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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우리가 사랑해서 결혼한 거 맞냐고요

등록 2006-06-28 19:52수정 2006-06-29 10:01

영화 ‘내 남자의 유통기한’
첫눈에 반해 결혼한 부부의 다툼과 화해
도리스 되리의 유머 넘치는 연출
부와 성공에 집착하는 아내, 자족과 여유면 그만인 남편. 그래서 아내는 슈퍼우먼이 되고, 남편은 ‘기둥서방’이 되는 현실. 현대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부상이다. 숱한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그려진 부부의 모습이기도 하다. 독일 여성 감독 도리스 되리도 29일 개봉하는 영화 <내 남자의 유통기한>에서 이런 부부의 삶과 사랑을 다룬다. 하지만 전작 <파니 핑크>(1994)가 그랬던 것처럼, 현실에 대한 날카로우면서도 세심한 통찰, 유머와 재치가 번뜩이는 연출력이 힘을 발산한다.

독일인 패션 디자이너 지망생 이다(알렉산드라 마리아 라라)는 일본 시골을 여행하다가 길을 잃는다. 그러다 택시에 타고 있던 독일인 오토(크리스티안 울멘)와 레오(지몬 페어회펜)를 만난다. 잉어 수의사와 판매상으로 동업중인 두 남자는 희귀 잉어를 사기 위해 일본에 왔던 것. 오토와 레오는 모두 이다에게 푹빠지고, 선택권을 쥔 이다는 호텔에 머무는 야심가 레오 대신 바닷가에 텐트를 친 소박하고 순수한 오토를 반려자로 맞이한다.

사랑에 빠지는 대부분의 연인들이 그렇듯 이다와 오토도 자연의 섭리처럼 보이기도 하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상대방에 대해 거의 모르거나 잘못 알고있는 상태에서 덜컥 사랑에 빠지고 결혼해버린 것이다. 콩깍지가 벗겨지는 순간 자신을 찌르고 할퀴게 될 상대의 결점이나 서로 판이하게 다른점들을 간과한 채 말이다. 두 사람은 오토의 캠핑카 안에서,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한 짧은 한 때를 보낸다. 하지만 이다는 이내 물도 제대로 안 나오는 좁은 캠핑카 생활에 싫증을 내면서 패션 디자이너라는 큰 꿈을 향해 악착같이 내달린다. 오토는 아끼던 캠핑카를 팔아 원하지도 않던 집을 얻고 육아와 가사일을 전담하며 헌신하지만, 현실을 ‘극복해야 할 어떤 것’으로만 간주하는 이다에게 지쳐간다.

‘잉어’와 ‘해마’의 등장은 이 평범한 이야기를 독특한 동화나 판타지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잉어는 오토가 지극한 애정을 품는 대상임과 동시에 이다의 디자인 컨셉이기도 하다. 이다의 드레스 위를 화려하게 수놓은 잉어무늬는 스크린 속을 알록달록하게 물들이며 통통튀는 판타지의 느낌을 준다. 또 오토가 일본에서 구매한 잉어 한쌍은 관찰자의 입장에서 오토와 이다 부부의 다툼에 사사건건 토를 달기도 하고, 두 사람의 상황을 비유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잉태와 출산, 육아를 수컷이 책임지는 ‘해마’는 이 영화 속에서 뒤바뀐 성역할을 암시한다. 하지만 ‘해마’ 부부의 삶의 자연의 한 부분이듯, 오토 부부의 삶도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비정상’이 아닌 자연의 일부다. 따라서 성역할이 바뀐 부부를 그린 다른 영화들처럼 남편을 일방적으로 깔아뭉개는 아내나 아내에게 무기력하게 의존하려는 남편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자기 욕망대로 부부관계를 이끌어가는 건 이다지만, 사랑에 목말라하고 초조해하는 것도 그다. 또 자기 것을 내주기만 하는 듯하면서도, 애정의 주도권을 쥐고 흔드는 것은 오토다. 이런 이다와 오토의 사랑과 다툼, 화해의 과정을 웃으며 따라가다 보면, 성역할과 상관없이 부부 관계란 서로 본성이 다른 두 사람이 팽팽하게 맞서는 긴장의 연속이라는 걸, 본성을 바꿀 수는 없지만 끊임없이 타협하고 양보해야 한다는 걸 느끼게 된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세종커뮤니케이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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