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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03 16:30 수정 : 2005.03.03 16:30

낯설게 다가와 쿨하게 떠나네, 그 사랑

상처와 연민 씻는 ‘여행의 떨림’

30대 초반의 한 여자가 슈퍼마켓 안을 배회한다. 와인을 사러 와 놓고는 이 남자, 저 남자를 보며 걸음의 방향을 분명하게 잡지 못한다. 이 여자의 불안한 눈빛과 독백에서 읽힌다. 남자의 육체에 대한 갈구와 두려움이 뒤섞여 있음을. 그 눈에 한 남자가 들어온다.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낚시꾼처럼 장화를 신은, 편안해 보이는 남자. 남자는 이 여자의 눈빛을 읽은 걸까. 환상처럼, 옆을 지나가면서 살짝 여자의 엉덩이를 건드리고 간다. 조금 있다가 여자는 남자를 뒤따라 나간다. 속으로 되뇌인다. “먹고 싶다. 저거 먹고 싶다….”

<바이브레이터>의 도입부는 관객을 바짝 긴장하게 만든다. 여자가 왜 저럴까. 이유야 어떻든 이해할 순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걸 상처받지 않고 충족할 수 있을까. 불안하고 안쓰럽다. 보통 영화 같으면 시간이 어지간히 흘러야 전달할 수 있는 이런 느낌을, 빼어난 연기와 정확한 카메라와 몇마디 독백으로 순식간에 잡아챈다. 남자는 대형 트럭에서 먹고 자면서 먼 길을 오가는 트럭 운전사였다. 운전석에 앉아선, 창밖으로 여자를 향해 휘파람을 분다. 여자는 트럭에 탄다. 섹스를 한다.



남자는 여자보다 서너살 연하였다. 낯선 섹스에 동반되는 관계의 두려움을 그도 느끼고 있었다. 순한 남자였다. 다행스럽게도. 새벽에 여자는 트럭에서 내린다. 한차례 오바이트를 하고 나서 혼자 길을 가다가 다시 트럭으로 돌아온다. 남자에게 말한다. “길동무 해줄게.”둘을 실은 트럭이 달리기 시작하면서 화면과 음악이 밝아진다. 거기서 타이틀을 올리는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이 판타지 같은 여행에 기꺼이 동승하게 만든다. 그러나 도입부를 통해 설레임 속에 이미 스산함을 심어놓았다. 관객은 안다. 둘의 만남은 짧을 것이고, 그 뒤에 둘은 어떻게든 후유증을 다스려야 할 것이다.

영화는 몸이 먼저 만난 짧은 사랑의 이야기이다. 둘은 그 여행에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간단한 단서만을 얻지만 많은 걸 주고 받는다. 여자 소설가 아카사카 마리가 쓴 동명의 원작 소설을 따라 영화도 여자의 시점과 독백으로 끌고간다. 그 때문에 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건 여자가 뭘 얻었느냐이다. 르포 작가인 여자는 몸에 대한 어떤 결벽증이 있다. 습관처럼 음식을 양껏 먹고 토해버린다. 자기 속에서 올라오는 어떤 소음들에 시달리며 잠을 잘 못 이룬다. 소녀 시절의 어떤 상처 때문인 듯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여행하면서 남자와 이런 저런, 가끔은 동문서답같은 대화를 나누고, 그 남자와의 거리감을 애써 허물지 않고 놓아둔 채 지나가는 풍경과 사람에 몰두하고, 억제할 수 없는 자기 연민에 흐느껴 울다가 남자의 체온에 위로받는다. 그리곤 헤어질 즈음에 느낀다. 그 소음들이 사라졌음을.




<바이브레이터>를 상처의 치유에 관한 영화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 정의는 너무 인색해보인다. 영화는 몸, 관계, 타인 등의 개념과 실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동시에 명쾌하게 손에 잡히지 않는 그 변수들이 혼재해 빚어내는 이 영화의 스산함은, 어지간한 영화에서 구하기 힘든 정서적 풍요로움을 안겨준다. 여자가 남자를 두고 독백한다. “이 남자는 왜 이렇게 친절할까. 감정이 없는 데서 나오는 친절함, 동물적인 본능의 친절함을 이 남자는 갖고 있다.” 그러면 동물적 본능으로 친절한 채 떠돌며 사는 그 남자는 여자와 헤어지면서 슬프지 않을까. 밝아서 되레 슬픈 그 쿨한 헤어짐의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 수작이다. 여자 역의 데라지마 시노부는 이 영화로 2003년 도쿄국제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히로키 류이치 감독. 3일 개봉.

임범 기자 isman@hani.co.kr 사진 스폰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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