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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영화 ‘클림트’, 혼돈기를 산 ‘카사노바 예술가’

등록 2006-06-28 20:35

매독으로 숨져가는 화가 클림트(존 말코비치)가 침상에 누워있다. 병 문안을 온 후배 화가 에곤 쉴레(니콜라이 킨스키)가 병실의 거울 속에서 클림트의 과거를 본다. 거울 속의 장면이 클림트의 회상으로 연결되고, 클림트 삶의 편린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각종 예술 사조가 번창하던 19세기말~20세기초에 오스트리아 빈의 카페에서 평론가, 예술가들이 논쟁을 벌인다. 간혹 건축가 아돌프 루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도 보인다. 논쟁이 일 때마다 클림트는 늘 속이 거북한 표정이다. 급기야 장식적인 예술을 비판하는 한 평론가의 얼굴에 케익을 쳐바른다. 그 평론가가 모욕을 감수하면서 클림트의 그림을 칭찬하자, 마음이 풀렸는지 이내 손수건으로 그의 얼굴을 닦아준다.… 파리의 전시회에서 열광적인 찬사를 얻은 클림트는 고결한 척하는 빈보다 파리가 좋다고 말한다. 그를 따라다니는 오스트리아 문화부 직원이 응수한다. “당신이 빈에서 작품을 발표하면 신에 대한 도전이 되지만, 파리에서는 흔한 외설물중 하나가 된다.” 클림트는 별 말이 없다.

‘빈의 카사노바’로 불렸던 클림트는 곳곳에서 자기가 클림트의 딸이라고 말하는 젊은 여자들을 만난다. 그중엔 창녀도 있다. 그럴 때마다 적잖이 당혹해 하면서도 한 애인이 자신의 딸을 낳았다고 하자 반색을 한다.… 독선적이고 괴퍅해 보이지만 그만의 진보적인 모습은 시대를 앞선다. 한 애인이, 아들이 중국인 아이와 논다고 꾸짖는다. 클림트가 왜 그러냐고 묻자 그 애인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아이와 놀다니”라고 답한다. 클림트가 반문한다. “중국인이라며?”

<클림트>는, 여느 식당이나 카페에서 한번쯤은 봤을 법한 <키스> 같은 금박의 관능적인 그림을 그렸던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를 다룬 영화다. 칠레 출신으로, 아옌데 정부 붕괴와 함께 프랑스로 망명한 라울 루이즈 감독은 근대에 대한 낙관과 비관이 교차하던 시기를 살았던 한 예술가의 초상을, 마치 클림트의 그림이 그렇듯 디테일을 중심으로 불연속적으로 그려나간다. 감각과 경험을 중시하는 쾌락주의자들이 흔히 그러하듯, 클림트의 비관은 혼돈을 동반하는데, 루이즈 감독은 여기에 죽음의 그림자를 겹쳐 놓는다. 자신과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정체성이 기억 속에서 흩어져 가는 그 모습을 다리 삼아 100년전과 지금을 동시대로 묶으려고 한다. 아주 가끔씩 설명하려고 할 때 진부해지는 듯도 하지만, 설명보다는 단상이 풍부하게 전해지는 영화다. 29일 개봉.

임범 기자 isman@hani.co.kr, 사진 스폰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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