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전 커트 코베인〉 책 표지에 실린 커트 코베인의 사진(왼쪽)과 영화 〈라스트 데이즈〉에서 주인공 블레이크를 연기한 마이클 피트(오른쪽). 가운데 사진은 〈라스트 데이즈〉의 한 장면
‘라스트 데이즈’ 픽션 전제 죽음 직전의 ‘느낌’ 추적
‘평전…’ 천재 광기·약물 남용·내면 현실 간극 묘사
‘평전…’ 천재 광기·약물 남용·내면 현실 간극 묘사
자살한 전설적 록스타 소재 영화와 평전 나란히
1990년대 초반, 전 세계 록음악계를 평정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슈퍼스타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을 다룬 영화와 책이 동시에 개봉·출간된다.
지난 91년 앨범 〈네버마인드〉로 불행한 어린 시절을 딛고 세계적 스타가 된 커트는 3년 뒤인 94년 4월 27살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재능과 성공에 목말라 하지만, 이번에 나온 영화와 책은 재능과 성공에도 불구하고 채워지지 못하는 삶의 허기에 대해 다시 생각할 계기를 제공한다. 물론 모든 자살이 그렇듯, 이 텍스트들도 커트의 자살에 대해 ‘왜’를 묻는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주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27일 개봉하는 거스 밴 샌트 감독의 〈라스트 데이즈〉는 커트 코베인 아닌 ‘블레이크’라는 주인공을 내세운 픽션이다.
영화가 끝난 뒤 자막을 통해 “커트 코베인에게서 영감을 받았지만, 영화의 등장인물과 자세한 상황은 창작에 의존한 픽션”이라고 밝히고 있다.
영화는 특별한 줄거리가 없이, 커트 코베인을 연상시키는 금발의 20대 남자 블레이크가 자살하기까지 하루,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을 좇는다. 벌어지는 일들의 시간 순서도 명확하지 않으며 이렇다 할 큰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커트 코베인이 자살하기 직전의 상황을 연상할 근거들은 많다. 커트가 그랬던 것처럼, 주인공은 약에 취한 채 엽총을 들고 다니며 찾아오는 사람들을 애써 피한다.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던 이 영화는 스토리 중심의 여느 영화들과는 다른 독법을 요구한다. 관객에게 정보를 주기보다 관객들이 그 분위기와 정황과 심정을 느끼도록 하고자 한다. “나는 그들이 정말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성취했을 때 느끼는 허탈감, 실망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그(커트)의 집, 그리고 집 창문에 붙어 소리 질러대는 사람들, 또 그 집을 둘러싼 공기는 어떤 것일까. 나는 그런 느낌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실제 커트는 치사량이 넘는 헤로인을 복용한 직후 또다시 엽총을 자신의 머리에 쏘았고, 죽은 지 3일이 지나 발견됐다.
미국의 음악 전문 기자 출신인 찰스 크로스가 쓴 〈평전 커트 코베인〉(김승진 옮김, 이룸 펴냄)은 커트의 삶과 죽음에 대해, 수집 가능한 자료들을 충분히 모아 제공한다. 커트의 죽음에서 “인간의 정신, 예술적 천재성에 내재된 광기의 작용, 약물 남용이 영혼에 남기는 황폐한 흔적, 인간의 내면과 외부를 가르는 깊은 간극”에 답하고 싶은 욕망을 느껴 책을 쓰게 됐다고 저자가 말하는 이 책에선 커트의 죽음을 예감할 수 있는 자료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부모의 이혼과 재혼 속에 방치된 청소년 시절을 보내던 14살에 커트는 친구에게 말한다. “나는 음악에서 슈퍼스타가 될 거야. 그리고 자살을 해서 영예의 불꽃 속에 사라질 거야.… 지미 헨드릭스처럼 자살할 거야.”
자살 직전에 남긴 유서에 커트는 이렇게 썼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나쁜 죄악은 내가 100% 즐거운 것처럼 꾸미고 가장함으로써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 제발, 내가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달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 나는 사라져버리는 것들에 대해서만 감사하는 나르시스트인 모양이다. … 그러니 기억해주기 바란다. 점차 희미하게 사라지기보다 한순간에 타버리는 것이 낫다는 것을.”
임범 기자 isman@hani.co.kr
사진 이룸, 스폰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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