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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그때 그 ‘젊음의 치기’ 속으로 고!

등록 2008-09-28 19:30수정 2008-09-28 21:05

‘고고70’
금지된 밤 뜨거운 음악 …공연 장면 ‘디테일’ 짱짱
<고고70>은 젊음에 관한 영화다. 경북 왜관의 미군 기지촌 클럽에서 김빠진 컨트리 음악을 연주하던 상규(조승우)는 기지촌 토박이 만식(차승우)이 흑인 클럽에서 부르는 ‘솔’(soul) 음악에 ‘필’이 꽂힌다. ‘솔’이 필요한 상규와 노래가 안 되는 만식. 의기투합한 둘은 6인조 밴드 ‘데블스’를 결성하고, 상규를 흠모하는 가수 지망생 미미(신민아)와 함께 서울로 떠난다.

서울로 올라온 상규 일행은 <주간서울>의 노회한 팝 칼럼니스트 이병욱(이성민)을 통해 명동 고고클럽 밤무대의 ‘히어로’로 거듭난다. 그러나 그들이 짜릿한 성공의 기쁨을 맛보는 순간, 위기가 찾아온다. 그들의 젊음을 흔든 것은 명동 클럽들의 부당한 계약 요구도, 군사정권의 혹독한 문화 탄압도 아니었다. 그것은 넘쳐나는 혈기를 도무지 어찌할 줄 몰랐던 ‘그때 그 젊은이’들의 날선 치기였다.

상규와 밴드는 명동과 청량리와 인천까지 오가는 무리한 “가케모치”(겹치기 출연)로 제살을 깎아먹고, 술과 여자와 도박에 정신을 놓아 버린다. 상규는 공연 중에 낯선 여자를 끼고 “빨갱이 아빠 만나 고생만 하다 죽은 우리 어머니”라고 외치는 ‘찌질함’을 선보이기도 한다. 쿨한 음악과 옷으로 무장했지만, 결국 상규와 동료들은 그 시대 다른 젊은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뼛속 깊이 촌티로 물든 70년대 젊은이들이었던 것이다.

고고70
고고70
상영 시간 내내 영화를 지배하는 것은 자질구레한 70년대의 ‘디테일’들이다. 논바닥 위에 꽂힌 새마을운동 깃발과 함께 시작된 영화는 ‘잘 살아보세’ 주제가를 따라 퇴락한 서울 도심의 풍경, 대학생들의 청바지, 베트남으로 향하는 장병들의 모습을 관조하듯 비춘다. 영화 곳곳에는 새로 도입된 ‘루프 피임법’에서 대한제분의 곰표 밀가루 한 포대에 이르기까지 세밀한 디테일들이 넘쳐난다. 72년 상경한 주인공 일행이 자리를 잡는 서울 변두리 여관 장면에서는 75년도 제일기획 제작의 ‘삼립호빵’ 광고가 흘러나오는 사소한 실수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

혼란에 빠진 상규에게 ‘날선 죽비’가 된 것은 군사정권의 몽둥이 찜질이었다.

고고70
고고70
“나는 연회장에 끌려갔다가 왔어. 노래 끝나니까 호텔로 보내더라. 그러더니 노인네가 들어왔어.”

퇴폐문화 일제 단속에 걸린 상규와 철창을 사이에 놓고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미미가 말한다. 젊은이들의 퇴폐를 단속했던 정권은 스스로의 퇴폐는 단속하지 못했다. 그들이 휘두른 몽둥이에 퍼렇게 멍든 젊은이들은 마지막 순간 ‘4월의 벚꽃’ 같은 젊음을 발산해 낸다. 그러나 그뿐, 영화는 왜 상규와 친구들이 ‘솔’에 미쳐야 했는지, 음악을 통해 그들이 이루려 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끝내 침묵한다. 그래서 음악은 때때로 영화 주변부에서 겉도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고고70>의 가장 큰 미덕은 음악이다. 최호 감독은 “음악을 위해 영화, 뮤지컬, 록 등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이 뭉쳐 뜨거운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말한다. 카메라는 마치 실제 음악 공연을 실황 중계하듯 세밀하게 배우들의 목소리와 몸동작을 잡아낸다. “대안 없으면 그냥 고고하는 거지 왜 지랄들이야?”라고 외치는 록 그룹 ‘노브레인’ 출신의 기타리스트 차승우는 올해 한국 영화의 새로운 발견으로 남을 듯하다. 10월2일 개봉.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사진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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