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크레더블〉을 잇는 픽사의 신작 〈카〉는 자동차 경주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이다. 미국의 자동차 경주 영화들이 그렇듯 〈카〉도 거대한 경기장에서 달리는 자동차의 굉음과 엄청난 속도감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런데 여기엔 사람이 없다. 경주용 차도 스스로 달리고, 중간에 기름을 넣고 바퀴를 갈아주는 것도 차이고, 관객석을 가득 메운 것도 차들이다. 〈토이 스토리〉의 장난감, 〈벅스 라이프〉의 벌레들처럼 〈카〉는 자동차를 의인화한다.
라이트닝 매퀸은 전도양양한 경주용 자동차다. 매퀸은 차에게 최고의 부와 명예를 선사하는 피스톤컵 경주대회에서 노련한 다른 두 차와 결승전을 치르게 된다. 경기장으로 달려가던 그는 국도변의 작은 마을에서 사고를 일으켜 꼼짝없이 갇히는 신세가 된다. 〈카〉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돈과 명예에 눈먼, 젊고 성질 급한 주인공이 쇠락했지만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을 경험하면서 인생의 다른 의미를 발견한다는 내용은 어떤 재료에 끼워맞춰도 설렁설렁 흘러갈 수 있는 이야기다. 〈카〉는 이 뻔한 이야기에 넓은 고속도로가 상징하는 현대식 삶, 또는 미국식 삶에 대한 반추를 첨가한다. 매퀸이 갇히게 되는 마을은 미국의 대륙횡단 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버려진 국도변 마을이다. 운전자들이 고속도로를 내달리는 통에 1년에 방문객 한두명 올까말까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면서 살아간다.
평생 페라리 한번 보는 것이 꿈인 정비자동차와 유기농 기름을 파는 히피족 승합차, 도시에서의 부와 명예를 포기하고 이곳으로 온 늘씬한 포르셰 등의 캐릭터가 아기자기하다. 잘 닦은 자동차 보닛처럼 광택 있는 금속 질감을 표현한 그래픽과 탄력있는 속도감을 실사영화보다 훨씬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게 장점. 그러나 페라리, 포르셰는 아름다움과 지성, 품위가 넘치고 꼬질꼬질한 트럭은 구박덩어리가 되는 등 ‘출생성분’으로 계급이 결정되는 자동차 세상은 인간들의 세계보다 잔인하다는 개운치 않은 여운도 남긴다.
생전에 자동차광이었던 배우 스티브 매퀸의 이름에서 따온 주인공 라이트닝 매퀸은 오언 윌슨이, 닥 허드슨은 실제 자동차 경주 선수였던 폴 뉴먼이 목소리 연기를 했다. 두시간 넘게 자동차의 소음과 질주를 보는 게 피곤한데다 지나치게 미국적인 이야기 배경이 다소 지루하지만 제임스 테일러, 셰릴 크로, 존 메이어 등이 참여한 영화음악이 피로한 운전을 위로하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처럼 느긋한 휴식을 제공한다. 20일 개봉.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브에나비스타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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