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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필진] 모든 영화와 미디어는 조작이다? - 영화 ‘히든’

등록 2006-06-14 17:31

<히든>(Cache / Hidden, 프랑스, 2005)
<히든>(Cache / Hidden, 프랑스, 2005)
"영화 안에서의 진실, 미디어 안에서의 진실, 이것은 다 조작이다"

영화 <퍼니게임>과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말이다. 2005년 칸느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영화 <히든>(Cache / Hidden, 프랑스, 2005)에서도 감독의 질문은 계속된다. 어떤 것이 진실인가?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나?

TV프로그램 진행자인 조르쥬와 출판사에서 일하는 안느 부부의 일상은 아주 평온해 보인다. 그런데, 어느 날, 집 앞에 비디오테이프 하나가 섬뜩한 그림과 함께 놓여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자신들의 일상을 지켜보고 있다.

이때부터 그들 부부의 평온함은 깨지기 시작하고, 영화는 관객들에게 질문하게 만든다. 범인은 누구인가? 테이프내용에 의해 알아낸 집에는 아는 사람이 살고 있다. 마지드. 그는 조르쥬가 40여 년 전 어린 시절을 같은 집에서 함께 보냈던 알제리인의 아들이었다.


마지드는 테이프를 알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조르쥬는 그가 범인임을 단정한다. 하지만, 그가 범인이라는 사실보다 마지드의 출현으로 인해 조르쥬의 일상은 점점 불안과 공포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조르쥬가 잊고 살았던 과거의 일들, 아니, 죄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프랑스의 오랜 식민지 지배를 받아 온 알제리인들이 1961년 10월 파리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다 200여명 이상이 경찰들의 손에 죽거나 세느강에 빠져 죽게 되는데 거기에 마지드의 부모들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부모 잃은 마지드를 조르쥬의 부모들이 입양하려고하자,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기 싫었던 조르쥬는 결국, 마지드를 모함 하게 되고, 마지드는 집에서 쫓겨나 고아원으로 보내졌던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드가 40여 년 전 조류주의 모함에 대해 앙심을 품고, 지금은 평온하게 잘 살고 있는 조르쥬에게 복수를 하러 찾아 온 것이다. 라고 정리하면 이야기는 끝날 것이다.

하지만, 마지드는 자신이 테이프를 만들지 않았다고 끝내 부인하고, 그런 마지드에게 조르쥬는 원하는 게 뭐냐고 협박까지 한다. 아니라는데 자꾸만 그러시는 유일한 증거는 자신의 과거, 아니 과거의 죄이다.

범인이 누구이든 별 대수롭지 않은 먼 과거의 죄를 떠올리기 싫은 것이다. 아니, 자신의 일상이 침범당하는 것이 불쾌하고 귀찮을 뿐이다. 왜 그랬는가? 에 대한 관심은 꽉 짜여진 그의 일상에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계속해서 또 다른 테이프가 그의 집 앞에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들과 함께 놓여있고, 조르쥬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범인이 확실한 것 같은데, 아니라고 잡아떼고, 증거는 없고, 자신의 과거의 기억은 계속 찾아오고 미칠 지경이다.

그러던 중, 마지드는 테이프에 대해 말하겠다며 조르쥬를 불러놓고는 그 앞에서 목에 칼을 그어 자살한다. 왜?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기위해서? 아니면,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조르쥬에 대한 항거?

어쩌면 평생 식민지인으로 살아 온 알제리인들의 억눌린 현실에 대처하는 마지막 방법 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안했다는데, 죄를 덮어씌우고, 그러면서, 정작 자신의 죄는 알고 있으면서도 인정하지 않는 프랑스 지식인에 대한 울분?

어떤 이는 자신의 모함으로 인해 평생을 억울함 속에서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자신의 일상이 조금이나마 흐트러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나의 일상을 침범당하는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지만, 내가 지은 죄는 얼마든지 죄가 아니어도 된다? 늘 지배만 해 온 자들의 역겨운 당당함, 아니, 뻔뻔함.

어쨌든, 마지드의 죽음으로인해 조르쥬는 자신의 평온한 일상을 되찾았다. 이로써 모든 것은 끝났다. 범인이 누구이든, 마지드가 왜 죽었든, 그가 알바 아니다. 자신에게 그토록 중요한 평온한 일상이 되돌아 온 것이다.

끝내 감독은 범인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인가?

그 어떤 것도 단정 지을 수 없다. 범인이 마지드 같기도 하고, 그의 아들인 것 같기도 하고, 또는, 지울 수 없는 과거의 죄에 대한 조르쥬의 신경과민이 만들어낸 허구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애초에 감독은 범인에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감독의 목적은 범인이 누군 인지와 상관없이 관객들이 끊임없이 범인에 관심을 가지는 동안, 자연스럽게 프랑스지식인 조르쥬의 위선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영화가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그 영화를 비추는 또 하나의 카메라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카메라의 주인은? 제작자일 것이다. 결국, 영화속의 진실은 제작자의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감독은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진실이며,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감독의 대답은 아무도 믿지 마라거나 네 멋대로 판단해라가 아니라, 무조건 믿지 마라일 것이다. 모든 미디어는 조작 가능하니 무조건 믿지 마라.

최소한 평소에 자신의 죄는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위선적이지 않은 이들이 만드는 영화와 미디어를 믿어야 한다는. 결국,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사실은 전 세계 대부분의 영화와 미디어들이 지식인들, 아니, 자본의 손아귀에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결국, 대부분의 영화와 미디어들이 장사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 진실이냐를 따지기에 앞서,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에 따라 진실은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다는 사실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미디어를 봐야 한다면, 믿어야 한다면, 눈에 보이는 화면을 믿을 것이 아니라, 그 화면을 만든 제작자가 누군 인지를 믿어야 할 것이다. 물론, 모든 조작으로부터 진실을 가려낼 자신이 있다 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중요한 사실은 자본은 우리가 영화 속 범인이 누구인지를 따지며 헤매고 있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자본은 우리가 그렇게 헤매는 동안 그 모든 내용이 자본의 돈벌이를 위해 제작된다는 사실을 잊도록 만드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유일한 진실은 자본의 돈벌이로부터 영화와 미디어를 구해내는 일이 될 것이다. 자본의 노예가 되기 싫다면 말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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