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초고속성장 지켜본 10년…영화주간지 ‘성공사례’ 의 주역 95년 4월 <씨네21>에 입사한 남동철 편집장(38)은 창간호부터 500호까지 ‘붙박이’로 잡지를 만들어온 유일한 기자다. 조용조용한 말투와 수줍음을 타는 듯한 인상(그의 별명은 ‘조니 뎁’이다)으로 취재원과 언성높이는 일 한번 없으면서도 기사를 쓸 때의 ‘깐깐함’은 유명해 <씨네21>에서 남동철 기자의 담당이 된 영화사들이 담당기자를 바꿔달라고 슬쩍 하소연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97년 미국의 유명 영화학교인 AFI와 교육 프로그램을 교류한다고 속여 비싼 수강료를 받고 수강생을 모으던 정체불명의 영화학교 설립에 대한 추적기사를 써 영화기자로는 드물게 특종상을 수상했고, 99년 ‘한국의 신지식인’으로 선정됐던 심형래씨의 <용가리> 수출실적을 발표자료만 가지고 언론들이 앞다퉈 보도할 때 발표된 수치의 신뢰성을 조목조목 따지는 기사를 써, ‘신지식인’ 바람이 한풀 꺾이게 하기도 했다. 또한 한국영화 평단이 오랫동안 외면해왔던 김기덕 감독을 데뷔작 <악어> 때부터 주목하면서 김 감독의 작가적 가능성을 가정 먼저 발견해낸 기자로 평가받는다. 전임 편집장인 허문영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2001년 추석 연휴 때 <조폭마누라>가 폭발적 흥행기록을 내면서 마감을 하루 앞두고 영화흥행의 새로운 경향으로 특집 기사를 교체해야 했던 적이 있는데 이럴 때 유일하게 안심하고 맡길 만한 기자였다”고 남동철 편집장을 평가했다. 지난해 편집장에 취임한 뒤 첫 편집장의 글에서 사명감이나 포부 대신 중책을 맡게 된 ‘귀차니스트’의 딜레마를 고백해 화제를 낳기도 했던 그의 <씨네21> 창간 10주년에 대한 소감은 이렇다. “하필 10주년이 걸려있을 때 편집장을 하게 돼서 준비할 일(10주년 기념 영화제, 영화인 특강 등)이 많아가지고 귀찮기는 하지만…” 김은형 기자
“대중영화에 묻힌 작가 발굴도 저널 역할” 영화제작 권력, 헐리우드 따라가는 경향 우려스러워
쓰레기 영화를 가지고도 대중과 소통할 영역이 있어
1995년과 2005년. 이 10년 사이 한국 영화계는 한국 사회의 변화보다 서너배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성장했다. 20%에 머물던 한국영화 관객점유율은 50% 가까이 올랐고 최고 흥행순위를 장악했던 할리우드 영화들이 그 자리를 고스란히 한국영화에 넘겨주게 됐다. 한국영화의 관객이 증가했을 뿐 아니라 한국은 세계적인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곳, 해외 유수의 영화제를 나들이하듯 초청받아 다니는 감독들이 영화를 만드는 곳으로 세계 영화계에서 위상도 높아졌다. 오늘의 성공을 10년 전 예측했던 이가 거의 없었듯 95년 5월 <씨네21>이 창간될 때만 해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영화주간지’의 성공을 낙관했던 사람은 흔치 않았다. 그러나 <씨네21>은 한국영화가 분투하고 성장하며 축복받은 순간들을 함께 하면서 나란히 성공의 길을 걸었다. <씨네21>의 창간 멤버로 지난해 9월 제5대 편집장에 오른 남동철 편집장을 만나 한국영화와 <씨네21>의 성과, 그리고 변하는 매체 환경에서 <씨네21> 앞에 놓여진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올해 10주년을 맞는 행사나 매체가 꽤 많다. <씨네21>을 비롯해 부산국제영화제, 케이블 텔레비전 등. =그때는 잘 몰랐지만 <씨네21>이 창간되던 95년은 문화적 빅뱅의 시기였던 것 같다. 케이블 텔레비전의 출범은 방송환경을 변화시켰고, 영화계 역시 95년 이후 가파르게 변화의 국면을 맞았다. 창간이 그 변화와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셈이다. 한편으로는 운이 좋았고 한편으로는 현명한 선택을 했다. -성공에 대한 우려 속에 창간됐는데 언제쯤 자리를 잡았다고 판단하는가. =창간 첫해에는 적지 않은 적자를 내서 계속 끌고가야 하는지에 대한 경영진의 심각한 고민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96년에는 적자폭을 미미한 수준으로 줄였고 97년부터 흑자를 내기 시작하면서 가파르게 상승곡선을 탔다. 99년쯤에는 “이렇게 잘 될 줄이야” 수준으로 올라간 것이고. (웃음) -<씨네21>의 성장과 한국영화 지형도의 변화는 시기적으로 맞물린다. 상호작용한 부분이 꽤 클 것 같다. =‘한국영화’와 ‘산업’에 초점을 맞춰 이슈를 찾아내 의제화하는 데 성공했다. 초기에 캠페인성 기획을 많이 했는데 몇 가지 예로 국제영화제의 필요성 제기나, 검열철폐 캠페인, 극장 환경 평가 등이 부산영화제의 탄생이나 사전검열 위헌 결정, 멀티플렉스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그런 변화들이 <씨네21>의 힘만으로 이뤄진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또 ‘한국의 배우’같은 새로운 시도의 기사를 통해 그전까지는 연예인이나 엔터테이너 정도로 인식되던 배우에 대한 값어치를 제대로 평가하는 작업도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고 본다. -<씨네21>이 영화계에 가지는 영향력이 커지면서 비판의 목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한편의 독자들은 비판의 날이 점점 무뎌지고 상업영화에만 관심을 둔다고 비판한다. 