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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등록 2006-06-21 20:32

영화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은 독일의 실존인물 소피 막달레나 숄의 마지막 엿새를 다룬 영화다. 소피 숄은 반나치 지하조직에서 활동하다 처형당했다. 소피 숄의 활동상은 동생 잉에 숄의 수기를 통해 알려졌다. 마르크 로테문트 감독은 이 수기 및 동독 문서국에 숨겨져 있던 미출판 자료 등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의롭고 올곧게 살다 간 한 청춘의 마지막 순간을 실제 상황에 가장 충실하게 담아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독일. 백장미단의 유일한 여성 멤버였던 뮌헨대 학생 소피 숄(율리아 옌치)은 오빠 한스 숄(파비안 힌리히스)과 함께 유인물을 뿌리다 체포된다. 곧이어 게슈타포 심문관 로베르트 모어(알렉산더 헬트)의 압박 수사가 시작된다. 소피 숄은 극도의 평정심을 유지한 채 알리바이를 댄다. 논리정연하고 침착한 소피 숄의 답변에 노련한 모어마저 깜빡 속는다. 하지만 이내 그의 알리바이를 물거품으로 만드는 증거들이 잇따라 발견된다.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에는 쫓고 쫓기는 추격 장면, 잔인한 고문 장면 등 반정부 활동을 다룬 시대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이 전혀 없다. 대신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소피 숄과 모어의 끊임없는 질문과 답변, 주장과 반박이다. 소피 숄은 이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나치와 제2차 세계대전의 부당함과 무모함에 대해 설교한다. 이를 탓하고 설득하는 모어의 논리 역시 폭력의 시대에 저항하지 않았던 다른 많은 이들의 흔한 논리와 다를 바 없다.

이미 상식이 된 ‘말’들로 가득한 영화라면 지루할 거라고 예상하기 쉽다. 하지만 〈소피 숄…〉에서는 시종일관 긴장감이 느껴진다. 밀고와 변절 등 살 수 있는 길을 버린 채 또박또박, 당차게 신념을 지키며 죽어 간 청춘의 의기가, 관객들의 심장을 움켜쥔 채 해이해질 겨를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또 기정사실인 소피 숄의 죽음조차 과장 없이도 충격적으로 연출해낼 만큼 빼어난 감독의 연출력과, 팽팽하게 맞서면서도 잘 맞물리는 율리아 옌치와 알렉산더 헬트의 빈틈없는 연기도 긴장을 유발한다.

2005년 베를린영화제 은곰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22일 개봉.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스폰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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