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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소년과 어른 사이, 난감한 열아홉

등록 2006-04-12 18:45

영화 ‘피터팬의 공식’
앞길이 창창한 고3 수영선수 한수(온주완)는 어느날 갑자기 수영을 그만 둔다. “잘해봤자 아시아 최고밖에 더 되겠어요”라는 모호한 핑계만을 반항하듯 수영코치에게 툭 던진 채. 잘해봤자 세계 최고는 될 수 없기 때문인지, 아시아 최고가 돼봤자 별볼일 없을 것같아서인지, 그냥 연습이 싫증난 것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아마도 그 모두일 것이다.

열아홉살. 어른들이 꾸며 놓은 ‘꿈과 희망’의 세계가 자신의 다 자란 몸과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아버린 나이다. 신인 조창호 감독의 <피터팬의 공식>은 네버랜드의 문을 닫고 나와 어른들의 세상 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그 ‘통로’안의 시기에 대한 영화다.

통로에 서 있는 한수 앞으로 고된 세상이 조금씩 그 문을 연다. 세상이 ‘허무해서’ 떠난다는 유서를 남기고 음독한 엄마의 병원수발과 위협적인 빚독촉이 그의 손을 문 안으로 끌어당긴다. 그는 주저한다. 옆집으로 이사온 음악 교사 인희(김호정)는 어찌할 줄 모르는 한수에게 위안을 주면서 동시에 그를 더욱 혼란에 빠뜨린다. 한수는 집에 홀로 남은 그에게 반찬을 챙겨주는 인희에게 아이처럼 안기고 싶어한다. 동시에 그는 인희를 여자로서 안고 싶어한다. 한 여자에게서 엄마와 여성을 동시에 느끼는 난감함. 소년이면서 청년인 열아홉살 남자에게 세상은 이렇게 모호하고 위험한 시험의 잣대를 들이민다.

<피터팬의 공식>은 경계에 서 있는 소년의 성장담이지만 난제 속에 주인공을 던져놓고 그걸 풀어가는 모습을 통해 성장을 하나의 ‘성취’로 그리는 길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영화는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며 한수의 요동치는 의식 아래로까지 내려가려는 야심을 보여준다. 방향이 명확하지 않은 한수의 혼란은 지독한 성장통으로 해석되지만 이 성장통은 그가 성인이 되고 세상의 쓴맛 단맛을 경험한다고 해서 벗어날 수 있는 일시적인 현상처럼 보이지 않는다. 엄마가 유서에 남긴 주소로 인해 알게 된 아버지의 존재가 그의 삶을 바꾸어 놓지 못했듯 한수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허망함과 싸워야할 날들이 더 많이 펼쳐진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래서 <피터팬의 공식>은 스무살이 된 한수, 서른살이 된 한수가 더 궁금해지게 만드는 영화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초청된 것을 비롯해 선댄스, 베를린 영화제 등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다. 씨지브이 인디영화관 등 전국 15개 스크린에서 13일 개봉한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엘제이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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