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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이 운다’의 류승범 |
또래의 배우 중 류승범(25)만큼 영리함과 성실함을 함께 갖춘 연기자가 또 있을까? 2000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통해 세상에서 스크린 속으로 불쑥 들어온 이배우는 지난 몇 년 사이 비슷한 나이 때의 배우들에 비해 소란스럽지는 않지만 가장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4월 1일 개봉하는 '주먹이 운다'는 그런 의미에서 그에게 또 다른 도전이자 기회였던 것 같다.
길거리에서 매맞아 돈을 버는 한물 간 권투선수 태식(최민식)과 패기와 깡이 전부인 소년교도소 출신 권투선수 상환(류승범)의 두 축으로 진행되는 이영화에서 그는 최민식의 카리스마에 눌리지 않고 당당히 영화의 한 축을 이끌어가고있다.
인파이터형 청년배우인 그가 아웃복서 스타일의 베테랑 배우 최민식과의 연기대결에서 대등한 승부를 펼치고 있는 것. 수개월의 힘든 훈련 끝에 복서의 유니폼을입었던 류승범은 다른 배우들에게는 없는 독특한 표정으로 반항아의 눈물을 보여준다.
■권투는 링 안의 작은 인생 = 그가 연기하는 상환은 그닥 하고 싶은 일도, 인생의 목표도 없는 그런 친구다.
'사고'를 치고 들어간 소년교도소에서도 그의 삶은 딱히 달라질 게 없는 것. 그런그에게 아버지의 사고사와 할머니의 입원 소식은 권투라는 인생의 돌파구를 던져준다.
"평발인데다 워낙 운동을 그다지 즐기는 스타일이 아니다"라는 류승범은 영화속 복서 변신을 위해 촬영이 시작되기 수개월 전부터 운동선수처럼 지냈다.
정식 운동시간만 해도 하루 네 시간. 틈나는 대로 샌드백을 치고 줄넘기를 해야 했다.
반 년간을 권투선수로 보낸 그에게 복싱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류승범은 "권투는 인생"이라고 정의했다.
"인생이랑 많이 닮았어요. 상대방이 휘청거릴 때는 자만하기도 하고 또 쉼없이고난의 순간을 극복해 내야 하며, 슬픈 현실이지만 상대방을 쓰러뜨려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잖아요. 냉혹하지만 결국 자기 혼자 서야 한다는 사실도 그렇고요." ■후배 이전에 최민식의 열정적인 팬 = 최민식은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류승범에 대해 "무서운 배우"라며 칭찬을아끼지 않았다.
전작 '올드보이'를 촬영할 때도 꼭 같이 연기해보고 싶다는 말을 했을 정도. 류승범은 "선배의 칭찬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를 정도다.살가운 후배가되지 못했던 게 아쉽다"며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은 저야말로 정말 선배님의 열정적인 팬이었거든요. 출연하는 영화는 대부분 빼놓지 않고 봐왔어요. 영화를 통해 배우로서의 에너지를 얻기도 했고요. 처음같이 연기하게 됐다고 했을 때는 정말 황홀했죠." 영화의 후반 두 사람의 경기 장면은 연출 없이 실제 시합으로 촬영됐다.
'접근전', 혹은 '상환 우세', '태식 우세' 정도의 방향 외에는 직접 사투가 벌어진 것이다. 아무리 시합이라도 선배에게 주먹을 날리는 일은 쉽지 않았을 듯. 게다가 시합당시 최민식은 독감으로 몸도 못 가눌 정도의 상태였다.
"정말 가슴이 아팠죠. 하지만 일단 링에 올라 공이 울리니 때리지 않으면 맞는다는 동물적인 감각이 살아나더군요. '땡' 소리가 울린 뒤 그저 최선을 다했습니다."
■형의 영화라서가 아니라 류승완 감독의 영화라서 출연 = 형인 류승완 감독은 최근 영화의 시사회가 끝난 뒤 '형제끼리'라는 말이 부담스럽다고 말한 적 있다.
이는 류승범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그는 "솔직히 형의 영화에 출연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형이 아니라 작품자체를 보고 출연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다른 배우 혹은 다른 감독들과 똑같아요. 감독은 배우가 필요해서 접촉하고 배우는 작품을 원해서 출연하는 거죠. 아무리 형제지간이라고 해도 서로에게 직업이고일이니까요." 원래 다른 영화에 출연할 계획이었지만 그는 시나리오와 캐릭터의 실제 모델인서철 씨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두말할 것 없이 한번 살아볼 만한 영화다"는 판단을내렸고 바로 몸 만들기에 들어갔다.
■상환의 눈물은 삶의 고단함 느끼는 모든 사람들의 눈물 = 좀처럼 가족사 얘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이 영화에 자신의 경험이들어 있다고 털어놓았다.
바로 나문희가 연기한 할머니 캐릭터가 그것이다.
그는 "할머니 캐릭터는 우리 형제의 이야기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말했다.
"친구들과 만나 얘기하다보면 할머니 손에서 자란 사람들 사이에는 철없는 손자의 회한이라는 뭔가 미묘한 공통점이 있더군요. 영화 속 할머니와 상환의 관계에서도 그런 점이 들어가 있습니다." 류승범은 영화 속 인상이 깊었던 장면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신인왕전경기 장면과 함께 경기 후 할머니와 껴안는 신을 꼽았다.
"상환의 눈물은 의미가 있는 오열이에요. 청년 실업자, 사업이 잘 안풀리시는 분들, 일에 힘들어하는 직장인들까지 삶의 고단함이 없는 분들이 얼마나 있겠어요. 단지 상환만의 오열이 아니라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이 자신의 처지에서 쏟아내는 오열입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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