 중에서 엘리자베스는 ‘오만’한 상대방과 그에 대한 ‘편견’으로 갈등을 빚다가 화해를 향해 나아가는 로맨스의 주인공이자 그 시대의 분위기에서 한발짝 떨어져 당대의 ‘오만과 편견’을 들여다 보는 관찰자 역할을 한다. 그 덕에 원작자가 “이 작품은 너무 가볍고 밝아서 그늘이 필요하다”고 표현했던 소설에 비해 영화의 시선은 차분하다. 그 시선은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와 실랑이를 벌이는 순간보다 둘의 손이 스칠 때의 조용한 진동을 긴장감 있게 전한다. 또 소설에서 양념처럼 들어갔던 주변인물들의 심리를 놓치지 않으면서 사랑과 결혼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각기 다른 태도를 풍부하게 펼쳐놓는다. 특히 두차례에 걸친 무도회의 번잡한 풍경을 유유히 헤쳐나가면서 간결한 대사 한토막과 그들의 표정을 통해 한 자리에 모인 여러 사람들의 동상이몽을 재치있게 잡아내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소설과 다른 영화의 힘을 보여주는 <오만과 편견>의 매력이다.

시대극의 사실성에 충실한 <오만과 편견>의 대사는 직설적이고 가끔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막강한 후원자를 잡아 자신감 넘치면서도 비굴한 콜린즈가 베넷가에 청혼하러 왔다가 빙리와 눈맞은 제인 대신 엘리자베스를 흥정하는 안주인에게 “꿩 대신 닭도 좋죠”라고 말하거나 엘리자베스의 친구 샬롯이 “(못생기고 나이 든) 내게 사랑은 과욕이야” 말하는 건 세련된 요즘 로맨스 드라마에 비하면 촌스럽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런 직설어법들이 오히려 통쾌한 느낌을 준다.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복잡한 인과관계를 만들고 억지이유로 요란스럽게 포장하는 요즘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이 풍기는 느끼함과 대비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아는 뻔한 이야기를 하는 이 영화가 지루하지 않게 전개되는 데는 영국적인 앙상블 드라마의 전통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그 진로가 예정된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긴장관계보다 흥미진진한 건 조연들의 개성있는 캐릭터와 그에 부합하는 호연이다. 젊은 주연배우들과 함께 도널드 서덜랜드, 주디 덴치 등 관록있는 실력파 배우들이 영화를 안정감 있고 풍요롭게 채워나간다. 텔레비전 드라마 연출자 출신인 서른세살 신예 감독 조 라이트의 첫 영화 연출작이다. 24일 개봉.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유아피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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