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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제천국제영화제, 소풍 가듯 설레게 하네

등록 2006-07-05 20:31

팝콘&콜라
영화기자에게 가장 일상적인 업무는 시사회 챙겨보기다. 그러나 시사회 가는 길에 어디 가느냐고 인사하는 동료들에게는 “취재 간다”고 대답한다. “시사회 간다”라는 대답을 했던 영화기자 1년차 때 “좋겠다” 즉, 놀면서 일하니 얼마나 좋겠느냐는 반응을 하도 많이 들으며 나름대로 터득한 해답이다. 올해 최고 기대작이라는 〈괴물〉이라 해도 그것이 일과 결부되면 발걸음도 가볍게 극장 안으로 들어가기는 힘들다.

영화제 취재도 마찬가지다. ‘놓치면 후회할’ ‘진수성찬’ 등의 수식어를 동원해 영화제 소개를 하면서도 정작 영화 한두편 느긋하게 보지 못하고 오는 경우가 허다하니 그저 일이 된다. 칸영화제보다 영화 보기 힘들다는 부산국제영화제는 말할 것도 없고 마찬가지로 붐비는 서울여성영화제나 최근의 전주국제영화제에도 “일하러” 간다. 특히 지난해부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광주국제영화제의 경우 영화제 내부의 문제가 기삿거리가 됐으니 더더욱 재미없어졌다.

그런데 딱 한번 “놀면서 일하는 기쁨”을 만끽한 취재가 있었으니 지난해 여름 처음 열린 제천국제음악영화제였다. 크고 작은 영화제들이 우후죽순처럼 많이 생겨나는 탓에 이 영화제의 탄생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보통 100여 편씩 상영하는 국제영화제들과 달리 달랑 40여 편의 상영작 수에 영화제들이 중요시하는 프리미어(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는 영화)도 거의 없는지라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게 이상할 것도 없었다.

취재차 제천 극장가에 도착했을 때 잠시 괜히 왔나 싶었다. 도시는 조용하고 극장가는 한산했던 탓이다. 그러나 청풍호반에서 야외 상영이 시작되는 밤이 되자 분위기는 180도 바뀌었다. 비봉산과 금수산을 끼고 잔잔히 흐르는 호숫가, 말 그대로 ‘청풍명월’ 아래서 영화를 본다는 게 꿈처럼 낭만적이었다. 영화가 끝난 뒤 이어진 공연은 더 압권이었다. 그냥 영화제가 아니라 음악영화제를 표방하는 터라 밤마다 야외상영 뒤에는 공연이 벌어졌는데 클래지콰이, 윈디시티, 커먼 그라운드 등 장안의 잘나간다는 밴드들이 연일 띄워대는 분위기에 찌릿하게 감염됐다. 행사가 끝나고 영화제에 놀러 온 사람들끼리 야외에서 동그랗게 모여 마시는 술자리의 분위기도 술집에서 술집으로 헤쳐모여를 거듭하며 왁자지껄하게 마시는 큰 영화제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었다. 호들갑을 떨자면 자연과 영화와 음악과 술이 예술적으로 어우러진 풍류 그 자체였다.

북적이지 않는 탓에 취재도 수월했고 짬짬이 영화를 찾아보기도 좋았으며, 영화 시작시간이 지난 뒤 “조용히 슬쩍 들어가세요”라고 요령있게 안내를 하는 나이 지긋한 자원봉사자의 친절도 편안했다. 유명 게스트나 화려한 이벤트는 없었지만 다른 영화제와의 차별화와 규모있는 운영으로 이 영화제는 첫회임에도 객석 점유율 60%를 넘기는 알찬 성과를 보였다.

다음달 9일부터 제2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열린다. 영화제 참가 확인 메일을 받은 옆자리의 선배는 마치 소풍 날짜를 받은 아이처럼 즐거워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 멋진 축제가 올해는 좀더 즐겁기를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잘되면 안 되는데’ 하는 마음이 은근히 생긴다. 1회가 보여줬던 소박한 흥겨움을 잃을까 하는 염려와 함께 “놀면서 일하는 기쁨”이 사라질까 하는 아주 개인적인 욕심에서다.

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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