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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07 17:37 수정 : 2005.03.07 17:37

아카데미 감독상등 4개부문 석권
75살 이스트우드식 감흥 결정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영화들의 한 특징이 장르 영화의 익숙한 이야기 전개구조를 따르면서도 보통의 장르 영화들과는 다른, 예사롭지 않은 감흥을 연출한다는 점이다. 그가 75살의 나이에 만들어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알짜배기 4개 부문을 차지한 25번째 연출작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이 특징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가난한 여자 권투선수와 늙은 코치가 팀을 이뤄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여성판 〈록키〉 같은 권투영화로 시작해서, 아버지와 딸의 감정이 이입된 유사가족의 멜로드라마로 끝맺는다. 한마디로 권투를 차용한 멜로 영화다.

노년의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다지 잘나가지 못하는 권투 코치다. 낡은 그의 도장에 모인 선수 지망생들은 오합지졸이다. 프랭키는 실력 있는 한 선수에 집중해 그를 키우지만 챔피언 타이틀전을 목전에 두고 프랭키를 떠나 다른 코치를 찾아간다. 이 도장에 31살짜리 식당 종업원 매기(힐러리 스왱크)가 찾아온다. 프랭키는 나이 든 여자 권투 선수를 키우는 건 불가능하다며 내치지만 매기는 집요하다. 자신에게 남은 희망은 권투밖에 없다며 울먹인다. 마침내 둘이 팀을 맺은 뒤 승승장구하다가 정작 중요한 시합에서 매기는 큰 부상을 당한다.

프랭키가 딸에 대한 애정을 매기에게 쏟고 있음은 쉽게 알아챌 수 있다.(혼자 사는 프랭키는 하나뿐인 딸로부터 냉대받는다. 수시로 딸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모두 반송돼 돌아온다.) 매기가 다쳐 누운 뒤 프랭키는 매기를 극진하게 보살핀다. 그 뒤 줄거리를 말하면 스포일러(결말 드러내기)가 될 터. 주목할 건 매기가 다치기까지는 이 영화의 도입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후에 벌어지는 이 유사가족의 멜로드라마를 보려면, 눈물 많은 관객들은 손수건을 두둑이 챙겨야 한다. 그럴 만큼 여느 멜로 영화처럼 이 영화도 감상적인 요소가 있지만, 한 외지의 평처럼 ‘감상적이면서 동시에 냉혹’하다. 눈물을 흘리더라도, 감정을 깨끗이 씻어주는 카타르시스 효과를 기대할 순 없다. 새삼 삶을 생각하게 하는 부담감을 응어리처럼 남긴다.

조금 달리 보면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좌절해 놓고도 유혹 앞에 도전하고 다시 좌절하는 일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인간 삶에 바치는 연가다. 프랭키는 현실만큼, 아니 현실보다 더 냉혹한 권투의 세계에서 숱한 좌절을 겪었다. 욕심을 내다가 불구가 되는 선수들을 많이 봐왔고, 그래서 “먼저 자신을 보호하라”고 숱하게 가르치면서도 또 매기를 다치게 하고 말았다. 무모하다 싶은 일은 무조건 피하자고 여러차례 다짐해왔고, 자제되지 않는 기운을 매주마다 성당에 가서 신부를 붙잡고 시비걸면서 풀어왔다. 그러나 유혹에 애정이 가세하면 희망이 된다. 매기는 희망이었다. 노년에 꿈처럼 찾아온 그 희망을 붙잡는 건 정당했고, 프랭키는 그 결과 앞에 책임지고 더 고립돼 간다. 그래서 이 영화는 좌절과 도전의 되풀이 속에 반성이 깊어져, 타인에 대한 책임감이 클수록 고립돼 가는 의로운 삶에 바치는 슬픈 찬가이기도 하다.

〈뉴욕 타임스〉는 영화 속에서 프랭키가 좋아하는 시인 예이츠를 이 영화에 견주면서 “진부함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썼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는 진부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진부하지 않다. 이건 아무나 못하는 일이다. 10일 개봉.

임범 기자 isman@hani.co.kr 사진 시네와이즈 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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