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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21 16:52 수정 : 2005.03.21 16:52



무라카미 류 소설 영화화 ‘68년 혁명’ 유쾌한 포착
재일 한국인 3세 이상일 감독·츠마부키 사토시 호흡

학생들의 뜨거운 피에 정치적 봉기와 문화적 반란의 기운이 함께 녹아들었던 68혁명은 지금까지도 사회과학의 주요 테마일 뿐 아니라 영화에서도 주요한 모티브다. ‘상상력의 해방과 유희’라는 68의 정신에서 출발한 고다르의 모든 작업뿐 아니라 <프라하의 봄>, 개봉을 앞둔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까지 68년은 많은 영화 속에서 직간접적으로 언급되거나 은유돼 왔다. 이 가운데 일본영화 <69>는 68년의 시대적 공기를 가장 가볍고 유쾌하게 포착한 영화가 될 것이다.

무라카미 류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한 <69>는 사실 혁명이라는 말을 쓰기에는 좀 쑥스러운, 발랄한 학원 청춘드라마에 가깝다. 일본 좌파 대학생들의 저항이 ‘전공투’로 극에 치닫던 69년의 일본 소도시 사세보의 고등학생 겐(츠마부키 사토시). 랭보, 고다르, 베트남전 등 무슨 의미인지 본인도 모르지만 그럴듯하게 주워 삼키며 친구들 앞에서 폼을 잡는 그는 방학을 앞두고 친구들을 선동해 바리케이드 투쟁을 벌이기로 한다. 진짜 이유는 단 하나. 좋아하는 여학생인 메리 제인이 “데모하거나 바리케이드 치는 사람은 멋지다”라는 말을 했기 때문. 겐은 순진한 모범생 아다마(안도 마사노부)에게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화보사진을 보여주면서 ‘사랑과 평화’를 설득한다. 그러나 아다마의 시선이 가는 건 열광하는 여자 관객의 가슴뿐이다. 이처럼 정치적 자각 없이 투쟁에 나선 겐과 친구들은 결국 학교를 발칵 뒤집어 놓고 메리 제인을 감동시키는 데 성공한다.

원작소설이 그렇듯 영화 <69>는 시종 지루함에 못 견디고 권위적인 학교 선생들을 골리려는 주인공의 악동같은 장난으로 점철된다. 바리케이드를 치고 복도를 온통 스프레이로 낙서하던 이들은 우연이지만 교장실 책상에 똥을 싸놓기까지 한다. 그러고는 “똥에도 무슨 사상이 있을까” 중얼거리는 이들을 통해 영화는 68의 정치적 무게를 휘발시킬 뿐 아니라 전공투 세대를 향해 야유까지 던진다. 대신 <69>에는 당시의 대중문화에 대한 애정이 짙게 깔려있다. 고다르, 록그룹 크림, 우드스탁 페스티벌 등 겐을 통해 언급되는 당시 서구 대중문화를 통해 영화는 68년의 유희정신에 다가간다. ‘상상력이 권력을 쟁취한다’는 학교 옥상의 플래카드가 겐의 흉내 또는 ‘폼’이라면 학내점거투쟁을 앞두고 고민에 빠진 아다마에게 겐이 “즐겁게 사는 게 이기는 거야.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구” 말하는 것이야말로, 영화가 생각하는 68의 진짜 시대정신 또는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청춘의 정신이다. 이 대사는 프라하의 봄을 이끌고 추방됐던 주역들이 체코 민주화 이후 한자리씩 차지하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갈 때 “보상받을 건 없어. 우리는 그때 즐거웠잖아”라고 말했던 밀란 쿤데라의 회고를 떠올리게 한다.

겐을 연기한 츠마부키 사토시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로 국내에도 두터운 팬층을 형성한 꽃미남 배우. 사토시를 비롯한 연기자들의 호연과 화면분할, 정지화면, 점프컷 등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경쾌한 연출력이 영화가 뿜어내는 웃음을 고조시킨다. 재일한국인 3세인 이상일(32)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으로 경쾌한 청춘영화 <고>를 각색했던 시나리오 작가 쿠도 칸쿠로의 재간이 십분 발휘된 영화다. 25일 개봉.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스폰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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