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인거야, 그런거야? 연쇄살인 스릴러 영화가 자주 쓰는 인과관계 중 하나. 어릴 적에 끔찍한 사건을 당해 성격 장애가 생긴 이가 연쇄살인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블랙 아웃>은 이런 인과관계가 이 영화에도 적용될까, 아닐까를 두고 관객에게 게임을 걸어온다. 주인공 제시카(애슐리 주드)는 어릴 때 끔찍한 사건으로 부모를 잃었다.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였던 경찰관 존(새뮤얼 잭슨)이 제시카를 키우다시피 했고, 제시카는 존을 따라 경찰이 됐다. 제시카는 어릴 때 상처와 상관 없이 매우 정상으로 살아가지만, 불면증에 더해 한번 잠들면 좀처럼 잘 깨어나지 못하는 증상 때문에 정기적으로 정신과 의사의 상담을 받는다. 샌프란시스코 경찰서 관할 구역 안에서 남자들이 잇따라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공교롭게도 피해자가 모두 제시카가 아는 남자들이다. 심지어 자기와 잠자던 남자가 아침에 침대 옆자리에서 죽은 채 발견되기까지 한다. 당연히 제시카는 자기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여기서 몇가지 흥미로운 단서(그것이 결과를 유추하는데 도움이 되든, 방해가 되든)를 던져놓는다. 우선 보수적인 시각으로 볼 때 제시카의 품행이 단정치 못하다. 이따금씩 술집으로 남자 사냥을 나가 처음 만난 남자와 잠을 잔다. 제시카의 정신과 상담의사는 제시카더러 자꾸 ‘안정을 취해라’, ‘조심해라’ 하면서 제키사를 위험인물로 간주하려 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제시카는 조금 자유분방한 면이 있을 뿐 스스로를 잘 다스리며 유머도 있고 대인관계도 원활하다. 어떨 땐 제시카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위험하게 여기도록 강제하는 듯한 상담의사가 의심스럽기까지하다. 여기에 의심가는 인물이 하나 더 붙는다. 제시카의 파트너 경찰 마이크(앤디 가르시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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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봄> <헨리와 준> 등의 품격있는 영화를 만들어온 필립 카우프만 감독은 중반까지 범인이 누구냐는 추리에 제키사의 과거 상처와 사생활에 따른 선입관을 개입시킬지 말지를 두고 관객으로 하여금 고민하게 만든다. 이런 대목이 흥미롭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이 영화의 퍼즐은 긴장감을 잃은 채 안이하게 풀린다. 30대 중반을 넘긴 애슐리 쥬드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7일 개봉. 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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