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과 격조’ 지키려한 영화주의자
남북 오가며 224편 ‘한국영화의 집’ 쌓아올려
남북 오가며 224편 ‘한국영화의 집’ 쌓아올려
시골 청년이 서울로 올라왔다. 양공주 기둥서방을 하는 형을 찾아서였다. 그리고 형수와 사랑에 빠진다. 형수가 미군들과 파티를 벌이는 장면이 뮤지컬처럼 펼쳐질 때 그들은 미군부대 창고를 털다가 쫓긴다. 긴 자동차 추격전이 벌어진 뒤 그들은 처절하게 최후를 맞는다. 신상옥 감독의 1958년작 <지옥화>다. 약 50년 전에 신상옥은 심상찮은 멜로 드라마에 뮤지컬, 액션 갱스터를 버무린 이런 영화를 선보였다. 이 영화는 한국 영화의 출발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또 변모과정은 어떠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1950년대 한국영화는 이렇게 신상옥에 의해 ‘건설’되었다. 당시로서는 놀라운 설정과 할리우드 영화의 탁월한 원용력으로 한국영화의 주춧돌 하나를 놓은 것이었다. 그렇게 신상옥은 68개의 벽돌을 쌓았다. 북한과 미국에서 쌓은 10여개의 벽돌까지 합해서, 신상옥은 힘겹게 한국영화라는 집을 세웠다. 신상옥 영화를 빼면 한국영화라는 집의 한 쪽 벽은 휑하니 뚫려 있을 것이다. 1960년대는 정말이지 신상옥의 시대였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에서 과부댁의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을 따뜻하고 정교하게 그렸는가 하면, <연산군>(1961)에서는 시대를 지지하는 듯한 어투로 인간의 황폐함을 그렸으며, <빨간 마후라>(1964)에서는 국가 이데올로기와 용맹한(?) 남성주의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로맨스 빠빠>(1960)에서 시대 풍조를 알뜰살뜰 그려내고, <이조여인 잔혹사>(1969)에서는 핍박받는 과거의 여성들을 가혹하게 담아낸다. 그의 발자취는 멜로, 코미디, 액션, 시대극 등 장르를 불문하고 넘나들면서 넘치는 의욕으로 가득하다. 또 그가 감독이면서도 카메라를 많이 잡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때때로 그의 화면들은 지나치게 감정적이라서 가끔 불편하거나 혹은 관객을 사로잡는다.
이효인/ 영화평론가, 영상자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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