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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필진] 동성애였을까?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등록 2006-07-13 13:47수정 2006-07-14 14:58

영화로 본 동성애의 세계 ①
시대가 변하긴 많이 변한 모양이다. 국내 홍석천의 커밍아웃부터인지, 그것이 아니면 세계적인 추세인지 알 길이 없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쉬쉬하던 동성애가 영화로까지 나와 대중들에게 친숙해지고 있다. (더구나 <브로크백 마운틴>은 15세 등급이다. 미성년자 관람불가일 줄 알았더니.)

스무살이 되면서부터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내게 달려드는 동성애 문제를 그동안 다른 인권들을 이해했던 노련미(?)로 쉽게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이런 고민도 해본다.

나는 ‘인권’이라는 단어에 너무 약한 것은 아닐까?

그저 인권이라면 현실성을 따지기전에 100% 받아들여야 하는 아름다운 것이라는 모범적 정답에 익숙해져, 아직 내 안에서 소화도 되지 않았는데 맛있게 먹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알고 있다. 그러면 나중에 배가 아파 물똥을 싼다는 것을.

‘인권’도 중요하지만 저마다의 인권들이 가지는 특징과 현실과의 대립점 등에 대해 이해하고 소화해내기 위해서는 아주 오랜 시간의 고민이 필요하고 그 문제들과 익숙해져야 한다. 해서, 나는 이번 글과 다음 글을 동성애 영화로 다룰 생각이다.

서두가 너무 길었나? 영화 이야기로 들어가자. 먼저 밝혀두지만 분명 이 영화는 서로 사랑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 영화의 성격을 동성애 영화로 규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선 글 나중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하자.

1963년, 두 남자의 만남. 양치기 ‘에니스 델마’와 ‘잭 트위스트’는 각자 양치는 일자리를 구했지만 같은 장소인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배정 받는다. 산이 높고 험하여 자주 장을 봐올 수도 없고 이따금 곰 같은 야생동물의 공격을 받는 위험한 곳이기도 하지만 광활한 하늘에 구름 조각 떠다니고 산색이 깊은 아름다운 곳이다. 양떼 방목장에서 여름 한 철 함께 일하게 된 갓 스물의 두 청년 에니스와 잭은 서서히 서로에게 마음을 터놓게 되고, 밤낮으로 함께 일하며 대자연의 품에서 깊어져간다. 그들의 우정은 친구 사이의 친밀함 이상으로 발전해가는데, 이런 둘의 묘한 전선을 목장 주인에게 들킨데다가 태풍 탓에 양을 몇 마리 잃어 둘은 일자리까지 잃고 만다.



갈 데가 마땅히 정해져있지 않은 처지라 잭은 에니스에게 나와 함께 하자고 제안하지만 에니스는 꽤 단호히 거절한다. 사랑에 올인할 준비가 되어있는 잭 트위스트와는 달리 체면과 현실의 눈초리에 당당하지 못하고 근엄함을 잃지 않으려는 에니스 델마의 갈등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기억남는 장면을 내게 딱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에니스의 오열 장면을 꼽을 것이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도 츠네오는 조제에게서 도망가놓고 오열했다. 그런데 <브로크백 마운틴>에서도 역시 잭 트위스트에게서 도망친 에니스 델마가 오열했던 것이다. 무겁고 육중하고 높아 보이는 벽과 벽 사이에 몸을 숨기고 그 벽을 쾅 쾅 치면서 눈물로 절규하는 에니스의 모습은 금지된 감정, 그러나 자연스럽게 끌리는 감정을 사회에 이해받을 수 없는 아픔을 나타내고 있었다. 또한 자신 내부에서도 애써 거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남들이 ‘비정상’이라고 이야기하는 감정, 혹은 육체가 먼저 마음을 열고 자신에게 다가올 때의 유혹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소수’의 매력이기에 ‘다수’에게서 찾기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존재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즐기는 입장에선 자신의 행동거지가 현명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떠나버리면 깨닫는다. 제 인생이 가장 충만하도록 하는 존재를 스스로 져 버렸다는 것을. 그 사실을 확인함과 동시에 밀려오는 자괴감과 환멸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금방 확인할 수 있는게, 그 존재에게서 도망치고 나면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은 죄다 평범하고 그저 그런 것들이기 때문이다.

후에 잭과 에니스는 각 여자를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여 잘 살게 되었지만 그들은 어딘가에 목말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에니스에게 조만간 자신을 찾아오겠다는 잭의 엽서 한 통이 도착하고 그들의 만남은 그렇게 다시 시작된 것이다.

1년에 한번 꼴로 만나는 그들은 늘 브로크백 마운틴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아무래도 브로크백 마운틴은 에니스와 잭의 사랑이 싹튼 마술적인 장소이며 그들의 사랑을 포용해주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함께 있을 땐 수다를 떨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어쩐지 에니스는 늘 불편하고 조심스러운 기색이다. 에니스가 어릴 적 마을에서 단 둘이 살고 있는 남자들이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기 시작했고 어느날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따라간 곳에는 아버지가 그랬음이 분명한 시체가 있었고 시체의 성기가 뽑혀져 있었던 것이다. 에니스는 남자와 남자가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토록 잔인한 처우를 받아 마땅한 것이라고 여겨진다는 것이 화가 나고 서럽기도 했지만 그런 눈길에 당당하지 못한 자신에게도 화가 났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무모해도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둘만의 인생을 다시 시작하자는 잭에게 화풀이를 하게 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런 만남을 20년동안이나 해온 그들의 관계는 에니스가 이혼을 당하면서 시작된 슬럼프와 함께 점점 수렁에 빠졌고, 잭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면서 끝이 난다. 에니스가 잭의 소식을 듣자마자 퍼뜩 들었던 생각이 자신의 어릴 적 경험이었음이란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자신이 죽으면 브로크백 마운틴에 묻히고 싶다는 잭의 말을 기억한 에니스가 유골이 보관되어있는 잭의 고향집으로 가고, 그 곳에서 잭이 보물처럼 간직해온 뜻밖의 물건을 발견하면서 잭에게 조금 더 자신있지 못했던 자신의 나약한 애정을 한탄한다.

에니스가 잭에게 속으로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영화는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잭의 마지막 대사로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이 소중한 한마디의 대사는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을 위해 남겨두기로 한다.


남성과의 사랑 쪽에 비중이 더 크긴 하지만 여성과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던 이들을 과연 동성애자로 볼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고, 어쩐지 결혼한 아내가 무시받는 기분이라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속상했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는 완전히 동성애 영화라고 정의해서는 위험하다.

<브로크백 마운틴>을 굳이 정의하자면 난, 인간적 좌절과 희망에 두 남자가 어떤 입장으로 맞서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하겠다. ‘허락되지 않은 사랑’의 그 모든 경우를 감싸안을 수 있는 이야기이기에 조금 울적한 느낌일지라도 영화의 온도만큼은 기분좋게 따뜻하다. 또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의 중점이 상대가 누구냐는 ‘대상’에 있지 않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확실하냐는 ‘주체’에 있기 때문에 사랑에 더 자신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대상’보다 그 ‘주체’에 주목하길 바라는 뜻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다시 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어느 레즈비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사람이 여자라서 사랑한 게 아니라, 사랑하고 보니 여자였다.”

‘여자라서’ 사랑한 게 아니라, ‘사랑하고 보니’ 여자였음을 호소하는 이 말을 우리는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성애자만을 ‘정상’으로 보는 사회에서 동성애를 하게 된다는 것은 대상보다 주체가 존중되었음이 분명하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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