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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청각장애인도 세상의 일부이고 수화도 언어임을 알리고 싶었죠”

등록 2006-06-30 18:48

영화 ‘소리없는 절규’ 만든 청각장애인 박재현 감독
15분짜리 흑백 단편영화 <소리 없는 절규>엔 내내 정적만 흐른다. 단역배우로 드라마 촬영장에 갔다가 장애를 이유로 쫓겨나는 청각장애인의 체험을 담은 이 영화는, 대사 대신 간간이 흐르는 자막과 배우들의 몸짓만으로 이야기한다. 감독 박재현(24)씨와 출연 배우들 모두 청각장애인이다.

박씨는 3살 때 중이염을 앓은 뒤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됐다. 그런 그에게 부모님은 ‘구화’(입 모양을 보고 말뜻을 이해하고 자신도 소리내어 말하는 법)를 가르쳤다. 사회에 나가 비장애인과 섞여 생활하려면 수화가 아닌 구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중학교까지 구화학교를 다니고, 고등학교는 비장애인과 함께 나왔다. 박씨 자신은 수화가 더 편한데, 비장애인의 시각에서 구화를 요구하는 부모님이 조금은 원망스럽기도 했다. 제빵기술도 배워보고 신학대학도 다녀봤지만, ‘말’을 못한다는 이유로 거절당할까봐 일자리는 ‘꿈’조차 꾸지 못했다. 그렇게 청각장애인의 정체성을 고민하던 그에게 영화는 ‘빛’이었다.

“취미삼아 교회 친구들을 캠코더로 찍어서 보여줬는데, 재미있어 하더라고요. 영상이, 소리 없이도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기독교농아인방송의 비디오 저널리스트(VJ)로 일한 경험도 도움이 됐고요. 제 영화를 통해 수화도 언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어요.”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질문에 답하던 그는 아르바이트를 해 중고 비디오카메라를 장만했을 때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지난해부터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처음엔 ‘소리를 넣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청각장애인이 세상의 일부분임을, 수화가 언어임을 알리려면 ‘무성영화’가 맞다고 생각했다. 장애라는 ‘어둠’을 보여주는 덴 흑백 영상이 적합하다는 결론도 내렸다. 어쩐지 소리 없는 영화와 총천연색 화면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결과 박씨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소리 없는 절규>를 비롯해 청각장애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영화를 벌써 6편이나 만들었다. 지난 4월엔 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어느 애비의 삶>으로 상을 받기도 했다. 지금은 청각장애인 인권 문제를 다룬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고, 올가을 부산영화제에 <소리 없는 절규>를 출품할 생각도 품고 있다.

그에게 농인영화집단 ‘데프 미디어’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지난해 10월 마음맞는 친구들과 모여 꾸린 ‘농인을 위한 영상매체물을 만드는 독립제작집단’이다. 3명으로 시작한 ‘데프 미디어’ 회원은 어느새 12명이 됐다. 다음 작품을 위해 후원 기업을 찾고 있는 요즘, 그는 함께 영화를 고민할 수 있는 벗들이 늘어 즐겁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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