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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여자보다 서너살 연하였다. 낯선 섹스에 동반되는 관계의 두려움을 그도 느끼고 있었다. 순한 남자였다. 다행스럽게도. 새벽에 여자는 트럭에서 내린다. 한차례 오바이트를 하고 나서 혼자 길을 가다가 다시 트럭으로 돌아온다. 남자에게 말한다. “길동무 해줄게.”둘을 실은 트럭이 달리기 시작하면서 화면과 음악이 밝아진다. 거기서 타이틀을 올리는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이 판타지 같은 여행에 기꺼이 동승하게 만든다. 그러나 도입부를 통해 설레임 속에 이미 스산함을 심어놓았다. 관객은 안다. 둘의 만남은 짧을 것이고, 그 뒤에 둘은 어떻게든 후유증을 다스려야 할 것이다. 영화는 몸이 먼저 만난 짧은 사랑의 이야기이다. 둘은 그 여행에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간단한 단서만을 얻지만 많은 걸 주고 받는다. 여자 소설가 아카사카 마리가 쓴 동명의 원작 소설을 따라 영화도 여자의 시점과 독백으로 끌고간다. 그 때문에 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건 여자가 뭘 얻었느냐이다. 르포 작가인 여자는 몸에 대한 어떤 결벽증이 있다. 습관처럼 음식을 양껏 먹고 토해버린다. 자기 속에서 올라오는 어떤 소음들에 시달리며 잠을 잘 못 이룬다. 소녀 시절의 어떤 상처 때문인 듯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여행하면서 남자와 이런 저런, 가끔은 동문서답같은 대화를 나누고, 그 남자와의 거리감을 애써 허물지 않고 놓아둔 채 지나가는 풍경과 사람에 몰두하고, 억제할 수 없는 자기 연민에 흐느껴 울다가 남자의 체온에 위로받는다. 그리곤 헤어질 즈음에 느낀다. 그 소음들이 사라졌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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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브레이터>를 상처의 치유에 관한 영화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 정의는 너무 인색해보인다. 영화는 몸, 관계, 타인 등의 개념과 실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동시에 명쾌하게 손에 잡히지 않는 그 변수들이 혼재해 빚어내는 이 영화의 스산함은, 어지간한 영화에서 구하기 힘든 정서적 풍요로움을 안겨준다. 여자가 남자를 두고 독백한다. “이 남자는 왜 이렇게 친절할까. 감정이 없는 데서 나오는 친절함, 동물적인 본능의 친절함을 이 남자는 갖고 있다.” 그러면 동물적 본능으로 친절한 채 떠돌며 사는 그 남자는 여자와 헤어지면서 슬프지 않을까. 밝아서 되레 슬픈 그 쿨한 헤어짐의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 수작이다. 여자 역의 데라지마 시노부는 이 영화로 2003년 도쿄국제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히로키 류이치 감독. 3일 개봉. 임범 기자 isman@hani.co.kr 사진 스폰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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