반대로 한편의 독자들은 왜 홍상수나 김기덕 같은 작가주의 감독만 편애하는가라는 비판을 한다. 이 두 가지 목소리를 함께 끌고 가야하는 게 <씨네21>의 입장이다. <씨네21>은 얼마 전 폐간한 영화전문 월간지 <키노>나 프랑스 영화전문지 <카이에 뒤 시네마>가 아니기 때문이다. <카이에 뒤 시네마>라면 김기덕과 홍상수도 같은 작가의 입장에 놓지 않고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한다. 그러나 <씨네21>은 넓은 틀에서 영화를 판단해야 하는 대중지이고 쓰레기같은 영화를 가지고도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고 생각한다. -새 영화가 개봉될 때마다 모든 매체들이 같은 스타 사진으로 도배되고 기사의 변별성도 점점 없어진다. <씨네21>도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늘 고민되는 부분이다. 한국영화산업 전체가 할리우드를 모델로 닮아가려는 목표와 경향이 뚜렷하고 우리 스스로 초창기에 제작 시스템 정비를 언급하며 부추긴 면도 있다. 그렇게 가면서 마케팅과 매니지먼트의 힘이 커졌고, 할리우드처럼 마케팅이 움직이는 방식에 저널이 따라가게 됐다. 이를테면 영화촬영 현장도 전에는 우리가 찾아다녔지만 이제는 하루를 정해 영화저널을 모두 모으는 식이다. 저널 기자들은 게을러지기 쉽고 나오는 기사는 다 비슷해진다.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가 나름의 숙제다. 가능한 다른 기획, 다른 접근을 위해 머리를 굴리지만 풀어내기가 쉽지 않다. -1천원 짜리 영화잡지가 나오고 인터넷 영화 매체들도 늘어난 상황에서 ‘3천원’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영향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사실 불안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씨네21>의 역할이나 기능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중 하나가 초창기 가장 큰 주제였던 한국영화의 틀을 벗어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영화가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대받으면 모든 매체의 관심이 한국영화의 수상여부에만 초점이 맞춰진다. <씨네21>은 세계 영화 가운데 하나로 한국영화에 접근하면서 다른 이야기, 다른 시각을 제공하려고 한다. 솔직히 하루에도 수십건 씩 쏟아져 나오는 인터넷 영화 기사들을 보면 답답하기도 하다. 단편적인 뉴스의 홍수 속에서 그 이상의 것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씨네21>은 여전히 중요한 잡지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씨네21>이 발굴한 인물이라거나 꼽을 만한 기획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이를테면 김기덕 감독을 처음으로 주목한 건 <씨네21> 아닌가. =김기덕 감독의 경우 첫 영화 <악어>가 워낙 무시당하는 분위기였는데 그럴 영화는 아니라는 판단에서 지지하는 평을 쓴 것이다. 대중영화에 묻히는 작가들을 그대로 파묻히지 않도록 하는 게 영화 저널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다. 강우석 감독은 이제 누구나 아는 충무로 최고의 파워지만 <씨네21>의 ‘파워50’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주류담론을 형성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런 역할에는 부정적인 면도 없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영화계를 넘어서도 <씨네21>이 등장시켰던 독특한 칼럼들은 젊은 세대의 문화적 감수성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씨네21>의 중요한 자산 가운데 하나는 필진이다. 개성있는 필자를 발굴해 정통 리뷰가 아닌 새로운 글쓰기를 시도했다. 이를테면 구보씨, 아줌마 영화읽기 같은 글은 전에 없던 방식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독자들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단순히 이전 시대식의 진보나 보수로 양단할 수 없는 ‘취향의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데 일조하지 않았나 싶다. 바꿔 말하면 정치에서 문화로 일상의 관심이 옮겨가는 과정에서 교량 역할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급변하는 매체환경에서 <씨네21>이 꾀하고 있는 변화나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가. =지난해 말 자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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