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김홍준 집행위원장의 해촉으로 한창 시끄럽더니 이번엔 광주국제영화제가 말썽이다.(관련기사 15면) 김갑의 광주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광주국제영화제개혁준비모임’은 최근 김 위원장쪽에서 만든 올해 5회 광주국제영화제 집행계획안을 공개했다. 이 안의 몇몇 항목은 이제까지 영화제에서 보지 못했던 할리우드 영화로 짜여져있다. ‘제임스 카메론의 무비 렌즈- <터미네이터 1,2> <어비스> <트루라이즈> <타이타닉>’, ‘3D영화-<토이 스토리> <개미> <벅스> <트론>’. 영화제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또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메릴 스트립을 초청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를 다녀오기도 했다.
광주영화제 1회부터 지난해까지 프로그래머를 맡았던 임재철씨는 김 위원장이 이 안을 들고 왔을 때 제임스 카메론 영화는 미국 메이저영화사나 카메론이 필름을 내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김 위원장은 “DVD로 틀면 되지 않냐”고 말했다고 임씨는 전했다. 임씨는 1월말 해촉됐고, 해촉 사실을 영화 주간지를 보고 알았다.
김 위원장이 임씨 후임으로 임명한 새 프로그래머 정재형 동국대 교수의 말을 들으면 김 위원장의 의도가 좀 더 분명해진다. “김 위원장은 이제까지 광주영화제가 너무 어려운 영화를 틀어서 시민과 유리됐으니 할리우드 영화, 쉽고 재밌는 오락영화로 방향을 틀자고 했다. 쉽고 재밌는 영화를 틀자는 데는 나도 동의했다. 이미 개봉한 카메론의 영화를 실제로 트는 데는 개인적으로 반대이지만 김 위원장의 말은 새롭고 신기한 첨단 에스에프 영화를 보여자주는 뜻 아니겠는가.”
작품성 뿐 아니라 흥행성을 걱정하는 건 상업영화뿐 아니라 영화제도 마찬가지다. 중앙정부 5억원, 광주시 5억원의 소진성 예산으로 꾸려지는 광주영화제가 수익을 맞출 필요는 없지만 보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기를 바라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작품성도 있고 흥행성도 있는, 그러면서 상업영화 배급망을 타고 개봉하지 않은 영화가 그리 많지 않다. 부산, 부천, 전주, 광주영화제, 여성영화제 등등의 프로그래머들이 이런 영화들을 찾아 서로 경쟁하며 세계를 헤매고 다닌다.
국내 다른 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중앙정부 예산을 쓰는 영화제라면 상업영화가 채워주지 못하는 문화적 깊이와 다양성을 보태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닌가, 또 시민을 즐겁게 해주기 싫어하는 프로그래머가 어디 있겠는가”라며 “결국 영화제를 둘러싼 이속 챙기기에 불과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좋은 프로그램이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범 기자 is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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