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를 돌아보세요” 보이나요?
절망앞에서도 울지않는 버려진 아이들 1988년 일본 도쿄에서 일어났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아무도 모른다>는 부드러운 솜처럼 만져지다가 날카롭게 가슴을 베는 듯한 통증을 주는 영화다. 열두 살에서 여섯 살까지 올망졸망한 네명의 아이들이 엄마의 가출로 방치돼 저희들끼리 살아가다가 한 아이의 사고사로 그 처지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서 ‘비정한 모정’에 일본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사건이 모티브가 됐다. 작은 아파트에 엄마와 아들이 이사를 온다. 주인에게는 두 식구 뿐이라고 말했지만 이삿짐을 풀자 가방 속에 숨어있던 여덟살 시게루와 여섯살 유키가 나온다. 그리고 가방 속에 들어가기에는 너무 커버린 둘째 교코가 어둠 속을 걸어와 가족에 합류한다. 각자 아버지가 다르고, 셋은 출생신고도 되어 있지 않은 아이들이지만 아이들은 철없는 엄마와 그럭저럭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날 엄마는 집을 떠난다. 의젓한 장남 아키라는 엄마가 주고 간 작은 돈으로 살림을 꾸려보지만 돈은 금방 바닥이 나고 엄마는 약속했던 크리스마스가 지나 봄이 와도 돌아오지 않는다. <아무도 모른다>는 버려진 아이들을 그리지만 무겁거나 어둡지 않다. 카메라가 아이들을 내려보는 게 아니라 아이들의 시선과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엄마를 그리워하면서도 나름의 생활방식을 터득한다. 유일하게 집 밖에 나가는 것이 허락된 아키라는 시장을 봐와서 밥을 하고 교코는 빨래를 하고 시게루는 게임을 하고 유키는 인형놀이를 한다. ‘방치’ ‘유기’ 같은 어른들의 단어는 아이들을 겁주지 못한다. 잦은 클로즈업으로 잡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없다. 그러나 돈이 바닥나고 아키라가 ‘어른’ 흉내에 서서히 지쳐가면서 집안은 어지러워지고, 수도와 전기도 끊긴다. 시장을 보기 위해 나중에는 편의점에서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얻기 위해 아키라는 매일 같은 거리를 지나친다. 그동안 아키라의 머리는 덥수룩히 자라고 옷에는 여기저기 구멍이 나지만 바스러져 가는 이 아이의 삶을 ‘아무도 모른다’. 십년 이상 머릿 속에 있던 구상을 영화로 옮긴 고레다 히로카즈 감독은 비정한 모정, 또는 비정한 사회라는 식의 전선을 그려넣지 않는다. 영화가 묘사하는 엄마는 무책임하지만 천진하고, 이웃들은 친척이라고 속인 유키의 머리를 쓰다듬어줄 줄 아는 사람들이다. 1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다시피하며 아이들의 작은 습관까지 포착한 히로카즈 감독은 얻어온 오래된 음식에서도 “연어는 없어?”라고 묻고, 세수를 하러 공원에 와서도 물장난을 치는 아이들의 맑은 일상과 그 표정에서 놀라운 생동감을 잡아낸다. 절망은 아이들의 생활을 마비시키는 것이 아니라 슬쩍 다가와 스치듯 할퀴고 지나간다. 아이들은 결코 울지 않지만 허기와 더위와 외로움과 슬픔은 아이들의 생기를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결국 마지막에 아이들이 감당할 수 없는 사고가 벌어진다. 영화는 관객의 눈물을 짜내기 더없이 좋은 사건도 울지 않는 아이들의 시선으로 덤덤하게 묘사한다.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고도 여전히 아이다움을 잃지 않고 일상을 영위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슬프기보다 아프다. 엄마에게, 이웃에게, 사회안전망에 삿대질을 하기보다 이렇게 사는 주변의 아이들을 시야 안으로 들여다 놓기가 몇 배나 더 힘들다는 걸 <아무도 모른다>는 뼈아프게 깨우쳐준다. 4월1일 개봉.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동숭아트센터 제공.
아키라 역 아기라 유야 최연소 칸 주연상…학교서 인기 없는건 여전 %%990002%%
<아무도 모른다>에서 아키라를 연기한 야기라 유야(15)는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역대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교복을 입은 친구들에게 외면당할 때,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치려던 조난신호가 좌절됐을 때 언어로 묘사하기는 도저히 역부족인 이 소년의 씁쓸한 무표정은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오디션을 통해 발탁된 <아무도 모른다>는 아키라처럼 수줍음 많고 말 수 적은 야기라 유야의 첫 영화. “감독님이 너무 친절하고 자상하게 감정이나 상황을 이야기해줘 특별히 내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게 21일 방한한 야기라의 촬영후기다. 야기라뿐 아니라 나머지 세명 모두 비전문배우였던 영화에서 히로카즈 감독은 대본을 주는 대신 아이들에게 상황을 이해시키고 대사를 그때그때 귓속말로 이야기해줘 연기하는 식으로 연기지도를 했다. 영화에 대한 소감을 묻자 “볼 때마다 내가 제대로 하는지에만 신경이 쓰여 영화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고 꾸밈없이 대답한 그는 “아키라는 굉장히 마음이 좋은 아이이기 때문에 실제의 나와 얼마나 비슷한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상황이 되면 나도 아키라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말해, 연기를 하기보다 자신의 캐릭터에 마음으로 다가갔음을 보여줬다. 칸 수상 이후 “학교생활도 친구 관계도 달라진 게 하나도 없고 아이들한테 인기없는 것도 여전하다”고 말하지만 그는 1년 사이 키가 5cm나 자랐고 코끼리 조련사를 꿈꾸는 아이의 이야기인 <별이 된 소년>이라는 영화를 한편 더 찍었다. 또래의 아이들보다 조용하고 생각이 많아 보이는 인상의 소년이지만 좋아하는 배우와 영화를 물으니 “청룽”과 “액션영화”라는 ‘열다섯살스러운’ 대답을 했다. 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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