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반도’ 언론시사회…‘단순화한 반일 민족주의’ 논란 예고
제작기간 동안 그 내용이 철저히 비밀에 붙여졌던 강우석 감독의 새 영화 <한반도>가 26일 언론시사회에서 공개됐다. 순제작비 96억원이 들어간 <한반도>는 일본이 일본제국주의 시절 대한제국으로부터 가져갔던 경의선 철도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전쟁국면으로까지 치닫는 양국간의 긴장과 나라를 위해 일본의 주장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정권 내부의 실리파와 자주권을 찾아야 한다는 명분파간의 갈등을 그렸다.
기자회견에서 강우석 감독이 “최근 반복되는 일본의 정치적 망언과 군사력 확대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영화로 들이받고 싶었다”고 말한 것처럼 <한반도>의 문제의식은 통치권이 일본으로 넘어갔던 100년 전과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고종의 고뇌와 대통령의 고뇌를 교차편집으로 병치시키며 또 정권 내 실리파와 명분파의 갈등을 100년 전 친일파와 반일파의 갈등과 유사하게 끌어가는 이 영화는 영화적 완성도를 떠나 역사 인식과 현실해석에 대한 논란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팩션을 표방하는 <한반도>에는 고종 독살설, 명성황후 시해의 일본 개입설 등 다양한 역사적 정황과 주장이 녹아들어가 있다. 이야기의 출발점에는 일제로부터 독립한 지금 일본이 당시의 권리를 주장한다는 설정이 있다. 가능할까? 역사저술가 이덕일씨는 “불가능한 전제”라고 말했다. 이씨는 “을사늑약 때 고종이 국새를 찍기를 거부했고 그로 인해 을사조약이 원천무효다라는 주장은 있지만 이와는 별개로 45년 일본이 패전하면서 대한제국에 가졌던 모든 권리를 국제협정을 통해 포기했기 때문에 성립할 수 없는 전제”라고 말했다. 반면 고종독살설이나 명성황후 시해에 일본이 직접 가담했다는 건 물증 여부를 떠나 상당한 근거를 지닌 역사적 사실로 볼 수 있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한반도>는 9·11사태와 이라크 전쟁, 일본의 자위대 파병, 한국 군대 파병 등으로 이어지는 기록필름으로 시작된다. 시간은 지났지만 한반도가 여전히 외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서 경의선 철도 문제가 도출되며 100년 전의 역사와 영화 속 현재가 매우 흡사한 형국으로 진행된다. 이 지점에서 지나친 단순화에 대한 비판이 지적된다. 영화평론가 김소영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는 “현재 한국을 종속화시키는 건 초국적 자본 중심으로 진행되는 세계화나 신자유주의 논리이며 여기에는 이 흐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한국 정부와 미국의 문제가 있는데 이를 지워버리고 일본을 겨냥한 것은 매우 시대착오적”라면서 “영화적 상상력으로 끌고 가기보다 국가적 위기가 올 때마다 을사조약에 빗대 대중의 정서에 손쉽게 호소하려 했던 논리들을 답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반도>의 흥미로운 점은 일견 단순한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일본이나 미국 등 외세를 바라보는 지배층 내부의 양분된 시각을 비교적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정성일씨는 “영화적 완성도를 떠나 이 영화가 보여주는 양면적 시각은 한국사회의 양면성과 분열성을 보여주는 풍부한 함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의 전반적 어조에 반하는 결말 장면 등 몇몇 혼란스러운 영화적 흐름은 강우석 감독이 대중을 읽는 것에 실패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또한 한국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혼란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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