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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심란한 청춘이라 욕하지 마라

등록 2006-06-21 20:28

10년전 단편 ‘장마’로 혜성같이 등장
장편영화로 오기까지 우여곡절
‘나와 내 친구들의 이야기’
다시 영화작업 의미
‘양아치 어조’로 상업영화 데뷔 조범구 감독

24일 서울 종로구 필름포럼에서 개봉하는 〈양아치 어조〉는 양아치 이야기라기보다 ‘양아치스러운’ 아이들의 성장담이다. 학교를 땡땡이치고 욕지거리를 내뱉고 건들거리는 ‘양아치스러움’은 이들의 제스처에 불과하다. 영화는 이 얇은 꺼풀 안에 담겨 있는, 낯선 곳에 대한 아이들의 선망과 거기서 느끼는 이질감, 돈에 치이는 고단함에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중학교 때 남보다 사회진출(?)을 일찍 하는 친구들과 주로 사귀는” 노는 아이이면서 “고등학교 때 술마시다가도 10시 되면 엄마 가게 문 닫는 걸 돕기 위해 집에 들어왔”던 화목한 집안의 막내아들인 조범구(34) 감독인지라 등장인물들의 비관적인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희망적인 결말이 그의 시선 안에서는 하나의 세계로 완성된다.

1996년 대학(단국대 연극영화과)을 졸업할 즈음에 처음 만든 단편영화 〈장마〉가 국내외 영화제의 초청을 받으며 순식간에 기대주로 부상했지만 장편감독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졸업하고 충무로 연출부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연줄이 없어서 쉽지 않았어요.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가 좀 더 공부를 했죠.” 두번째 단편 〈어떤 여행의 기록〉이 다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상업영화 데뷔를 준비했지만 캐스팅까지 결정된 상태에서 2년 만에 엎어졌다. 그때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자 꺼낸 게 99년 써놨던 〈양아치 어조〉였다. “개인적으로 언제고 꼭 만들어보고 싶은 영화였어요. 제 이야기, 제 친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또 영화는 저에게 놀이 같은 거였는데 2년 동안 상업영화 준비하며 내가 너무 삭막해진 것 같아 다시 즐겁게 일해보고 싶었죠.”

제작비는 개인적으로 융통할 수 있는 1천만원에서 출발했지만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 디지털 장편영화 제작 지원작으로 선정되면서 욕심이 불어났고 조 감독은 생면부지의 최용배 청어람 대표와 차승재 당시 싸이더스 대표를 찾아갔다. 최 대표는 투자 배급을 선뜻 맡았고, 차 대표는 차기작을 같이 하기로 약속하고 그 감독료 일부를 ‘땡겨’줬다. 〈양아치 어조〉의 해설을 맡은 안성기씨 역시 감독의 ‘맨땅에 헤딩하기’ 식 캐스팅에 응해줬다.

그는 〈양아치 어조〉를 “개인적인 욕망의 영화”라고 말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 학원으로, 사채업자에게로, 호스트바로 향하는 이들이 그의 과거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들의 욕망에는 감독의 욕망이 녹아있다. 이를테면 강남에 대한 이들의 선망. “대학 동기 중에 강남 출신이 많았어요. 한번은 호기심에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 놀러갔는데 학교에서 자주 이야기도 하던 여자 동기가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 거예요. 충격을 받았고, 경제적으로 풍족한 그들의 여유가 부러웠죠.” 그는 〈양아치 어조〉가 “너무 못 만들어서 부끄럽기”는 하지만 낙관적인 결말이 지나친 감상이라는 비판에는 수긍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결말은 제 바람 같은 거예요. 저를 포함해 수없이 좌충우돌하며 출발점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 도착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 아이들의 실수와 실패를 따뜻하게 바라봐 줬으면 하는 거죠.” 현재 조 감독은 차 대표와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이야기와 스타일의 청춘영화인 〈뚝방전설〉 촬영 마무리를 앞두고 있으며, 그 다음 작품으로 “〈양아치 어조〉부터 계속 같이 작업해온 단짝친구 박수진(시나리오 작가)과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사랑 이야기”를 연출할 계획이다.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강북 자퇴생들의 강남 진출기
‘양아치 어조’ 어떤 영화

고교 2학년 익수는 자퇴한 종태, ‘떡팔’과 단짝친구. 익수 역시 학교에서 큰 싸움을 벌인 뒤 자퇴한다. 비슷한 시기에 엄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자 익수는 엄마의 보험금과 집 판 돈 1억5천만원을 들고 ‘강북 양아치’ 생활을 청산하고 강남 진출을 한다.

〈양아치 어조〉의 등장인물들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연을 가지고 있다. 종태가 밑에서 일하는 사채업자는 익수의 엄마를 치어 죽이고, 그 사채업자가 빚갚기를 협박하는 채무자의 집에 전세로 사는 종태는 전세금을 떼어먹히고 ‘떡팔’은 종태의 돈을 받아준다고 종태네 집주인에게 행패를 부리다가 사고를 쳐 몇천만원의 합의금을 물어야 되는 위기에 몰린다. 이 꿈 많고 철 없는 세 소년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사회를 뱀처럼 휘감고 있는 금전관계에 꽁꽁 묶여 있는 것이다.

그나마 여유있던 익수가 영웅처럼 한눈에 반한 접대부의 1억원 빚을 갚아주고, 나머지를 친구들의 급한 불 끄는 데 다 쓰고 나자 그에게 남은 건 다시 ‘강북 양아치’라는 빛바랜 직함뿐이다. 〈양아치 어조〉는 성장담이면서 또 지금의 인간관계를 조직하고 해체하는 돈의 움직임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비탈길에서 출발해 계속 벼랑 끝을 향해 나아가는 세 청춘의 이야기를 그리면서도 은근한 낙관과 희망의 기운이 흐른다. 감상적이라 할지라도 실수할 수 있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청춘에 대한 애정이 영화 전체를 끌어가기 때문이다.

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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