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그렇지만 연애도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취향이나 환경, 가치관은 한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이 되고 또 그렇게 관계가 맺어진 뒤에도 선택의 순간은 끝나지 않는다. 여기에 타협과 포기가 끼어들고 이런 단어는 사랑이라는 우산 밑에서 헌신,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그런데 현실 속의 선택에는 매뉴얼도 존재한다. 부와 능력, 배경, 외모 같은 조건들이 그렇다. 보통의 선택은 투명하게 스스로의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 욕망과 객관적 기준의 타협이기 십상이다.
사랑 이야기이면서 ‘사랑받지 못하는’이라는 뜻의 제목을 가진 〈언러브드〉(24일 개봉)에는 남다른 선택을 하는 여자 주인공이 등장한다. 시청 하급 공무원인 미쓰코(모리구치 요코)는 능력을 칭찬하고 승진 준비를 하라는 상사의 격려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값싼 노동력에 만족하고 산다. 업무차 시청을 오가던 젊은 사업가 가쓰노(나카무라 도오루)는 참하고 조용한 미쓰코에게 반한다. 가쓰노가 연애를 걸어오자 미쓰코는 조용하게 그를 받아들이지만 가쓰노가 값비싼 드레스와 고급 레스토랑 등 자신이 속한 세계로 끌어당기자 싸늘하게 그를 거부한다. 대신 자신에게 무관심했던 아래층 택배청년 시모카와(마쓰오카 ??스케)에게 연애를 건다.
미쓰코는 욕심없고 소박한 인물로 보인다. 그런데 가장 평범해 보이는 그의 세계는 이해받지 못한다. 욕심없고 소박하다는 게 어떻게 해 볼 수 없어서 자조하는 것이라고 해석되는 세상에서 그가 욕심없고 소박한 자신의 세계를 관철하는 건 초고속 승진을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된다. 당연히 미쓰코를 ‘구제’해줬다고 여기는 가쓰노가 미쓰코의 거부를 이해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처음엔 미쓰코의 살뜰한 사랑을 반기던 시모카와도 싫증을 낸다. 미쓰코는 같은 세계에 있는 사람이라, 즉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어울리는 사람이라 시모카와를 좋아하지만 시모카와는 미쓰코에게서 별수 없는 패배자로서 자신의 거울을 보기 때문이다. 가쓰노는 버림받은 데 분노하지만 시모카와는 선택받은 걸 혐오한다. 결국 자신의 성을 완고하게 지키며 사랑을 하려는 여자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로 남는 것이다.
〈언러브드〉는 순종적으로 보이지만 결코 타협하지 않는 여성 캐릭터를 통해 사랑에 있어 선택의 문제를 통렬하게 보여준다. 사랑이라는 주관적 단어를 마치 수학이나 화학의 복잡한 공식처럼 철저하게 분해하면서 그 안에서 선택이 작동되는 기제를 정교하게 보여주는 이 영화는 멜로드라마의 틀을 빌려왔지만 싸늘하리만치 냉정하고 이지적이다. 특히 영화의 막바지에 자신을 떠나려는 시모카와에게 미쓰코가 ‘사랑을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서 집요하게 설득하는 장면은 격렬한 토론장처럼 불꽃이 튄다. 영화 역시 밀도 있는 구성과 대사를 통해 사랑도 선택도 달콤한 휴식의 거처가 아니라 존재론적인 투쟁의 장이라는 걸 관객에게 설득해내는 데 성공한다. 필름포럼 단관개봉.
김은형 기자, 사진 필름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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