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
옴니버스 두 편
옴니버스는 옛날의 합승 마차, 요즘의 버스를 뜻한다. 버스는 운명공동체다. 버스에 올라타는 순간, 승객들은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게 된다. 서로 다른 곳에서 와서, 각자 다른 곳을 향해 가는 도중, 한 지점에서 만나는 것이다. 영화와 문학이 옴니버스 형식을 즐겨 사용하는 이유는,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는 이 특수한 상황이 인생의 미묘함, 혹은 미묘한 인생을 보여주는 데 적절하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는 따분함을 피하려는 전략적 장치로 옴니버스 형식을 도입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흩어진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의식과 꼬치 꿰듯 하나로 꿰는 기술이다.
오는 9일, 두 편의 옴니버스 영화가 개봉한다. <브리짓존스의 일기> <어바웃 어 보이>로 유명한 영국 제작사 워킹 타이틀이 만든 <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와 배우 김민의 남편 이지호 감독이 만들고,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들이 출연해 관심을 모으고 있는 <내가 숨쉬는 공기>. 두 영화가 옴니버스 형식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들여다보자.
코믹 미스터리 멜로 <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
딸과 벌이는 ‘엄마찾기 게임’ 워킹 타이틀이 만든 옴니버스 영화라면, 여러 커플의 크리스마스 사랑 이야기를 다룬 <러브 액츄얼리>를 떠올리는 이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가 <러브…>의 다른 버전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나의…>는 전혀 새로운 형식을 취한다. 일단 남자 주인공이 한 명이다. ‘싱글대디’ 윌 헤이즈(라이언 레이놀즈)는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은 뒤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궁금해하는 10살짜리 딸 마야(아비게일 브레스린)를 상대로 이야기 게임을 벌인다. 비슷한 시기에 사귄 세 명의 여자친구 중 누가 마야의 엄마일지 알아맞추는 게임. 착하고 상냥한 첫사랑 에밀리(엘리자베스 뱅크스), 섹시하고 지적인 저널리스트 섬머(레이첼 와이즈), 정치에는 관심 없지만 주관이 뚜렷한 에이프릴(아일라 피셔)과의 연애담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진다. 중간중간 깜찍하게 끼어들어 웃음을 유발하는 아역배우 아비게일 브레스린은 흥미진진한 ‘꼬치’ 구실을 훌륭하게 해낸다. 영화는 ‘코믹 미스터리 멜로’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신선한 재미를 선사한다. 너바나의 <컴 애즈 유 아> 등 90년대 히트곡들이 스크린 위로 경쾌하게 흐른다. 한가지 유감인 것은 한글 제목이다. 영국의 90년대판 비틀스인 ‘오아시스’의 데뷔 음반 제목을 딴 원제 <데피니틀리, 메이비>를 이렇게 ‘특별’하지 않게 바꿔놓다니.
