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 이상’ 첫 극장용 애니
B급 감수성 맞춘 추격전 현란
류승범·임창정 목소리 호연
B급 감수성 맞춘 추격전 현란
류승범·임창정 목소리 호연
거친 욕설이 오가는 영화의 주인공들은 항상 ‘양아치’가 아니라 ‘건달’임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 영화, ‘대놓고’ 양아치를 표방한다. 그냥 양아치가 아니라 ‘몹시 양아치’다. 더군다나 꿈과 모험이라는 해맑은 단어가 더 어울려 보이는 애니메이션이다. 무려 7년간의 공정을 끝내고 28일 개봉하는 〈아치와 씨팍〉(조범진 감독)이다.
〈아치와 씨팍〉은 극장 개봉하는 한국 애니메이션 가운데 처음으로 18살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욕설과 배설, 음담패설이 캐릭터들 사이를 붕붕 날아다닌다. 물론 엽기코드나 키치문화가 대중화된 요즘 이런 요소들만으로 발랄하고 참신한 느낌을 줄 수는 없다. 이 애니메이션에 종횡무진으로 등장하는 패러디 장면들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이 애니메이션에서 높게 쳐줄 부분은, 모순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비(B)급 감수성이 관통하는 가운데에도 대중적인 흡인력과 장르적 재미를 놓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마리 이야기〉나 〈원더풀 데이즈〉 등 ‘나름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 외면당했던 기대작들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하는 야심이 엿보인다.
사람의 똥을 에너지원으로 쓰는 어느 미래에 지배자들은 사람들의 항문을 직접 관리하기에 나선다. 성실한 배변자들에게는 ‘하드’라는 마약 성분의 아이스크림을 준다. 그러나 늘어나는 배변량과 비례해 하드 중독자들이 나타나고 도시는 하드 밀매와 약탈이 넘쳐나게 된다.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아치(목소리 연기 류승범)와 씨팍(〃 임창정)은 하드 좀도둑. 둔하지만 힘센 씨팍이 배우 지망생인 이쁜이(〃 현영)에게 반하며 셋은 동행하게 된다. 그러나 이쁜이가 엄청난 배변능력, 즉 하드 수급능력을 갖게 되면서 셋은 하드 약탈자인 보자기 갱단에게 쫓기게 되고 여기에 사이보그 게코 형사까지 가세하면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진다.
상상력의 신선도라는 면에서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대신 비급 감성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거침없는 질주의 쾌감을 선사한다. 깜찍하게 쫑알대며 팔다리를 숭덩숭덩 자르는 보자기맨들의 모습이 귀엽고, ‘여러 용도로 사용되는 똥꼬’에 대해 ‘호모새끼’라고 호모포비아적인 발언을 거침없이 내지르는 뻔뻔함이 이 영화와 자주 비교되는 〈비비스와 버트헤드〉 같은 작품보다 한수 위다. 초반에 이렇게 막나가는 농담에서 비위가 걸리지 않는다면 다음부터는 무사통과다. 캐릭터와 설정에는 불량기가 넘쳐나지만 전반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도주와 추격이라는 액션영화의 공식을 충실히 따라가며 비주얼은 여느 상업영화 못지않게 현란하고 속도감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3차원 컴퓨터 작업(3D)으로 2차원 작업(2D)의 효과를 낸 캐릭터들은 선명하면서도 차가운 느낌이 사라졌고, 2000여 컷으로 연결된 화면은 한단계 성숙한 기술적 정교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액션영화가 범하는 실수와 마찬가지로, 뒤로 갈수록 캐릭터와 이야기가 액션의 현란함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아치와 씨팍〉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성공적으로 보인다. 굳이 현실적 풍자나 조롱의 잣대를 들이댈 것도 없이 장면 장면을 꽉 채우는 농담과 액션만 즐기더라도 상영시간 90분이 금방 지나가버린다. 류승범과 임창정의 목소리 연기도 평균 이상이지만 멀더와 스컬리의 이규화, 서혜정, 지난해 인터넷을 풍미했던 오인용 등 조연급 목소리 연기가 꽤나 근사하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스튜디오 2.0 제공
사진 스튜디오 2.0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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