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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사이코 연인’ 낯설지만 괜찮아

등록 2006-12-04 17:18수정 2006-12-05 21:11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복도쪽 형광등은 더 붙임성이 있으려나?” 자기가 사이보그라고 믿는 영군(임수정)은 형광등, 자판기와 대화하며 밥에는 입도 안 댄다. 영군의 할머니는 자신이 쥐라고 믿고 무만 먹다가 하얀맨(의사)들한테 잡혀갔다. 하얀맨들을 다 죽이고 할머니를 구하고 싶은 영군은 뭐든지 훔칠 수 있다고 믿는 일순(정지훈)에게 자기 동정심을 가져가 달라고 부탁한다. 이들이 신세계 정신병원의 연인이 된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시사회가 열린 지난 1일 박찬욱 감독은 “실험적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스타를 캐스팅하면서 관객에게 친절하도록 바꿨다”고 밝혔다. 하지만 줄거리를 따라 영화를 이해하는 방식에 익숙한 관객에게 <싸이보그…>는 여전히 낯선 영화다.

경계 넘나들기 현실과 상상의 구분이 흐릿하다. 관객은 주인공들에게 벌어지는 사건이 아니라 그들의 머리 속으로 초대받는다. 신세계 정신병원이란 공간도 마치 동화처럼 알록달록하게 꾸며져 현실감이 없다. 상상 안과 밖이 비슷한 셈이다. 영군의 손가락은 기관총으로 변신해 의사들을 공격하고 영군의 침대는 무당벌레처럼 작아져 하늘을 난다. 일순은 요들송을 잘 부르는 병원 환자의 목소리를 훔쳐 영군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180도 돌아간 영군의 머리를 잡고 입 맞춘다. 중요한 건 줄거리가 아니라 이미지이며 사건이 아니라 정서다. 탄탄하고 논리 정연한 이야기를 추구하는 관객에게는 정신없는 푸닥거리같이 보일 테고 새로운 영화 독법이 궁금한 관객에게는 이미지들의 성찬이 될 듯하다.

보통 주변 인물들은 주인공의 이야기를 탄탄하게 만들기 위한 보조 장치로 쓰인다면 <싸이보그…>에선 그들에게도 나름대로 그들만의 세계가 주어진다. 너무 겸손해서 앞으로 걷지도 못하는 신덕천(오달수)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언제나 주기만하는 탁구는 없을까” 따위 하나마나한 고민에 하나마나한 이야기만 한다. 중력을 이기고픈 왕곱단(박준면)은 두발을 비비면 하늘로 떠오르는 양말을 개발했다고 믿고 밤마다 비행한다. 이야기는 주변 인물들의 원심력을 타고 퍼져나간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도 뒤바뀌어있다. 영군이 밥을 안 먹자 속이 탄 의사는 호스를 끼워 음식물을 집어넣지만 영군은 다 게워낸다. 전기충격요법도 벌이지만 영군은 되레 충전됐다고 믿고 손가락 총을 쏘아댄다. 할머니를 잡아갔으니 의사들은 치료자이기 보다는 발병의 원인 제공자들이다. 영군이 밥을 삼키게 만드는 건 의사가 아니라 환자 일순이다. 일순은 영군을 바꾸려하지 않고 그 환상 속으로 함께 들어가 준다.

자신이 사이보그라 믿는 여자
뭐든 훔칠수 있다고 믿는 남자
상상-현실 넘나드는 사랑
존재의미 묻는 박찬욱표 코미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찬욱스러움’ 넘나들기 <복수는 나의 것> <올드 보이> <친절한 금자씨> 등 이른바 복수 3부작 이후 박찬욱 감독이 선택한 일종의 로맨틱 코미디라는 이유로 <싸이보그…>는 관심의 대상이 됐다. 게다가 그의 첫 12살 관람가 영화다. 결과물은 전작들과 달리 밝은 편이지만 또 연장선도 그렸다.

서로 반대되는 듯이 보이는 것들이 부닥쳐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금자의 괴기스런 복수극에 단정한 목소리가 해설로 깔리듯 영군에게 잔인한 임무를 지워주는 독백도 명상의 시간에 어울리는 낭랑한 목소리다. 유머도 이런 부닥침이나 상식 뒤집기에서 흘러나온다. 영군이 일순에게 동정심을 훔쳐달라고 부탁하자 일순은 “훔칠 마음이 생기도록 네가 노력하라”고 버럭 화를 낸다. 영화 속 칠거지악은 동정심, 설렘, 죄책감, 공상, 망설이기, 슬픔, 감사다.


인물들이 어차피 답을 찾을 수없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는 점도 전작들과 비슷하다. 영군(임수정)은 시간 날 때마다 “존재의 의미 한 개만 있었으면”이라고 뇌까린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일순(정지훈)은 점이 되어 사라질 거라는 공포 때문에 도둑질을 한다. “안티 소셜(반사회적인)” 판정을 받은 그는 “안티 소멸”이라고 주장한다. 존재 의미를 찾지 못해 괴로워하는 그들의 모습은 벗어날 수 없는 원죄에 갇힌 오대수(<올드보이>)나 금자의 몸부림을 생각나게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싸이보그…>는 전작들과 달리 사랑을 이야기하고 그만큼 밝다. 아이러니를 품었지만 긍정적인 일순의 대사 “희망을 버리고, 기운을 냅시다”를 닮았다. 사랑은 공감이라는 단순한 이야기이거나 의사-환자, 실제-상상, 정상-비정상 사이 수직적 질서를 거부하는 전복적인 동화거나, 주제는 관객 마음대로 골라잡으면 될 듯하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모호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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