재미동포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 <내가 숨쉬는 공기>
씨줄 날줄로 엮은 희로애락 <내가 숨쉬는 공기>는 미국에서 요즘 유행하는 형식의 옴니버스 영화다. 서로 알지도 못하고,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영화의 어딘가에서 결국 만나게 한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작가 폴 해기스의 감독 데뷔작 <크래쉬>,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매그놀리아>가 대표적이다. <내가…>는 희·노·애·락을 주제로 각각 독립된 4가지 이야기를 몰아 하나의 결말을 낸다.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려는 소심한 펀드매니저(포레스트 휘태커),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가진 조폭 해결사(브렌든 프레이저), 조폭 두목(앤디 가르시아)에게 내맡겨진 팝가수(사라 미셀 겔러), 희귀 혈액형을 가진 첫사랑(줄리 델피)을 살리려는 의사(케빈 베이컨)는 씨줄과 날줄처럼 서로 엮인다. 그러나 옴니버스의 ‘꼬치’ 구실을 하는 팝가수의 원심력은 미약하다. 이지호 감독이 한국에서 뮤직비디오·시에프 감독으로 활동하던 시절, 직접 만난 사람들을 바탕으로 생각해냈다는 인물들은 놀랄 만큼 전형적이어서 홀로그램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8쌍의 8가지 충돌을 천의무봉의 솜씨로 꿰어내는 <크래쉬>와 비교하면 그 차이가 명확해진다. <크래쉬>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인종 차별과 소통 단절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화해와 타협의 수단으로 옴니버스 형식을 차용한다. 반면 <내가…>는 옴니버스 형식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보인다. 저예산 영화에 출연해서도 혼신의 연기를 보여주는 앤디 가르시아와 포레스트 휘태커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유피아이코리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딸과 벌이는 ‘엄마찾기 게임’ 워킹 타이틀이 만든 옴니버스 영화라면, 여러 커플의 크리스마스 사랑 이야기를 다룬 <러브 액츄얼리>를 떠올리는 이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가 <러브…>의 다른 버전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나의…>는 전혀 새로운 형식을 취한다. 일단 남자 주인공이 한 명이다. ‘싱글대디’ 윌 헤이즈(라이언 레이놀즈)는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은 뒤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궁금해하는 10살짜리 딸 마야(아비게일 브레스린)를 상대로 이야기 게임을 벌인다. 비슷한 시기에 사귄 세 명의 여자친구 중 누가 마야의 엄마일지 알아맞추는 게임. 착하고 상냥한 첫사랑 에밀리(엘리자베스 뱅크스), 섹시하고 지적인 저널리스트 섬머(레이첼 와이즈), 정치에는 관심 없지만 주관이 뚜렷한 에이프릴(아일라 피셔)과의 연애담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진다. 중간중간 깜찍하게 끼어들어 웃음을 유발하는 아역배우 아비게일 브레스린은 흥미진진한 ‘꼬치’ 구실을 훌륭하게 해낸다. 영화는 ‘코믹 미스터리 멜로’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신선한 재미를 선사한다. 너바나의 <컴 애즈 유 아> 등 90년대 히트곡들이 스크린 위로 경쾌하게 흐른다. 한가지 유감인 것은 한글 제목이다. 영국의 90년대판 비틀스인 ‘오아시스’의 데뷔 음반 제목을 딴 원제 <데피니틀리, 메이비>를 이렇게 ‘특별’하지 않게 바꿔놓다니.
내가 숨쉬는 공기
씨줄 날줄로 엮은 희로애락 <내가 숨쉬는 공기>는 미국에서 요즘 유행하는 형식의 옴니버스 영화다. 서로 알지도 못하고,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영화의 어딘가에서 결국 만나게 한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작가 폴 해기스의 감독 데뷔작 <크래쉬>,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매그놀리아>가 대표적이다. <내가…>는 희·노·애·락을 주제로 각각 독립된 4가지 이야기를 몰아 하나의 결말을 낸다.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려는 소심한 펀드매니저(포레스트 휘태커),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가진 조폭 해결사(브렌든 프레이저), 조폭 두목(앤디 가르시아)에게 내맡겨진 팝가수(사라 미셀 겔러), 희귀 혈액형을 가진 첫사랑(줄리 델피)을 살리려는 의사(케빈 베이컨)는 씨줄과 날줄처럼 서로 엮인다. 그러나 옴니버스의 ‘꼬치’ 구실을 하는 팝가수의 원심력은 미약하다. 이지호 감독이 한국에서 뮤직비디오·시에프 감독으로 활동하던 시절, 직접 만난 사람들을 바탕으로 생각해냈다는 인물들은 놀랄 만큼 전형적이어서 홀로그램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8쌍의 8가지 충돌을 천의무봉의 솜씨로 꿰어내는 <크래쉬>와 비교하면 그 차이가 명확해진다. <크래쉬>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인종 차별과 소통 단절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화해와 타협의 수단으로 옴니버스 형식을 차용한다. 반면 <내가…>는 옴니버스 형식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보인다. 저예산 영화에 출연해서도 혼신의 연기를 보여주는 앤디 가르시아와 포레스트 휘태커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유피아이코리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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