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밤 롯데시네마 대구점에서 상영된, 5·18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가 끝나도 일부 관객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자막이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며 여운을 되새겼다. 사진 서은진 인턴기자
평일인데도 객석 꽉 차…울다 웃다 끝내 훌쩍훌쩍
“우리라도 그들처럼 했을 것…일어나서는 안될 일”
“우리라도 그들처럼 했을 것…일어나서는 안될 일”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
31일 밤 롯데시네마 대구점에서 상영된, 5·18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민우(김상경 분)가 절규하며 진압군의 무차별 총격에 쓰러지자 극장 안은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뒤이어 불이 들어왔지만 일부 관객들은 영화의 여운을 되새기는 듯 자막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불 켜지고 자막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 지켜
광주에서 불어온 <화려한 휴가> 바람은 ‘보수의 본향’이라는 대구도 흔들었다. 평일인데도 객석은 27년 전 광주의 모습을 보러 온 관객들로 꽉 차 있었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관객들은 웃다가 울고, 울다가 웃었다. 백발이 성성한 한 노부부는 잠시도 등받이에 기대지 않고 영화를 지켜봤다.
잔혹한 진압에 주전부리도 멈춰
팝콘을 사 들고 온 젊은 관객들은 계엄군이 잔혹하게 시민들을 진압하는 장면에서 주전부리를 멈췄다. 영화가 마지막으로 치달을수록 눈물을 훔치거나 콧물을 훌쩍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자녀들을 데리고 극장을 찾은 한 중년의 중학교사는 “시위에 나선 학생들의 눈 밑에 치약을 발라주던 선생님이 기억에 남는다”며 “당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고민스러웠다”고 말했다. 곁에 있던 중학생 딸은 “학교에서 이런 역사에 대해 거의 배운 적이 없어 충격이었다”며 “너무 무섭고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중학생 “이런 역사 거의 배운 적 없어 충격”
역시 가족과 함께 극장을 찾은 이명수(50)씨는 “당시 대구지역에서는 이런 내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다”며 “영화내용이 다 사실이라면 우리도 그렇게(광주사람들처럼) 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권성호(20·대구가톨릭대 1년)씨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축구할 때는 뭉쳤다가 대통령 선거 때는 흩어진다”며 “이 영화를 보고 영남과 호남으로 나뉜 우리나라의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선거 때면 나뉘는 영-호남 현실 안타까워”
하지만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어”라는 여자 주인공 신애(이요원 분)의 대사처럼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관객들도 있었다.
<화려한 휴가> 바람은 대구의 다른 영화관도 마찬가지다. 인근의 멀티플렉스 메가박스 대구점 이성아 바이저는 “2개관에서 상영 중인 <화려한 휴가>의 주말 좌석 점유율이 토요일 50%, 일요일 74%, 오후 3시 이후는 매진됐다”며 “평일에도 저녁시간은 매진인데 이는 <스파이더맨 3>나 <트랜스포머> 등 흥행몰이에 성공한 할리우드 영화에 뒤지지 않는 수준”이라고 말했다.글·사진 박영률 기자, 서은진 인턴기자 ylpak@hani.co.kr
잔혹한 진압에 주전부리도 멈춰
<화려한 휴가>의 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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