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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고래와 창녀, ‘세상의 끝’에서 오가는 70년 세월

등록 2006-07-12 20:20

암으로 벼랑에 선 여자
묘한 사진속 여자 찾아 과거로
매혹적인 파타고니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랑과 배신’의 드라마
극적 완성도나 재미와 무관하게 몇 장면 만으로 포만감을 주는 영화가 있다. 13일 개봉하는 <고래와 창녀>같은 영화가 그렇다. 이 영화는 남극과 맞닿은 아메리카 대륙의 최남단, 세상의 끝이라고 종종 표현되는 파타고니아를 배경으로 한다. 물에 젖은 사막처럼 황량하면서도 그 축축한 검푸른 기운으로 사람을 강하게 유혹하는 화면 속 파타고니아 땅과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 제 값을 한다. 특히 신비로운 라틴의 감성과 모험으로 가득찬 루이스 세풀베다의 <파타고니아 특급열차>를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도리없이 빠져들 만한 영화다.

영화는 2003년 현재의 파타고니아와 1933년 파타고니아를 교차시킨다. 스페인의 작가인 베라(아이타나 산체스 기요)는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아르헨티나 군인들의 사진을 모은 사진첩에서 묘한 분위기의 여자 사진과 두툼한 편지들을 발견한다. 호기심이 발동했다가 갑자스런 유방암 수술로 눕게 된 그의 병실 옆자리 할아버지에게서 사진 속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 베라는 그 여자가 살았다는 파타고니아로 떠난다. 그 여정에서 베라의 머릿 속에는 사진 속 여자 로라(메세 로렌스)의 열정과 좌절이 재구성된다.

1933년 로라는 사진작가인 애인(레오나르도 스바라글리)을 따라 파타고니아에 온다. 애인은 성적으로나 감성적으로 분방하게 행동하는 로라에게 배신감을 느껴 이들이 머물던 숙소이자 술집의 주인에게 로라를 팔아버리고 떠난다. 한참 뒤 그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돌아오지만 그를 맞는 건 파타고니아의 척박한 땅보다 황량하고 차가워진 로라의 눈빛이다.

베라는 로라에 대한 상상에 몰두할 수록 로라와 자신을 점점 동일시해간다. 화면은 베라의 행동에 로라를 포개는 식으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로라의 열정을 유방암 수술로 의기소침해진 베라의 가슴에 불어넣는다. 여성들의 특별한 이야기라거나 사랑과 배신의 짙은 허무를 영화의 방식은 범상한 편이다. 그러나 ‘창녀’라는 말 조차도 묘한 낭만으로 휘감을 정도로 황량하면서도 아름다운 자연과 그곳에 등대처럼 외롭게 서있는 술집의 퇴폐적이면서도 아스라한 분위기, 그리고 그 위에 드리워진 반도네온의 탱고 가락이 보는 이를 취하게 한다. 또 파타고니아 해변과 술집의 명멸하는 불빛 아래에서 로라의 애인이 찍는 여자들의 사진이 지나간 시간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바다와 초원에서 바다 밑 심연의 풍경까지 시네마스코프로 촬영해 스크린으로 옮겨 놓은 파타고니아의 다양한 모습이야 말로 두 여자 주인공보다 매혹적인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아르헨티나 군부가 개입했던 수천명의 실종 사건을 영화로 옮긴 사회드라마 <오피셜 스토리>(1985)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루이스 푸엔조 감독의 2004년 연출작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프리비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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