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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미국에 팔릴 영화를 만들라고? 이 교양없는 자신감을 어쩌나

등록 2006-07-09 21:56수정 2006-07-09 23:58

저공비행
축구나 월드컵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했다.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으니까. 비판을 하려면 적어도 후자는 충족시켜야 한다. 관심도 없고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구석에서 입 다물고 있는 게 최선이다. 그 대상에 대해 뭔가 비판이라도 하고 싶다면 피상적인 관심이라도 가지며 지식을 쌓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 나로서는 축구에 그런 투자를 할 생각은 없다. 그런 일을 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고.

그래도 프랑스가 이번 월드컵에서 결승에 진출했다는 게시물들을 읽다 보니까 이죽거리면서 한마디 할 수밖에 없겠다. 프랑스 대표팀에 ‘순수 프랑스인’보다 이민자 출신과 이민 2세들이 포진해 있다며 대한민국 대표팀 ‘순혈주의’의 우월성을 주장했던 아무개 기자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건 축구가 아닌 교양의 문제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기본적인 예의와 규칙이 존재하고 그들의 기초가 되는 일반교양이라는 것이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교양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고, 우리가 학교와 사회에서 교양이라고 배우는 것이 과연 현대사회에서 얼마만큼 일반교양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위에 언급된 기사도 마찬가지다. 그 기사엔 악의는 없다. 순진무구한 무례함과 대상에 대한 무지만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주류 저널리즘이 현대 사회의 당연한 에티켓과 상식에 이 정도로 무지하다면 우리의 교양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가.

여전히 어색한 축구세계를 떠나 내가 조금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 관련 이야기를 해보자. 얼마 전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관련된 방송토론에서 김종훈 한-미 협정 협상 수석대표는 스크린 쿼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지금 미국에 우리 영화가 수출되지 않는다면 미국인들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면 되지 않느냐”는 말을 했다. 아마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이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얼이 빠졌을 텐데, 스크린 쿼터나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입장과는 상관없이, 그 말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아니 세계 문화에 대한 막연한 일반교양만 갖춘 사람이라고 해도 그 답변이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언제부터 문화 상품이 자동차처럼 해당 국가의 취향에 맞게 디자인해 대량생산할 수 있는 것이었던가. 그건 당연히 기초 상식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그 당연한 상식은 당연히 그 상식 이상의 지식을 갖추어야 마땅한 그쪽까지 전달되지 못한 것이다. 혹시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봤는데, 역시 전혀 몰랐다는 게 정답인 듯하다. 알았다면 더 나은 답변을 했을 것이다.

이 교양 없는 지식인들이 부글거리는 세상을 어떻게 정리하면 될까? 과거에 대한 향수에 젖는 건 쉬운 일이다. 하긴 19세기까지만 해도 지식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세상에 대해 거의 모든 것들을 알았다. 하지만 21세기 초를 사는 우리에겐 그런 지식을 쌓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기엔 세상이 너무 세분화되었고 복잡하다. 짜증을 내며 ‘이 무식한 것들아!’를 외치는 나 자신도 마찬가지. 난 왜 사람들이 스위스전에 그렇게 화를 내는지 모른다. 도대체 오프사이드가 뭐길래?

흠…, 그러고 보니 해결책은 이미 위에서 내가 제시했다. 모든 것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 분명히 인식하고 거기에 대해 입 닥치고 가만히 있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여기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어차피 우리가 모르는 것에까지 끼어들지 않아도 세상은 충분히 복잡하고 시끄러우며 의견이 넘친다. 위 기사에서 걸려 넘어졌던 기초 예의에 대한 무지와 같은 건 그걸로도 쉽게 해결되는 일은 아니지만 원래 만병통치약 같은 건 없는 법이니까.

듀나/영화평론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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