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실종된 ‘석유패권 쟁탈전’ 그대로
할리우드에서 만든 반미 영화 한편이 31일 개봉한다. 워너브러더스가 직접 배급하는 <시리아나>는 미국의 석유재벌과 중동 석유산출국 왕가의 유착관계를 폭로하는데, 그 적나라함의 수위가 충격적이다. 미국 석유재벌들은 중동을 자국의 이익에 종속시키기 위해 뇌물 공여, 협잡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여기에 중앙정보국(CIA)까지 끼어들어 직접 암살 공작을 실행한다. 영화 속 석유 회사 이름이나 등장 인물 모두 100퍼센트 가공인 픽션 드라마이지만, 풍요한 미국의 이면에서 그 풍요를 가능케 하는 추악한 메카니즘의 묘사엔 개연성이 넘쳐 흐른다. 영화를 만든 이들은 2001년 아카데미 감독상 등 4개 상을 거머쥔 <트래픽>의 스티븐 소더버그(감독), 스티븐 개건(각본) 사단이다. 이들이 <시리아나>에선 제작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스티븐 개건으로 역할을 바꾸고 조지 클루니와 맷 데이먼, 제프리 라이트, 크리스토퍼 플러머 등의 스타를 대거 출연시켰다. 명실공히 할리우드 주류들이 이처럼 노골적인 반미 정치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미국의 또다른, 그러나 반가운 이면이다. 영화를 위해 3년 동안 전세계를 누비며 석유재벌, 무기 거래상, 헤즈볼라 지도자 등을 직접 인터뷰한 스티븐 개건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중동과 서방의 관계를 소재로 한 영화를 단순한 오락거리로 만드는 건 범죄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면 <시리아나>에 담긴 미국-중동 정치 메카니즘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될까. 실제 미국-중동 관계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또 이 영화가 그 사실에 부합하는지를 한국외국어대학교 이란어과 유달승 교수가 짚어봤다. 유 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와 테헤란대학에서 이란 정치를 전공했다. 중동 전문가 유달승 교수가 본 ‘시리아나’ 허구와 사실 사이 ‘검은 황금’이라고 불리는 석유는 20세기초에 중동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석유메이저회사들은 좀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중동에 직접 개입하였고 이 시기부터 중동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일부 중동 산유국들은 석유메이저들의 횡포에 대항하여 자원의 자주적 관리운동을 주장하였다. 미국과 석유메이저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중동 국가들의 부패한 왕정체제를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민족주의 정부에 대해서는 체제 전복을 시도했다. 1951년 이란의 지도자 무함마드 모사데크는 외세의 개입에 저항하여 석유국유화를 주장하면서 민족주의 정부를 수립하였다. 하지만 미국은 경제제재를 실시하면서 1953년 미 중앙정보국 주도의 아작스 작전(Operation Ajax)으로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모사데크 정부를 무너뜨렸다. 영화 속에서 미국이 개혁적이고 자주적인 아랍 왕자 나시르를 암살하는 것은 단순한 영화 속 허구만이 아니다. 현재 미국과 이란은 핵개발을 둘러싸고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는데 영화 속의 ‘이란해방위원회’도 실제 미국의 대 이란 정책의 일부분을 반영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이란 핵문제가 주목받게 된 계기는 2002년 8월 이란 반정부 단체인 ‘이란국민저항협의회’(NCRI)의 폭로였다. 반정부 망명인사로 구성된 이 단체는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며 이라크 전쟁의 명분을 제시한 ‘이라크국민회의(INC)’와 비교된다. 이라크국민회의가 제공한 전쟁 명분은 현재 거짓으로 판명났다. 미국은 2003년 5월 이란민주주의법을 제정하고 이란 반정부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적극 지원하고 있는 ‘미국의 소리(VOA)’ 방송 페르시아어판인 ‘라디오 파르다(Radio Farda)’는 지나친 반이슬람적 내용으로 이란 국민들에게서 오히려 반감을 사고 있다.
또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중국의 부상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이란은 미국의 봉쇄정책에 대항하여 중국과의 연대를 점차 강화하고 있다. 이란과 중국은 2004년 10월 이란의 야다바란 유전개발권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미국과 석유메이저회사들의 ‘석유전쟁’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세계 최대의 석유 소비국인 미국은 하루 소비량 1940만배럴 가운데 7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9·11 동시테러 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의 진짜 목적은 바로 석유패권을 확대하려는 것이다. 1997년 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은 중앙아시아 파이프라인 건설에 합의했다. 이 컨소시엄에서 미국의 유노칼이 가장 큰 지분(47%)를 가지고 있었지만, 아프간 탈레반 정권과의 불화로 사업이 중단됐다. 결국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한 이후 친미정권 아래서 사업이 다시 시작됐다. 이라크전에서도 최대 수익을 얻은 회사는 에너지·군수 기업 핼리버튼으로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이 한때 최고경영자로 재직했던 곳이다. <시리아나>는 선과 악의 대립 속에서 정의가 승리하는 기존 할리우드 영화와는 완전히 다르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현실 세계를 그대로 반영하며 또한 정의도 승리하지 않는다. 이 영화를 통해 중동의 현실을 다시 고민하게 된다. 유달승/한국외국어대학교 이란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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