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24 16:43
수정 : 2005.03.24 16:43
9·11에서 길어온 ‘화염과의 사투’
고층빌딩 화재현장에서 구조활동을 벌이던 소방관 잭(와킨 피닉스)이 붕괴사고로 건물 안 사각지대에 추락한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데다 의식이 흐릿한 그에게 소방관으로 살았던 지난 십년의 생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레더 49>는 9·11에서 영감을 받은 영화다. 테러 현장에서 구조활동을 벌이다가 죽음을 맞은 소방관들의 사연은 가장 효과적으로 9·11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키면서도 관객들을 울릴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물론 <레더 49>는 9·11을 소재로 끌어오는 촌스런 직설어법을 쓰지는 않았다. 볼티모어의 한 소방대에서 활동하는 평범한 소방관의 헌신과 희생을 그리면서 미국적 가치 대신 보편적 인류애를 설득하는 방식을 채택한다.
<레더 49>의 영화적 야심은 소박하다. 쓰러진 잭의 회상 속에서 소방관이 되어 처음 불을 끄던 날, 아내와의 만남과 결혼, 절친한 동료의 죽음, 목숨을 걸고 인명을 구조했을 때 느꼈던 기쁨 등 소방관 영화라면 등장할 법한 에피소드들이 순서대로 이어지는 식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는 <분노의 역류>에서 형제간의 싸움 같은 갈등구조가 없다. 대신 잭의 연애와 가족사, 사건이 없을 때 평범하기 짝이 없는 소방관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과 화재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불과 싸우며 인명을 구하는 모습을 대비시키면서 소방관의 영웅적 모습을 더욱 극적으로 부각시키는 것이다. 그 대비는 진부하기는 하지만 거부감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다. 다만 마지막 장례식 장면에서 주제가의 전곡이 흐르며 소방관들의 이런저런 모습이 지나가는 장면들은 영락없는 소방대 홍보 비디오처럼 보인다. 4월1일 개봉.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브에나비스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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