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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02 18:30 수정 : 2005.05.02 18:30



십자군 3차원정이 시작되던 12세기 말. 기독교 왕국들의 분열과 이슬람의 강력한 지도자 출현으로 기독교-이슬람 사이의 아슬아슬한 평화공존이 붕괴 위기에 놓이게 되자 십자군 기사들이 기독교도들이 통치하고 있던 예루살렘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같은 시기 아이가 병으로 죽고 뒤이어 아내가 자살해 깊은 슬픔에 빠져있던 프랑스의 대장장이 발리안(올랜도 볼룸)에게, 십자군 기사 고프리(리암 니슨)가 찾아온다. 고프리는 자신이 아버지임을 밝히고 함께 출정하기를 권하지만 고프리는 거절한다. 그러나 죽은 아내에 대해 저주를 퍼붓던 사제를 충동적으로 죽이게 되자 발리안은 아버지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속죄의 여정을 출발한다.

4일 개봉하는 <킹덤 오브 헤븐>은 <글래디에이터>로 할리우드의 서사극 시대를 부활시킨 리들리 스콧 감독이 선보이는 또 하나의 대작 서사드라마다. 실제의 역사에 가상의 영웅을 덧붙여 역사적 상상력과 고전적 영웅담의 쾌감을 하나로 접붙이는 방식은 두 영화를 관통하는 기법이다. 지극히 소박하고 사리사욕없는 주인공이 거역할 수 없는 운명에 의해 ‘할 수 없이’ 영웅이 된다는 점에서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와 발리안은 피를 나눈 형제다. 영웅답지 않은 면모와 성정은 <킹덤 오브 헤븐>의 발리안이 더 하다. 배우의 외적조건에 기인하는 이유도 크겠지만 발리안에게서는 막시무스가 가졌던 카리스마가 뿜어나오지 않는다. 사실 올랜도 볼룸은 강인한 영웅보다는 섬약한 왕자(<트로이>)가 더 제격이다. 막시무스에게 검투사로서의 싸움이 자신을 핍박하고 평민을 갈취하는 지배계급에 대한 투쟁이라면 발리안에게 이 모든 싸움은 자신의 죄(살인)를 사함받기 위한 순례의 과정이다. 임종 직전의 예루살렘 왕이 예루살렘 사수를 위한 최고 장수로 그를 지목하자 그는 “몸은 권력에 복종해도 영혼은 자신의 것” 이라는 왕의 말을 되돌려주면서 살상을 거부한다. 그러나 단호하게 전쟁을 거부했던 그가 악랄한 교회기사단의 우두머리 기 드 루시앵 군단이 이슬람 군에게 당한 뒤 예루살렘성 수호전투에 쉽게 나서는 건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성 내의 민간인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발리안은 군사훈련 한번 안받은 남자들에게 모두 기사로 작위를 부위하며 전투의 맨 앞줄에 내세운다. <킹덩 오브 헤븐>은 이처럼 사건과 사건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다. 이를테면 한낱 대장장이이던 발리안이 탁월한 기사이자 영주로 변하는 시간이 너무나 순식간이고 그 진행도 툭툭 끊어져 어느덧 영웅이 된 발리안을 보고 “아까 그 발리안 맞아?”라고 물음이 나올 지경이다. 3시간40분으로 완성한 영화를 무려 1시간20분이나 덜어냈다니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겠다. 악당 기 드 루시앵이 <글래디에이터>의 코모두스와 같은 입체적 캐릭터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도 영화의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다만 화면만은 <글래디에이터>보다 한 수 위의 매력을 발산해 두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을 그럭저럭 견디게 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유명한 노르망디 상륙작전 장면처럼 대검에 찔린 시체에서 뿜어나오는 피가 보는 이의 얼굴에 튀는 듯한 생생함을 전하면서 현실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중세 전투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각을 준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이가영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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