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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애니메이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등록 2005-04-28 18:18

인간과 싸우다
인간이 되어버린…

일본에서 개봉된 지 11년만에 한국 땅에 상륙한 애니메이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제작사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끄는 스튜디오 지브리다. 미야자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프로듀서를 맡았던 다카하타 이사오가 감독한 <폼포코…>는 개발이나 문명이라는 미명 아래 행해지는 인간의 파괴행위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하야오의 세계와 만난다. 그러나 접근 방식은 매우 다르다. 하야오가 타락한 인간세계와의 대결을 내세우거나 추잡한 인간세계보다 한 차원 높은 유토피아를 제시한다면 다카하타는 남루한 현실세계를 끌어안는다. 너구리들의 일상으로 은유되고 풍자되는 인간들의 삶은 이기적이고 어처구니없지만 동시에 가슴찡한 연민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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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 개발 5개년 계획이 한창인 도쿄 근처에 사는 너구리들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드는 숲을 보면서 위기감을 느낀다. 궁리 끝에 너구리들은 오랫동안 금지됐던 ‘변신술’을 부흥시키고 ‘인간연구 5개년 계획’을 추진해 인간들의 파괴행위와 전면전을 치르기로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제작
이기적이고 처량한 소시민 풍자

사정은 안타깝고 상황은 절박하지만 인간사회가 그렇듯 너구리 사회도 현실과 기대치는 따로 논다. 긴급회의에서 격렬한 토론이 오간 뒤 정작 깃발을 누가 들까 의장이 물으면 모두가 자는 척하고, 인간 연구를 위해 가져온 텔레비전의 요리 프로그램을 보면서 침을 질질 흘리거나 스포츠 중계를 보면서 응원에 정신이 빠진다. 강경파 너구리 곤타가 “인간을 모두 없애버리자”고 소리치자 열광을 하던 너구리들은 “그래도 햄버거나 도넛을 먹으려면 좀 남겨둬야 한다”는 다른 너구리의 ‘현실론’ 한마디에 금방 마음이 바뀐다. 숲에 살면서도 종종 마을에 내려와 쓰레기를 뒤지며 ‘문명’에 적응한 너구리들의 딜레마는 개발과 보존, 현실과 이상의 줄다리기에서 합의점을 찾는 데 실패하는 인간들의 딜레마를 닮았다. 한 술 더 떠 너구리들은 지치면 금방 ‘약발’이 떨어지는 변신술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이 피곤할 때 마시는 드링크제를 애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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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포코…>는 재기와 웃음이 넘쳐나지만 실은 눈물나는 투쟁과 쓰디쓴 패배의 기록이다. 자신들의 위협이 통하지 않자 너구리들은 멀리서 신적 존재로 추앙받는 너구리계의 원로들을 모셔온다. 이들의 도움으로 너구리들은 갖가지 귀신을 마을로 출현시키는 ‘요괴대작전’을 벌이지만 언론은 이를 건설 중인 놀이공원의 깜짝이벤트로 넘겨버린다. 마지막 만회작전이 실패한 뒤 너구리들은 각목(나뭇가지)을 쥔 행동파와 종교에 빠지는 회피파로 나뉜다. 그리고 중간의 현실론자 너구리들은 사람으로 변신해 인간세계에서 살아간다. 패배 뒤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갈 길을 가는 이들의 뒷모습은 처량하다. 그 처량함에는 개인의 목소리를 거세당하고 시스템 안에서 묵묵히 살아가야 하는 소시민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심각한 주제를 깔고 있음에도 <폼포코…>가 어둡게 느껴지지 않는 건 유머감각으로 피어나는 너구리들의 낙천적 기질 덕이다. ‘한 껀’ 올린 다음 대책 없이 좋아하고, 실패하더라도 기분전환으로 새로운 사건을 도모하는 너구리들의 낙천성은 인간보다 한 수 위다. 나우시카의 지혜나 원령공주의 전투력보다 이 보잘 것 없는 너구리들의 낙천성이야말로 갈수록 공고해지는 시스템에서 점점 왜소해지는 개인들에게 든든한 힘처럼 느껴진다. 28일 개봉.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대원C&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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