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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 편견의 세상아, 나랑 한판 할래?

등록 2006-08-30 20:27수정 2006-08-31 15:35

가수 마돈나를 좋아하는 소년은 여자가 되고 싶어한다.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그가 선택하는 건 500만원의 장학금이 걸린 씨름대회다. 여자가 되기 위해 여자의 세계와는 멀고도 먼 모래판에 몸을 던져야 하는 열여섯살 고등학생의 난처함과 고단함. 산다는 건, 특히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산다는 건 그렇게 녹록지가 않은 것이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고등학교 씨름부를 무대로 하는 감동의 스포츠 드라마와 유쾌한 학원물 코미디의 외피를 두르고 있다. 그러나 양파 껍질처럼 여러겹으로 쌓인 장르적 재미가 하나씩 하나씩 벗겨지면서 드러나는 건 동구라는 아이로 대변되는 소수자가 자신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 이 세상과 어떻게 전투하는가 하는 것이다.

성전환 수술비 마련하려 씨름판 뛰어든 남학생
집 안팎 똬리튼 주류질서와 즐겁고 따뜻하게 맞서 싸워

이 영화의 미덕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실존의 투쟁이라는 사뭇 심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가볍고 즐겁게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이건 단순한 기교나 포장이 아니라 즐겁게 싸우는 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나 세대만이 구사할 수 있는 어법이다. 동구(류덕환)는 일본어 선생님(초난강)을 짝사랑한다. 여자로 다시 태어나 선생님 앞에서 “당당하게” 사랑을 고백하는 게 동구의 꿈이다. 수업시간 선생님의 호명에 혼자 얼굴이 붉어지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동구의 모습은 어처구니 없으면서도 사랑스럽다. 마찬가지로 씨름부에 와서 다른 “칼라”의 샅바를 찾거나 샅바를 인도 여인의 의상처럼 두르고 춤을 추는 동구에게서 영화는 우스꽝스러움과 그의 열의 또는 진심을 고스란히 함께 전달한다. 이런 결과는 욕망과 현실이 충돌하며 빚어내는 어색하고 황당한 상황을 편견과 과도한 연민 없이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가능해진다.


학교 씨름부를 한 축으로 하는 동구의 삶이 엉뚱하면서도 귀여운 반면 실패자이자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가 버티고 있는 동구의 집은 영화의 전반적인 톤보다 훨씬 무겁다. 집 밖에서 동구가 사회의 폭 좁은 ‘시선’과 싸운다면 집 안에서는 폭력적 가부장적 질서와 직접적이고 전면적인 대결을 펼쳐야 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 대결이 뿜어내는 기운이 너무 세서 영화 전체의 분위기가 기우뚱하듯 아슬아슬하다.

<천하장사 마돈나>의 또 다른 미덕은 주인공 동구를 비롯해 단 한명도 대충 만들지 않은 캐릭터들이다. 특히 헝그리 정신이 전무한 씨름부 코치(백윤식)와 전투력 부족한 씨름부 삼인방, 놀이 공원에서 꼬마들이 좋아하는 인형옷을 입고 일하는 엄마(이상아), 동구의 비밀스런 꿈을 내일 먹고 싶은 반찬 정도로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친구 종만까지 동구를 둘러싼 인물들은 다들 어딘지 조금씩은 허술하거나 비껴나가 있다. 넓은 의미에서 동구처럼 소수자에 속하는 이들은 마치 이 영화의 어법처럼 하찮아 보이는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통념에 무심함으로써 주류적 질서와 싸우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이 ‘본의 아니게’ 만들어내는 헐렁하고 싱거우면서도 따뜻한 감성적 유대는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흔히 신인감독에게서 기대하는 종류의 새로움으로 충만한 영화는 아니다. 많은 부분이 장르적 관습에 충실하고 또 자주 정지되는 화면과 단절되는 편집은 이따금 만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럼에도 이만한 이야기를 만드는 재주와 단순하지 않은 이야기를 경쾌하게 끌어가는 힘은 흔하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충무로 시나리오 작가 출신인 이해영·이해준 감독의 <천하장사 마돈나>는 올해 단연 돋보이는 연출데뷔작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31일 개봉.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싸이더스에프앤에이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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